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희 목사가 자신이 세운 광야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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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 처음 영등포 쪽방촌에 왔을 때 길에 서서 울었어요. 울려고 해서 운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너무 기가 막히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병들어서, 배고파서, 술에 취해서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며 서울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1987년 겨울이었다. '쪽방촌 산타' 임명희 목사(63·영등포 광야교회)의 운명은 그날 바뀌었다. 그로부터 34년간 임 목사는 쪽방촌 주민들과 같이 먹고 자고 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파했다. "목사 안수받기 전 청량리에서 전도활동을 했어요. 거기서 만난 노숙인들에게 '밤에 어디서 자냐?'고 물었더니 영등포 에키마에(驛前)골목에 산다고 해요. 그래서 한 번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3개월 뒤에 생필품을 가지고 갔어요. 창문 하나 없는 방에 살면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이 곧 광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부터 이 광야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기로 한 거죠. "
광야교회가 지금은 영등포 쪽방촌을 상징하는 기도처이자 안식처가 됐지만 처음엔 주민들 반발이 심했다.
"그때만 해도 윤락가였는데 업소를 관리하는 주먹들이 '예수가 밥을 주냐, 돈을 주냐'며 멱살을 잡고 그랬어요. 그들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함께 뒤엉켜 울기도 하면서 천막교회를 시작했어요."
임 목사는 전남 진도군 작은 섬 조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렸고, 집안 살림은 엉망이었다. 어느 날 섬에서 부흥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임 목사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 끌고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면 술을 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날 밤 임 목사는 바닷가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임 목사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고 말한다. 현재 광야교회 신도는 400명 정도다. 신도가 전부 쪽방촌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쪽방촌 주민이 550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광야교회 위상을 알 수 있다. 광야교회는 목회활동 이외에도 매일 하루 세 끼 배식을 하고, 거처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상담소도 운영한다.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느냐는 질문에 임 목사는 "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말한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떡 두 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로 예수가 사람들을 먹여 살린 오병이어 생각이 나요. 작은 기부와 헌금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교회이지만 크게 걱정을 해본 적은 없어요."
현재 교회가 들어선 자리도 임 목사의 뜻에 감동한 지주가 대출보증까지 서주며 도와줘서 마련한 땅이다. 임 목사 뜻에 감화된 건설회사는 건축대금의 일부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곳에 지어진 소박한 6층 건물에는 급식소와 숙소, 상담소가 들어서 있다. 거처를 구하지 못한 사람 55명 정도가 교회에서 생활한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희망이 싹트죠. 검정고시 공부하는 분들고 있고, 여기서 만나 가정을 꾸린 분도 많아요. 자립 의지를 가진 분들이 쪽방촌을 떠나 밖에서 자리 잡는 걸 도와주는 일도 하고 있어요."
임 목사의 큰 걱정이 하나 있다. 쪽방촌 주민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는 게 나아졌다고 하지만 노숙인은 더 늘어날 겁니다. 중독자가 늘어나기 때문이에요. 현대사회는 중독이 지배해요. 알코올·도박·약물·게임 등이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어요. 우울증도 늘고 있고요. 지금도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을 종종 구해내곤 해요. 인간을 중독에서 구해낼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독자들을 구해내는 데 쓰고 싶어요."
임 목사는 여타 중대형 교회들에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목회 방식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간혹 저를 특별 강연자로 초청하기도 하는데 한 번 설교하고 오면 다시는 안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제 언행이 그들을 불편하게 하나봐요. 사실 세습하는 대형 교회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하나님도 자기 아들을 그렇게 고생시키셨는데, 목사들이 자기 아들 고생 안 시키려고 하면 안 되죠. 목사는 고생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에 쪽방촌 이상 가는 스승은 없다"고 말하는 임 목사는 교회 모습은 이제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고 단언한다.
"건물을 지어놓고 사람이 오길 기다리는 교회는 안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찾아 교회가 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퍼주다가 망하는 교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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