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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남자 핸드볼 정의경의 마지막 꿈…도쿄올림픽 본선행 티켓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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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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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하는 경기가 11살부터 시작됐던 저의 핸드볼 인생 최고의 경기가 됐으면 해요.”

남자 핸드볼 스타 정의경(두산·36)은 28일 진천선수촌에서 대표팀 후배 선수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생일(28일) 케이크를 받고 한참 가슴을 쓸어 내렸다. 정의경은 이달 올림픽 최종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 합류를 생각하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조용히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싶었다. 정의경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대한핸드볼협회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지만 과연 전성기가 지난 몸 상태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하지만 후배들의 정성을 보며 있는 힘을 전부 쥐어 짜 보기로 했다. 정의경은 “이번에 대표팀 합류를 계속 고사했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뻔했다”고 말했다.

정의경은 강재원(부산시설공단 감독)-윤경신(두산 감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남자 핸드볼의 마지막 슈퍼스타 계보다. 후배들이 케이크에 썼듯이 ‘화석’ 같은 존재다. ‘핸드볼의 허재’라는 수식어도 어색하지 않고,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에서 ‘원조 꽃미남 선수’로 불린 것도 처음이다. 포지션은 팀 공격을 리딩하고 돌파와 득점을 주도하는 센터백이다. 농구로 따지면 만능 포인트가드다. 준수한 외모에 스카이 슛, 스텝 돌파 등 화려하고 지능적인 플레이로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에는 이에 매료된 영국 여성 팬 수십 명이 한국 경기만 쫒아 다녔다.

주요 국가 대항전 A매치에는 101회 출전했다. 축구와는 달리 핸드볼은 각종 대회 지역 예선, 친선 경기 등이 많아 A매치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도 정의경의 경우 올림픽 본선과 지역 예선, 세계선수권, 아시아경기, 아시아선수권 본선 경기 출전 A매치만 따져도 100회를 넘는다. 정의경은 “2003년 고교 때 훈련 멤버로 대표팀에 들어간 후 18년 가까이 대표 선수로 뛰었다”며 “갓 대표팀에 데뷔했을 당시 어렸던 여성 팬들이 이제는 아이를 안고 경기장에 와 응원을 해준다”고 웃었다.

정의경은 남자 핸드볼이 세계에서 통했던 시대와 아시아 정상에서 미끄러진 시대를 동시에 경험한 세대다. 그래서 고마움과 책임감, 미안함이 교차한다고 했다. 정의경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을 이기고 8강까지 갔다. 이듬해 세계선수권에선 스페인도 잡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조별리그 전패를 했어도 선전했다.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유럽과 대등한 경기를 했다”며 “이후에 내가 후배들에게 제대로 바톤을 이어주지 못한 것 같다”고 자책했다. 정의경은 “프랑스, 스위스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이적을 했다면 후배들에게도 유럽 진출의 길이 열릴 수 있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결승에서 카타르를 이겼더라면 카타르가 더 이상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수준이 된 카타르를 비롯해 중동세가 성장하게 된 동기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 대표팀은 9일 출국해 몬테네그로에서 열리는 최종 예선에서 노르웨이, 브라질, 칠레와 맞붙는다. 13일 칠레, 14일 브라질, 15일 노르웨이를 상대하는데 상위 두 팀이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다. 그러면 2012년에 이어 9년 만의 올림픽 진출이다.

“도쿄올림픽에 못 나가면 남자 핸드볼은 더 밑으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전력상 노르웨이는 이기기 힘들고 칠레, 브라질을 잡아야 하는데 초반 기선 제압이 중요해요. 이 두 경기에만 출전할 것 같은데 죽기 살기로 힘을 쏟아보겠습니다.”

선수촌에서 받는 마지막 생일 케이크가 없던 힘까지 내게 한다는 그다.

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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