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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LH사건' 수사권조정 실험실…고위직 연루시 檢 다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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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허점 고스란히…文대통령 '검경 유기적 협력' 공염불

검경합수본 현실적 대안…중대수사 가능하도록 개정해야

뉴스1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9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경찰은 투기 의혹이 제기된 LH직원 13명에 대해서는 출국 금지 조치하고, 이들의 자택 등도 압수수색하고 있다. 2021.3.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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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수희 기자,류석우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며 전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경간의 유기적 협력을 통한 철저한 수사를 당부한 상태다.

그러나 법 제도 상 검찰의 직접 개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검경 간의 협력이 얼마나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 법리 검토 및 보완수사 요구권밖에 없는 검찰이 직접 나서 책임을 질 이유가 없는데다, 수사력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경찰이 권한이 없는 검찰과 손발을 잘 맞출 것이란 기대감이 낮아서다.

◇文 대통령 "검경 유기적 협력"…현실은 "글쎄"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은 수사권 조정을 마무리 짓는 중요한 과제"라며 "이번 LH 투기의혹사건은 검-경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9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오는 10일 긴급 관계기관 회의를 소집해 검·경간 유기적 수사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엔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과 함께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도 참석한다.

박 장관도 이날 부동산 투기 전담 수사팀이 구성된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과거 1·2기 신도시 사건에서 검찰이 직접수사를 통해 많은 성과를 냈다"면서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검찰 수사기법과 방향, 법리에 대해서 얼마든지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현장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고 그것이야말로 수사권 개혁의 요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과거 우려했던 수사권조정 제도의 허점이 'LH 사건'을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무원이 연루된 경제 범죄 특성상 신속한 수사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한 고위 인사까지 연결되는 고리를 하나 하나 추적해나가야하는데 당장 검찰의 직접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만 직접 수사할 수 있고, 부패·공직자 범죄는 4급 이상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이상만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당장 '고위 공무원'이 연루되지 않았기에 검찰이 직접 수사할 여지는 없다.

검경수사권 제도가 안착되지 않은 '혼란' 속에서 시작한 대형사건 수사임에도 정부는 줄곧 검찰을 수사 주체에서 배제해왔다. 박 장관도 수사의 요체가 아닌 '범죄수익 환수' 등 부수적인 사안에 대한 검찰의 적극성만 요구했다. 결국 '검경 간의 유기적인 협력'은 현행 법 제도 하에서 비현실적인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 수도권 검찰 간부는 "검찰은 할 게 없다. 권한이 있어야 '유기적'으로 한다"며 "유기적 협력이란 말은 국민을 속이려는 언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에서 검찰의 참여를 제한했는데, 아무리 노하우를 전수하려해도 경찰이 권한이 없는 검찰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LH 사건'은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전국민적 관심을 받는 첫 수사로, 경찰은 '검찰없는 경찰'의 수사력을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한도 없는 검찰의 '조언'을 경찰이 얼마나 듣고 반영하겠냐는 것이다.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다 향후 고위 공무원들까지 연루된 부패 범죄로 커질 경우 처음부터 수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던 검찰이 언제, 어떻게 수사를 맡을지 등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한 상태다. 수사팀을 꾸린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법리 검토와 과거 판례 분석 등을 통해 미리 대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선례가 없다보니 막막한 게 사실이다. 전국민적 공분을 산 'LH 사건'이 검경수사권 조정 제도를 점검할 일종의 '실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미 검찰의 사기는 많이 떨어진 상태라 한다. 협력한다는 명분 하에 나섰다 혹여 수사 결과가 잘못될 경우, 그 과오는 검찰에 뒤집어쓸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검찰 안팎에선 '공(功)'은 경찰에, '과(過)'는 검찰에 간다면 과연 누가 적극 나서겠냐고 토로한다.

최원목 이대 로스쿨 교수는 "수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수사가 이뤄진다든지, 수사 후 성과를 누릴 수 있어야 소신있게 수사를 한다"면서 "이미 다 뺏긴 상황에서 어떤 검사가 이런 정치적인 사건에 제대로 나서겠냐"고 비판했다.

◇LH 사건 수사 적기·범위 비판 커…"검경합동수사본부 꾸려야"

LH 사건은 수사 적기를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의혹 제기 후 일주일이 지난 9일 오전 LH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출국금지도 이날 이뤄졌다. 법조계에선 이미 증거인멸의 시간이 충분했다고 본다. 박 장관이 언급했던 1990년 1기 신도시 투기, 2005년 2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수사할 당시 검찰은 대검찰청에 합동수사본부를 차려 경찰청, 건설부와 함께 대대적인 강제수사부터 시작했다.

수사 대상과 범위 역시 문 대통령이 당부한 '발본색원'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재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대상은 시민단체에서 의혹을 제기한 뒤 직무배제됐던 LH 직원 13명으로 국한돼 있다. 투기 대상 토지와 지역 분위기, 소문 등 관련 정보를 최대한 모아 큰 줄기를 잡고 따라가는 방식이 아닌 우선 수면 위로 드러난 인물들만 집중 수사해봤자 결론은 '해당 직원들의 비위', 그 이상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검경수사권 조정 제도가 안착되기 전 벌어진 대형사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의구심도 제기된다. 검찰과 경찰 간에 상호 협의가 이뤄지더라도 단시간에 모든 노하우를 전달하고 실제 수사에 반영되긴 힘들다는 점에서다. 최 교수는 "검찰에 투기 관련 각종 정보가 쌓여있는데, 이관되기 전에 벌어진 대형 사건에 있어서 수사에 차질이 생기는 건 뻔하다"고 했다.

때문에 검경수사권 제도가 안착되기 전 과도기 단계에서 벌어진 대형사건 수사는 검경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대응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처음부터 검찰을 참여시켜 책임감을 부여하고 검찰이 갖고 있는 정보와 수사역량을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아울러 'LH 사건'과 같이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 수사에 대해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 승인을 받아 직접수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지난해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 해당 방안이 제기됐으나 경찰의 반발로 인한 청와대의 지시로 시행령 개정 최종 단계에선 빠졌다.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 범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만큼 법을 개정하고 시행하는 데 오랜 시일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y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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