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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년, 여행업 젊은 노동자가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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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표지이야기

여행업 청년들에게 2020년은 봄부터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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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코로나19 사태로 텅 비어버린 인천공항 전경. 인천공항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실업, 휴직인 관련 업종 하청업체 직원이 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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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게 전화벨이 울렸다. 2020년 1월20일 한국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각국에서 한국인 입국을 제한했다. 이대로라면 여행 예약은 모두 캔슬(취소)이다. “내일모레 출국인데 여행 갈 수 있는 거냐.” “지금 열이 나는데 비행기 못 타는 것 아니냐.” 여행사 직원 강미나(29·이하 모두 가명)도 하루 30여 통 전화를 받았다. 옆자리, 그 옆자리 100여 명 직원이 저마다 수화기를 붙들고 고객을 달랬다.

그리고 이내, 모든 소란이 멈췄다. 사무실에 머쓱한 적막만 흘렀다. “여행 취소 건들 다 정리하고 나니까 전화가 한 통도 안 오더라고요. 어쩌다 누가 전화를 받으면 그 사람 전화받는 목소리가 온 사무실에 다 들려서 민망했어요.”

강미나가 여행업에 발을 들인 건 2015년이다. 그해 5월 메르스가 번졌다. 감염병 탓에 채용 문이 좁아질 거라고들 했다. 아니었다. 생각보다 빨리 메르스가 지나갔다. 어렵지 않게 취업했다. 여행업은 그런 산업이었다. 2010년대, 양적으로 팽창하는, 서비스업. 청년 4명 가운데 1명이 실질실업상태(2020년 청년층 고용보조지표3, 25.1%)인 와중에도 여행업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여행업 종사자 수는 2010~2019년 두 배 넘게(4만9928명→ 10만3311명, 관광 사업체 조사) 불었다. 여행업을 비롯해 입직(직장에 들어감) 문턱이 그나마 낮은 서비스업은 구직난에 허덕인 청년의 동아줄이었다.

2020년 3월부터 강미나는 격주 출근을 했다. ‘방학이 주어졌다’고, 그때 강미나는 생각했다. 계절은 여느 해처럼 흘러, 다시 봄이다.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곧 무급휴직이 시작된다. 휴학이었다가 퇴학에 이를지 모른다. 이 상태로 6개월이 지나면 강미나는 통계상 취업자가 아닌 실업자 또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된다. 그러니까, 강미나는 공식적으로도 일을 잃는다.

2010년대, 양적으로 팽창하는, 서비스업에 취직한, 노동자 강미나 그리고 비슷한 동아줄을 붙든 청년들이 코로나19 경제위기를 맞았다. 청년(15~29살) 서비스업 종사자 비중은 80.4%(2019년 기준)에 이른다. 여느 경제위기보다, 여느 연령대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 1년을 고스란히 버틴 끝에 이들은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 일터는 무엇이었나? 2020년 코로나19 앞에 내 일터는 어떤 꼴이 되어 있나? 나는 이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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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 해고 1순위가 되다


하늘길이 막히는 전례 없는 재난. 규모 있는 여행사가 버티는 방식은 엇비슷하다. 비용 감축, 정규직 전환과 진급 취소, 최소 인력 체계로 전환, 휴직 권고와 해고 수순으로 대응했다. 강미나가 다니는 여행사는 직원 300여 명의 대기업이다. 세 번 이직 끝에 큰 기업에 안착했다.

코로나19 이후 약속된 진급은 유야무야 사라졌다. 격주 출근은 한 달에 일주일만 출근하는 것으로 차츰 줄었다. 2020년 5월부터 부장급을 비롯한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유급휴직에 들어갔다. 필수인력의 기준은 모호했는데, 직급이 낮고 젊은 강미나는 아무튼 해당되지 않았다. 월급 190만~200여만원의 70%가 지급됐다. 석 달이 지난 8월부터 월급의 절반만 나왔다. 그나마 여행업이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선정돼 가능했다. “1년에 두 번 지급된다는 성과급도 못 받았어요. 그래도 저는 나은 편이었죠.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다른 회사 친구들의 이야기가 들리니까요.”

말 그대로다.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그게 아니면 회사가 없어지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도 너네는 젊으니까 괜찮을 거다.” 팀장은 계약 만료를 통보한 계약직 오은지(27) 등 20여 명을 모아놓고 말했다. 그는 2018년 직원 300명 미만 기업에 공개 채용으로 입사했다. 계약직이었다. 1년마다 계약을 연장해 2020년 9월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 했다. 코로나가 터진 2020년 3월부터 9월까지 유급휴직으로 140만원의 월급을 받다가 결국 회사에서 내쫓겼다. “자르기 쉬운 계약직부터 자를 것”이라 예감은 했지만 마음은 쓰렸다. 그와 함께 회사를 나간 이들 모두 26~29살로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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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29)은 직원 수 10명이 되지 않는 소규모 랜드사의 파견직으로 일했다. 랜드사는 숙박·교통 예약 등 실무 최전선을 담당하는 일종의 여행사 하청업체다. 그곳에서 월급 200만원을 받았다. 2020년 2월 파견된 회사에서 코로나19 의심환자가 나왔다. 전 직원 퇴근 지시가 내려졌다. 노트북을 싸들고 집에 갔는데, 그게 마지막 퇴근이 됐다. 그날부터 쭉 회사에 나가지 못했다. 주 3일 재택근무(3·4월)→ 유급휴직(5·6월)→ 무급휴직(7·8월)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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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 통장이 메마르다


8월, 박정연은 아침 8시 집을 나섰다.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렸다. 경기도 광주 쿠팡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열기가 훅 끼쳤다. 당장 부모님한테 손 벌릴 염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다. 굳이 여기여야 했던 이유는 있다. “무급휴직이어도 4대 보험이 걸려 있으니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마냥 쉴 수도 없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려면 퇴사해야 하는 거예요. 그나마 물류센터 알바는 한 달 7회인가 8회는 4대 보험 문제 없이 일할 수 있다고 했어요.”

여행업 종사자들이 모인 블라인드앱에 비슷한 불만이 쏟아졌다. “쌩무급휴직이다. 당장 먹고살 생활비가 없어 최소한 백만원 정도만 벌면서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마저 어려우니 암울하다.” “지금 휴직 중인데 주말 알바라도 하고 싶어요. 무급휴직 수당 받으면서 가능한 알바를 어떻게 찾죠.” 당시 10명 미만 사업장은 무급휴직 기간에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제도가 개선된 건 2021년이다.) 소득이 그야말로 ‘제로’였다.

물류센터에서 카트를 끌고 다니며 고객 주문에 맞춰 진열된 상품을 담아 포장 담당한테 건네는 단순 업무가 주어졌다. 그래도 고됐다. “광활한 물류센터를 온종일 걸어다녀 그런지, 에어컨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그런지” 오후 6시 녹초가 됐다. 같이 버스를 타고 돌아온 10명은 자기보다 10살은 어려 보였다. 스물 언저리 청년들은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파견직이었던 그가 이제는 하루 벌이 노동자가 돼 있었다. 그날 박정연은 8만원을 쥐고 집으로 왔다. 부모님한테 일일 알바를 했다고 말했다. 부모님 얼굴에 충격이 어렸다. 스스로가 “자그맣게 느껴졌다”. 그 느낌 탓에 다시 일을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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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은 아르바이트를 포기하는 대신 발버둥 쳤다. 한 달 100만원 쓰던 카드 대금을 10만~20만원대로 줄였다. 부모님과 살아 주거비, 식비 걱정은 덜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달 동안 부모님한테 용돈도 받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옷과 화장품 소비를 줄였다. 통신비, 보험금, 주택청약(10만원), 적금 등 고정지출이 문제였다. 적금에 먼저 손댔다. 적금 납부를 최소(10만원)로 줄였다. 친구가 결혼했다. 때마침 만기 된 다른 적금 등 축의금을 냈다. 민망해서 친구들에게 웃으며 신소리했다. “결혼식은 몇 달 전에 알려줘야 돈을 모을 수 있어.” 남은 적금 수령액으로는 주식을 샀다. “코로나 터지고 주식을 한 친구가 3천에서 7천을 벌었어요. 사실 저축하는 게 바보죠. 만기 된 적금으로 지난해 말까지 500만원 넣었어요. 못 번 만큼 충당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많이 잃었어요.”

쿠팡 알바, 잘라낸 카드, 줄어든 적금, 실패한 주식 투자, 무엇보다 친구들을 생각하며 시린 여름을 보냈다. “친구들은 다 일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러지. 저 자신이 너무 없어 보이고 초라해지더라고요. 친구들이 기사 보내면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밥도 사주는데, 처음에는 고맙다가도 불우이웃돕기 당하는 것 같고.”

2020년 가을: 나를 탓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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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 서울의 한 지하철역 인근에서 만난 11년차 여행업계 종사자 서민정(35·가명)씨.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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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정(35)의 회사가 11월 문을 닫았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서민정은 유럽을 누볐을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함께하는 그리스 역사 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중이었다. 주로 동남아 지역을 담당했던 그의 첫 유럽 출장이었고, 인솔자로 거듭나기 위한 도전이었다. 무산됐다. 환불 전화만 처리하다 6월부터 사실상 업무가 종료됐다. 직원 10명이 안 되는 작은 회사였다. 몇 달을 더 버티다가 문을 닫았다. 뿔뿔이 흩어진 동료들 소식을 간간이 듣는다. 다단계를 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들었다.

“언젠가는 문을 다시 열 거고, 그럼 제자리로 돌아와야지 생각했는데 폐업이 결정됐어요. 돌아갈 곳이 사라진 거죠. 박봉을 견디면서 10년을 버틴 회사가 사라지니까 방황이 시작되더라고요.” 방황했다. 여행 일을 시작했던 스물다섯 자신을 뒤늦게 떠올렸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지금의 나는 달랐을까, 더 나았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거죠.”

첫발을 내딛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행이나 관광과 무관한 분야를 전공했다. 취업할 때가 됐다. ‘여행 자격증 학원이 있는데, 그 자격증을 따면 여행사 입사가 수월하다. 학원이 취업도 알선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했다. 4학년 2학기, 25살에 취업했다. 토익 시험도 치르기 전이었다. “한국 사람치고 여행 싫어하는 사람 없어서” 그런지 업계는 활황이었다. 기본급(170만원)은 내내 낮았다. 직원들 항의로 출장에 따른 인센티브제도가 겨우 생겼지만, 11년 일했는데 월급 통장에 한 달 220여만원 정도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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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서울의 한 지하철역 인근에서 만난 11년차 여행업계 종사자 김정수(32·가명)씨.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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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그렇게 서민정은 실업자가 됐다. 실업급여(160여만원)가 나왔다. 최대 8개월까지다. 데드라인 앞에 연인과의 결혼은 자연스레 미뤄졌다. “나한테 그 정도의 시간은 있겠구나 안도감도 들지만 동시에 이 안에 정말 뭘 해야겠다는 생각”에 초조함을 느꼈다.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해를 넘겨버린 2021년 1월1일 자정. 그는 엄마와 술잔을 기울였다. “어차피 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야.” 맞는 말이었다.

2020년 겨울: 이직의 벽은 높다


“올해도 힘들죠. 2023년까지 봐야죠. 코로나가 끝난다 하더라도, 비슷한 감염병이 올 수 있잖아요. 그럼 지금 이 사태가 또 반복될 텐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업을 이어나가야 하나 생각하다보면, 여행업은 내 업으로 삼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가 끝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고 결과적으로 제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니,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김정수(32)의 말은 단념이다. 또한 다짐이다. 몇 년이고 기다리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공기업을 준비하게 된 이유다. 특히 안정성에 끌렸다. 여행업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코로나19 앞에 깨달았다. 국민내일배움카드로 공기업 취업에 필요하다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7월이다. 결혼한 터라 유급휴직 급여(70%)도 부족했다. “소득을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개인적인 소비는 한 달 7만원만 썼고 회사 허가를 받아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러나 지원한 공기업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한 달은 폐인처럼 살았다. 불면증이 찾아와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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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정보기술(IT) 계열 청년 구직자가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포스터를 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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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일한 그의 숙련은 깊되 넓지 않다. 그리고 그의 깊은 숙련이 필요한 산업은 무너졌다. 여행업계가 아니라면 다른 직종에서 활용이 불가능하다. 여행업계에서는 그의 직무를 오퍼레이터라고 부른다. 국내외 여행지를 발굴하고 일정을 계획해서 판매하는 전반을 맡는다. 오퍼레이터가 다루는 예약관리시스템은 회사별로 다르고 시스템을 능숙하게 관리하는 데 3년 이상이 소요된다.

국민내일배움카드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널려 있는데, 무용했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 딱 거기까지였다. 32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내가 쌓아놓은 커리어는 다 버려야 하는 건가. 32살이면 남들은 다 대리 이상 다는데 나는 사원으로 시작해야 하는 걸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무서워요. 시대가 변화하고 산업 규모나 구조가 바뀔 거라는데, 정부가 그런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산업군을 육성하면 안 되는 건가요?” 9월에 이르러 모바일 금융서비스 업체에 지원해 면접까지 봤지만 떨어졌다. “왜 여행업을 벗어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산업 전체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그는 이제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든 구직자와 경쟁해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말하지만, 여행업 한 분야에서만 일해온 이 ‘중고 신인’들이 당장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는 건 쉽지 않다.

계절을 한 바퀴 돌아온 지금, 강미나 회사가 받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원 기한(3월31일)은 끝나간다.(정부는 재연장을 검토한다.) 서민정의 실업급여 종료 시한도 몇 달 남지 않았다. “유럽 여행 인솔자로 커리어를 발전시킬”(서민정), “착실히 일해서 돈을 더 많이 모을”(박정연) 수 있었던 시간이 사라졌다. “자격증을 6개 따도 결국 아무것도 안 한 느낌”에 고개 숙이거나(강미나), “시대는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만 가만있다는 무서움”으로 대신 채웠다. 그렇게 다시, 봄이 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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