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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뉴스톡톡]값 올랐는데 '가격인상' 아니라는 식품업계…속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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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인상이 아닌 할인율 조정" 항변

비난 여론·물가 당국 '눈치'에 '가격인상' 금기어

뉴스1

5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설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신선식품뿐만 아니라 가공식품 가격도 제조업체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으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롯데칠성음료는 사이다와 콜라 등 가격을 6년 만에 평균 7% 인상했고, 풀무원 두부와 콩나물의 가격은 10%, 샘표 통조림 제품은 40% 가량 인상했다. 오뚜기는 지난해 오뚜기밥(210g), 작은밥(130g), 큰밥(300g) 등 즉석밥 3종 가격을 평균 8% 인상한 데 이어 올해 초 7~9% 인상키로 했다. 202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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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주현 기자 = "가격 인상이 아닌 할인율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최근 가격을 인상한 식품업체 관계자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내놓는 답변입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올랐지만 업체들은 가격을 인상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소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제품을 구매하면서 예전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게 됐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이 맞습니다. 그런데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라니 왠지 속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업체들의 속내는 이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는 상시 할인이 적용된 제품들이 꽤 많습니다. 식용유, 참치캔, 소스, 컵밥 등이 대표적입니다.

가령 기존 소비자가는 1000원이지만 대형마트와 협의 등을 통해 100원의 할인 프로모션을 연중 상시로 적용해 소비자들은 900원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인율을 10%에서 5%로 조정하면 소비자들은 950원에 구매해야 합니다. 소비자가는 그대로지만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은 오르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식품업체이 가격 인상이 아닌 할인율 조정에 나서는 것은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반감을 덜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최근 먹거리 가격 인상이 계속되자 이들 업체에 대한 반감과 사회적 비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가격 인상이 아닌 할인율 조정 카드를 꺼내고 있습니다. 가격을 올린 효과를 보면서도 가격 인상은 아니라는 명분을 가질 수 있는 셈입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식용유의 가격 할인율을 조정했고 오뚜기 역시 상온죽과 컵밥, 참치캔, 소스류 등의 할인 폭을 줄였습니다. 이들 업체들은 모두 "할인하던 것의 할인 폭 조정을 요청한 것이지 소비자가를 인상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합니다.

뉴스1

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이 진열돼 있다. 롯데제과가 가격 정찰제를 확대하고 일부 아이스크림 제품 가격을 하향 조정했다. 이에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반값 할인'이 사라져 소비자들의 체감은 가격인상으로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가격정찰제 확대로 소비자 신뢰 회복를 회복하고 사업 경쟁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021.3.1/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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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정찰제 확대라는 명분도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업체들은 그동안 높은 할인률로 소비자 신뢰가 무너졌고 수익구조가 갈수록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 돼 왔습니다. 대부분 아이스크림이 연중 반값 할인행사를 하는 것을 많이 봐 왔습니다. 심지어 반값 할인을 내세운 아이스크림 전문점까지 생겨났는데요.

이에 업체들은 2011년 아이스크림이 오픈프라이스(권장소비자가격 표시금지제도) 대상 품목에서 제외되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지난달 15일 롯데제과는 Δ더블비얀코 Δ더블비얀코(초코) Δ말랑카우비얀코 Δ와 등의 아이스크림 제품의 가격을 1500원에서 1000원으로 조정했습니다. 얼핏 보면 가격 인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일반적으로 정가 1500원짜리 제품은 50% 할인이 적용돼 소비자들은 750원에 구매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가격 조정으로 50% 할인이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은 750원에 살 수 있었던 제품은 1000원에 구매해야 합니다. 정가는 내렸는데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은 33% 인상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겁니다.

아이스크림 업체들은 소비자 불신을 없애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설명합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아이스크림을 정가에 구매해야 한다는 인식이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확대된 것은 대폭 가격을 할인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의 마케팅이 주원인입니다.

이처럼 식품업체들이 가격인상을 가격인상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또한 물가 인상에 민감한 정부의 눈치를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실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인상할 경우 모 부서에서 연락이 와 가격인상에 대한 배경 등을 캐묻고 철회를 종용하는 등 압박이 들어온다"고 귀띔했습니다.

최근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식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대두와 소맥, 원당 등의 국제 물가가 크게 올라 업체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 인상을 가격인상이라 밝히지 못하고 할인율 조정, 가격정찰제 확대 등으로 비난 여론을 피해가려는 모습은 씁쓸합니다. 소비자들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가격인상 대신 다른 말로 포장하는 것은 또다른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식품업계들이 고객으로 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MZ세대들에겐 이런 꼼수가 가격인상보다 더 나쁘게 인식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공정'과 '정의'에 그 어느 세대보다 민감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가격인상 요인을 설명하고 가격이 오른 만큼 더 나은 품질과 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게 오히려 더 떳떳한 모습 아닐까요.
jhjh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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