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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지금 워싱턴에서 바이든보다 힘 센 또 한명의 '조' [시스루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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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스루 피플>은 ‘See the world Through People’의 줄임말로, 인물을 통해 국제뉴스를 전하는 경향신문의 새 코너명입니다.

지금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조 바이든 대통령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보다 힘 센” 또 한명의 조가 있다. 영국 가디언은 “백악관에 있는 것은 바이든이지만, 미국의 실질적인 대통령은 이 사람”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웨스트버지니아가 지역구인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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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웨스트버지니아의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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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보다 힘 센 사람

스스로를 ‘온건한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하는 맨친은 민주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물이다. 현재 워싱턴에서 그의 ‘허락’없이 통과될 수 있는 법안은 단 한개도 없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50대 50으로 의석을 양분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상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50명 전원의 표를 끌어 모은 후 상원 의장인 카멀리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야 한다. 민주당 의원이 단 한명이라도 이탈하면 법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바로 그 단 한명이 맨친이다.

물론 맨친이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라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행사를 까다롭게 만들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이 역시 맨친이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초당파주의자’인 맨친은 “그 어떤 경우에도 내가 필리버스터에 손 대는 일에 동의해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상태다.

2010년부터 상원의원으로 활동해 온 맨친은 공화당 뺨치게 보수적이다가도, 때로는 전통 민주당의 노선을 지키는 등 사안에 따라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반대했지만, 오바마케어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임신중지와 총기 규제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법은 지지했지만, 감세 정책에는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 때문에 사회적 이슈에는 강성 보수 성향이지만, 노동권 보호와 ‘큰 정부’에는 우호적이라는 평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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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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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맨친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민주당이 총력을 기울여 통과시키려 하는 거의 모든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맨친의 반대 탓에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에 임명된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니라 탠든이 낙마했고,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안도 좌초됐다.

맨친은 민주당 의원 전원이 공동발의한 투표권 확대법안에 유일하게 혼자 서명하지 않았으며, 바이든의 총기규제 법안에도 반대한다. 친노동 성향이라는 평가와 달리 이번에는 노조 단결권 강화법에도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바이든의 법인세율 28% 인상안에 대해서도 “과도하다”며 25%를 주장하고 있다. 2조2500억달러(약 2500조원) 규모의 인프라투자 법안 역시 맨친이 “지나치다”며 조정을 요구해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이쯤 되니 바이든이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맨친에게 쏠린다. 그가 내놓을 입장에 따라 정책의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맨친이 민주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

맨친이 가진 캐스팅보트의 힘은 그의 독특한 위상에서 나온다. 미국 유권자는 보통 대선과 총선 때 같은 정당에 표를 주기 때문에, 현재 미 상원 의원 100명 중 자신이 속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패배한 주에서 당선된 의원은 맨친을 포함해 단 6명 뿐이다. 그 중에서도 맨친은 독보적이다. 그의 지역구인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공화당 편향성은 압도적이다. 트럼프는 2016년과 2020년 대선 당시 이 지역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바이든을 무려 42%포인트, 39%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이런 곳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주지사를 지내고 2012년 재선, 2018년 삼선에 성공한 것은 “기적 같은 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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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거분석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잇’은 “트럼프 정책에 찬성표를 던졌던 보수 지역 출신 민주당 의원이 맨친만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모두 지난 선거에서 낙선했고, 맨친만이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맨친은 바이든과 민주당에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여기서 맨친이 가진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미시간데일리는 “민주당은 종종 맨친을 ‘빌런’으로 묘사하지만, 공화당 텃밭인 웨스트버지니아에서 민주당 의원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맨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맨친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는 당연히 공화당 몫으로 채워져서 공화당이 상원을 (51대 49로) 장악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맨친은 내칠 수도 없고, 내쳐지지도 않을 민주당의 숙제이다. 맨친은 앞으로도 계속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정책에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가 구상하는 미국 재건 계획이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느냐는 결국 맨친과 공생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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