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첨탑과 종의 만남” 프란시스코 교황의 역사적인 이라크 방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가톨릭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했다. 코로나19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험으로 만류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교황은 “평화와 화합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며 순방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라크인들은 종교를 막론하고 교황의 방문을 뜨겁게 환영했다.

경향신문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프란시스코 교황이 5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무스타파 알 카디미 이라크 총리의 안내를 받고 있다. 바그다드|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황은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출발해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했다. 이라크 공항 주변에는 교황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라크 국기와 바티칸 국기를 양손에 든 환영 인파가 가득했다. 바그다드에 사는 시아파 무슬림 미크다드 라드히는 “그동안 이라크인들은 종교와 종파를 막론하고 모두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며 “교황의 방문이 우리가 화합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NBC방송에 말했다.

푸아드 후세인 이라크 외무장관은 “이라크인들이 교황의 ‘평화와 관용의 메시지’를 환영하고 있다”며 이번 방문을 ‘첨탑과 종’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첨탑’에, 가톨릭 성당을 ‘종’에 비유한 것이다.

경향신문

이라크 시민들이 5일(현지시간) 바그다드의 한 도로에서 프란시스코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바그다드|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라크는 원래 중동에서 가장 많은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던 ‘문화와 종교의 용광로’였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가 모두 선조로 삼는 아브라함의 태생지가 이 곳에 있다. 있는 곳이다. 기원전 586년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빌론 왕국이 현재의 이라크이고,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도마가 기독교를 전파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해온 곳 또한 이곳이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덕분에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유적들은 종교 화합의 현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세력을 확장하고, 2014년에는 알카에다보다 더욱 극단적인 IS가 등장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에 자부심을 가져온 이라크인들의 자랑은 산산조각이 났다. 2002년 140만명에 달했던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은 극단주의 단체의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져 2019년에는 25만명 아래로 줄어들었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여러 차례 이라크를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전란으로 찢긴 이라크를 위로하고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이 변수가 됐다. 이라크 내 극단주의 단체의 테러 공격도 끊이지 않아 교황청 안팎에서는 일정을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많았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도 이라크 방문을 추진했지만 전쟁 위기가 고조되며 방문을 취소한 바 있다. 하지만 교황은 지난 3일 주례 연설에서 “이라크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방문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교황은 8일까지 3박4일간 이라크에 머문다. 도착 당일에는 2010년 테러로 50명 이상이 숨진 수도 바그다드의 구원의 성모 성당에서 성직자와 신학생들을 만난다.

또 6일에는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로 이동해 이라크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아파 성직자인 그랜드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를 만난다. 가톨릭 교황과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의 사상 첫 만남이다. 교황은 이어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 평원을 방문해 종교 간 모임을 갖는다. 7일에는 한때 다양한 종교인이 공존했지만 IS에 의해 황폐해진 모술 지역을 찾아 전쟁 희생자를 추모할 예정이다.

교황은 출발 전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나는 참회와 평화의 순례자로서 이라크에 간다. 수년간의 전쟁과 테러 이후 주님께 용서와 화해를 간청하는 참회하는 순례자, ‘여러분은 모두 형제자매’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평화의 순례자”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춤추는 시장 “이리대랑게”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