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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중국산 백신 한반도로?···中 '백신여권' 러브콜에 곤혹스런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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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중국 제약회사 시노백(Sinovac·科興中維)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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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글로벌] 중국이 연일 한국을 상대로 '백신여권'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중 양국 간 보다 원활한 인적 교류를 위해 백신여권과 같은 인증 시스템을 공동으로 도입하자는 겁니다. 얼핏 보면 좋은 취지인 것 같지만 한국 정부는 크게 당황스러운 모습이 역력합니다. 자칫하면 중국의 '백신 굴기'에 한국이 이용만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백신여권' 이슈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3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입니다. 당시 정의용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방안과 양국의 경제·문화 협력방안 등을 폭넓게 논의했습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합니다. 이후 한국과 중국 외교부는 각각 회담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런데 두 발표문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 백신여권' 문제입니다.

중국 측은 "양국은 건강코드 상호 인증을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백신 협력을 전개하며 신속통로(패스트트랙)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건강코드는 코로나19 검사 결과, 백신 접종 여부, 위험 지역 방문 여부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백신여권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구는 한국의 발표문에는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기자들 문의가 계속되자 "방역 협력을 계속 모색하기로 원칙적 의견 일치를 본 바 있다"면서 "구체적 협력방안은 추후 우리 방역당국 등 관계부처와 협의하에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중국 측의 관련 언급은 상호인증체제 구축 관련 향후 협의에 대한 기대 표시 차원의 것으로 이해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러브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다음날 정례브리핑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성과를 묻는 말에 "양국은 코로나19 백신접종 프로그램에 서로의 국민을 포함하고 건강코드 상호 인증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다시 한번 백신여권을 강조했습니다.

중국 관영매체도 거들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중 건강코드 상호 인증체제가 구축되면 양국의 물적·인적 교류가 확대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양국이 지난해 5월 신속통로(패스트트랙) 개설에 합의함으로써 코로나19로 일시 귀국했던 한국인들이 중국으로 복귀했다는 사실도 거론했습니다. 건강코드 상호 인증을 하면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백신여권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중국산 백신의 효능을 인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중국산 백신은 아직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효능과 부작용 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같은 이유로 중국산 백신에 대한 긴급 승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을 집중 공략하는 방식의 '백신 외교'를 통해 영토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매력적인 대상입니다. 그동안 중국산 백신과는 거리를 뒀던 한국 정부가 건강코드 상호인증을 도입한다면 사실상 중국산 백신을 접종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한국 정부가 선언해준 모양새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발판삼아 중국 백신 영토를 더 넓히기도 쉬어집니다. 장후이즈 지린(吉林)대학 동북아연구원 부원장도 "한중이 건강코드 상호 인식체제를 구축하면 더 많은 아시아 국가가 비슷한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소규모 백신여권을 시범 운영하기 위한 리허설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한국 정부는 여전히 중국산 백신에 대해 확실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백신 도입은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측 백신여권 러브콜에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는 것도 이런 연장선입니다. 하지만 중국 측 요구가 갈수록 더 노골화될 경우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베이징/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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