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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집값도 폭등, 밥값도 급등" 엥겔지수 20년만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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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집밥 수요 증가,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등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가운데 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최근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대파를 고르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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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편도 재택근무를 해서 집에서 많이 해먹는데 장 보는 게 너무 부담이네요." 맞벌이 여성 박 모씨 얘기다. 장을 보러 나온 박씨는 "계란 한 판에 8000원이나 한다. 지난번 장 보러 왔을 때보다 1000원이 올랐다"고 했다.

부부 월급은 그대로인데 밥상 물가는 급등하며 마트 가는 게 무섭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타격에 국민들 지갑이 얇아졌는데 밥값에 들어가는 돈은 늘며 지난해 엥겔계수가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엥겔계수는 가계소비 가운데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 지표로 소득이 줄수록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9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민계정으로 살펴본 가계소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엥겔계수는 12.9%로 2000년(13.3%) 이후 최대치로 치솟았다. 현경연은 한국은행 국민계정 가계소비 지출 통계를 바탕으로 엥겔계수를 자체 산출했다. 국민이 주머니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돈은 빠르게 말라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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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총처분가능소득(1939조원)은 전년 대비 0.4% 늘어나는 데 그쳐 1998년 외환위기(-1.0%)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최근 5년간 처분가능소득이 연평균 3%씩 늘어난 데 비춰보면 사실상 소득이 정체된 것이다. 최근 흐름을 놓고 보면 이 같은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지난해 4분기 월평균 가구소득은 재난지원금 효과 등에 힘입어 전년 대비 1.8% 늘었지만 근로소득(340만1000원)은 거꾸로 0.5% 줄었다. 주원 현경연 경제연구실장은 "경제위기 국면에 불확실성이 커지자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흐름이 강해지며 엥겔계수가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밥값은 '금값'이다. 한파,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전 세계 원자재값 상승 파고가 몰려오며 생활 물가를 밀어올렸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통계시스템을 통해 최근 1년간 주요 신선 품목 소매가격을 분석해보니 올해 파 1㎏ 가격은 5599원으로 1년 새 82.4% 급등했다. 양파(44.3%), 사과(38.6%), 계란(31.7%), 쌀(12.1%), 닭고기(11.4%)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농축산물 가격도 두 자릿수 넘게 올랐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재료를 사다가 밥을 해먹는 흐름이 강해진 것도 체감물가가 높아진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식료품 지출(16.9%)은 두 자릿수 넘게 급증한 반면 음식점 등 집 밖에서 밥을 사먹는 비중(-11.3%)은 크게 줄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정부가 돈 푸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농산물 수입을 늘리고 수급을 원활히 해 밥상 물가부터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꼭 먹고사는 것 외에 지갑을 걸어 잠그는 흐름이 강해졌다. 현경연에 따르면 지난해 슈바베계수(가계소비 중 임대료 등 비중)는 18.7%로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소비 중 기본 생계를 위한 의식주 지출 비중도 36.8%로 2005년(37.0%) 이후 가장 높았다. 밥상 물가 급등에 전·월셋값 상승이 맞물리며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 이외 지출은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뜻이다. 주 실장은 "가계 기본 생계비 부담을 완화하고 소비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 방역을 유지하면서 체계적인 내수 진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시중 유동성이 생산성 높은 기업투자와 창업으로 흐를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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