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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봄의 신선 청띠신선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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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청띠신선나비 / 20210331 /횡성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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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띠신선나비는 말 그대로

신선처럼 산속에서 사는 나비입니다.

우리가 신선을 쉽사리 볼 수 없듯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친구입니다.”

느닷없이 맞닥뜨린 청띠신선나비를 두고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박사가 들뜬 채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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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멧노랑나비/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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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를 만난 날,

새벽 기온이 영하 3도였습니다.

꽤 쌀쌀한 날인 데다

신선처럼 은밀한 친구니 기대도 못 한 텁니다.

날개를 접은 자태는

영락없이 찢어진 낙엽,

생채기 난 나무껍질과 흡사합니다.

이러니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거죠.

날개를 펴거나,

날아야만 비로소 청띠가 드러납니다.

날갯짓을 보면 알게 됩니다.

이 친구들이 왜 신선이라 불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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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나비/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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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나비/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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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띠신선나비 / 20210331 /횡성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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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어른나비로 월동한

각시멧노랑나비, 네발나비, 뿔나비를 한꺼번에 만났을 때도

유독 이 친구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하여 눈 씻고 찾아도 끝내 못 찾았던 친구인 겁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푸릇한 날갯짓으로 눈앞에 나타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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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띠신선나비 / 20210331 /횡성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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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한 나무에만 찾아들었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예닐곱 마리가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이 광경에 이강운 박사가 연신 감탄사를 자아냈습니다.

“24년간 이곳을 꾸리며 곤충을 연구해왔지만,

이렇게 예닐곱 마리가 떼로 날아드는 건 처음 봅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 사진 찍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얼마나 예민한지 당최 사진 찍을 수가 없습니다.

셀카봉에 휴대폰을 연결한 채 숨죽인 채 다가가도

휘리릭 날아가 버리기 일쑤입니다.

제대로 포커스 맞은 사진 한장 건지기도 어려울 만큼

예민하고 민첩한 나비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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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띠신선나비 / 20210331 /횡성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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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사실 모든 사진 테크닉을 능가하는 게 기다림입니다.

멀리서 화면 손가락 줌으로 클로즈업하면 되지 않으냐고요?

이렇게 찍은 사진과 다가가서 찍은 사진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 확연한 차이를 알기에 기다리는 겁니다.

나무 옆에 터 잡고 셀카봉에 휴대폰을 연결한 채

꼼짝없이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나를 나무로 여기게끔 하려는 전략입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서서히 경계를 늦추었습니다.

우선 나무의 높은 곳에 착지했습니다.

셀카봉을 한껏 뻗었습니다.

발가락까지 곧추세웠습니다.

맨눈으로 나비가 보이지만,

눈으로 휴대폰 액정 화면은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눈으로 휴대폰 화면을 못 보는 채,

감으로 셔터를 누를 뿐입니다.

한 장만 제대로 건지자는 심정으로요.

아쉽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나비가 더는 날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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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나비와 청띠신선나비 / 20210331 /횡성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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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자

점차 나무의 아래쪽에도 착지했습니다.

경계가 한결 느슨해진 겁니다.

휴대폰 카메라의 최단거리 포커스가 7cm 남짓입니다.

급기야 셀카봉에 연결한 휴대폰 카메라가

7cm까지 접근했습니다.

날개와 몸통의 솜털까지

액정에 맺혀오는 게 보일 정도입니다.

바로 위에서 찍어도 나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나를 나무로 여기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 친구들 대체 무엇을 하나 살폈더니

수액을 먹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찾아 든 나무가 바로 고로쇠나무인 겁니다.

이 박사가 그들이 고로쇠나무에 모여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지난가을에 나서 6개월 정도 산 나비인 거죠.

영하 25도의 혹한을 견디며 월동을 끝낸 친구들이니

기력이 쇠잔해진 상태입니다.

수액으로 기력을 회복하려고 모여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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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띠신선나비 / 20210331 /횡성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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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을 먹으려고 모여든 건

청띠신선나비뿐만 아니었습니다.

온갖 곤충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네발나비 또한 부지런히 드나들었습니다.

위 사진 아래쪽 붉은 친구가 네발나비,

위쪽 친구가 청띠신선나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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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과 함께하는권혁재 핸드폰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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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나비는 이내 짝짓기를 할 겁니다.

그리고 알을 낳고 나면 그들의 생을 마감할 겁니다.

그 무엇보다 신비한 푸름의 청띠를 품은 채,

산속 깊은 곳에서 신선처럼 은밀히 살던 그들이

그렇게 경계하던 휴대폰 카메라 앞에서도

아랑곳없이 수액을 빨았던 이유를 알 듯합니다.

그들에겐 마지막 숙명,

알을 낳아 생명을 잇는 일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청띠신선나비를 촬영하는 화면,

청띠신선나비와 개미가 수액을 두고 다투는 장면,

이강운 박사가 들려주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는 동영상에 담겼습니다.

자문 및 감수/ 이강운 서울대 농학박사(곤충학),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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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사진관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 방송국 힙(Hib)과 함께

곤충사진과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촬영 업로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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