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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생리대 네고왕? ‘성차별 면접’ 기업의 가식에 분노한 여성들[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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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기 유튜브 프로그램과 함께 여성용품 할인 이벤트를 시작한 동아제약이 채용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해 신입사원 면접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여자는 군대를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등의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입니다. 누리꾼들은 할인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불매 운동에 나섰습니다.

지난 5일 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 2> 생리대편이 공개됐습니다. 방송인 장영란씨가 동아제약을 찾아 생리대 제품 할인 협상을 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영상은 공개 직후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8일 기준 조회수 160만회를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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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카카오 블로그 플랫픔 ‘브런치’에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을 당했다고 밝힌 글이 올라왔다. 브런치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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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개 당일 ‘지난해 신입사원 면접에서 성차별을 당했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작년 말에 면접볼 때 인사팀장이라는 사람이 유일한 여자 면접자인 나한테 ‘여자들 군대 안 가니까 남자보다 월급 적게 받는 거 동의하냐’고 묻고 ‘군대 갈 생각 있냐’고 묻더니 여성용품 네고(흥정)?”라는 댓글이었습니다.

기업 정보 제공 사이트 ‘잡플래닛’에는 이 댓글 작성자 A씨가 남겼다고 밝힌 면접 후기가 올라와 있습니다. 후기를 보면 지난해 11월 면접관이 여성 지원자에게 했던 군대 관련 질문들이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반면 남성 지원자들에겐 ‘어느 부대에서 복무했는지’ ‘군 생활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군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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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이 유튜브 댓글로 발표한 사과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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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커지자 동아제약은 지난 6일 해당 영상 댓글로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최호진 동아제약 사장은 “2020년 11월16일 신입사원 채용 1차 실무 면접 과정에서 면접관 중 한 명이 지원자에게 당사 면접 매뉴얼을 벗어나 지원자를 불쾌하게 만든 질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해당 지원자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이번 건으로 고객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이어 “해당 면접관에 대한 징계 처분과 함께 향후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면접관에 대한 내부 교육을 강화하도록 하겠다. 채용과 인사에 대한 제도 및 절차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8일 카카오 블로그 플랫폼 ‘브런치’에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동아제약을 재차 비판했습니다. A씨는 “2017년부터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사업에 매달 일정 금액 기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생리대 네고 콘텐츠가 반가웠”지만, 이내 생리대 흥정의 주체가 어디인지 알게 됩니다. 그는 “2020년 11월 면접 당시 제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접에서 성차별을 자행했던 동아제약이 여성들을 위한 생리대 네고라니 황당했다. 그들의 가식에 너무 화가 나고 치가 떨렸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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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 2>. 달라스튜디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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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논란 이후 동아제약이 내놓은 해명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당시 동아제약 관계자는 언론에 “당시 군미필자 대비 군필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하는 신(新) 인사 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군필자·미필자 처우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당시 면접자의 의견을 듣고자 군대 관련 질문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여성 또는 장애 등의 사유로 군 면제를 받은 남성보다 군필자를 우대하는 인사제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것, 즉 임금 차별을 정당화할 사내 인사제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말 잔치로 끝난 ‘여성 과학기술인 채용’

A씨는 사과문에 ‘성차별’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했습니다. 그는 “문제의 질문을 한 사람은 ‘인사팀장’”이라며 “단순히 ‘면접관 중 한 명이 면접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은’ 문제가 아니며 ‘불쾌’라는 단어로 갈음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어 “동아제약은 1989년 11월20일에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적이 있고, 사내 성비와 성별 임금 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다”며 “여성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면서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성차별을 ‘불쾌한 경험’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시대에 걸맞은 행동인가”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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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을 당했다고 밝힌 A씨는 성차별 논란 이후 동아제약이 내놓은 해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브런치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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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동아제약에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낼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동아제약은 사과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그것이 왜 잘못된 질문인지, 조직 내 성차별 문화와 관행을 어떻게 개선할 계획인지, 인사팀장은 징계를 얼마나 어떻게 받을 것인지, 다음 채용과 인사 제도를 어떻게 재검토할 것인지를 기재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리꾼들의 비판도 거셉니다. 트위터에 “지원자를 불쾌하게 한 수준이 아니라 성차별적이고 불공정한 면접이라고 말해야 한다” “‘면접관 한 명’이 ‘매뉴얼을 벗어나’ ‘불쾌한 질문’을 던졌다고 개인적 일탈로 선을 긋는데 이건 조직 문제다” “남녀차별에 어떻게 대처하고 예방하기 위해 어떻게 개선할지 똑바로 밝혀야 한다” 등 글이 올라왔습니다.



성차별 면접은 현재진행형이다



A씨 사례가 알려지자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여성들이 겪은 비슷한 경험담이 잇달아 올라왔습니다.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 때문에 여자를 뽑을 생각이 없는데 그래도 불러봤다.”

직장인 B씨(31)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지난 2월 한 중소기업 경력직 채용 면접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미투요? 미투는 남자가 잘못해서 발생한 일 아닌가요?”라고 되묻자 면접관은 “미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여자를 안 뽑는다”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이후 면접관은 B씨에게 결혼과 출산 계획을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B씨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하자 면접관은 “지금 만나는 남자도 (그런 생각을) 알고 있냐. 그래도 애는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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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관련 이미지.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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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는 20대 직장인 C씨도 생애 첫 취업 면접에서 들었던 질문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면접관은 그의 이력서를 보다가 “여자면 공대에서 남자 선배들이 과제 많이 해줬겠네요?”라고 물었습니다. C씨는 “장학금을 받을만큼 성적이 좋았는데,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을 폄하하는 발언을 들었다”며 “지금이라면 항의라도 하겠지만 경험이 없던 20대 초반의 인생 첫 면접 자리에서 ‘내가 스스로 공부한 것’이라고만 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9월 구직자 173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체 구직자의 21.1%가 면접에서 성별을 의식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같은 경험은 남성(9.6%)보다 여성(30.4%)에게 두드러졌습니다. 성별을 의식했다고 느낀 질문은 향후 결혼 계획(50.7%), 출산·자녀 계획(43%), 애인 유무(37%), 야근 가능 여부(34.5%), 남성/여성 중심 조직문화 적응에 대한 생각(30.4%), 출장 가능 여부(20%) 등이었습니다. 직장인 C씨는 “한창 취업 준비를 할 때 결혼 관련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이 정도 규모의 기업에서 아직도 이따위 질문을 하는지 의아한 적이 많았다. 차별적 질문을 받아도 취업이 급해 항상 모범 답안만 내놨다”고 말했습니다.


탁지영 기자 g0g0@khan.kr
박채영 기자 c0c0@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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