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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임직원 치밀한 땅투기…지분 쪼개기 가짜농사계획서 60%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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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참여연대와 민변 관계자들이 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의혹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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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사전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주도의 부동산 공급대책' 역시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까지 선언한 마당에 공공주도 부동산 정책을 이끌어가야 하는 LH 직원들이 대거 투기에 나선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행법에 업무상 취득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택이나 토지 등을 취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단순히 "시세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며 투자를 강행해도 이를 제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4 대책의 일환으로 수도권에 11만가구를 공급하기 위한 추가 신규 택지를 발표할 예정이라 자칫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극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4명의 LH 임직원과 가족들이 총 10개의 필지(2만3028㎡, 약 7000평)를 99억45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금만 약 58억원인 것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김태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마치 LH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도시 토지보상 시범사업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날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산하 기관장들과 신년회 자리에서 "기관장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청렴한 조직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뒤늦게 집안 단속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LH 임직원들의 토지 매입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 기간은 변 장관의 LH 사장 재직 시절(2019년 4월~2020년 12월)과 겹친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참여연대와 민변도 임직원들에 대한 LH의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당시 기관장이었던 변 장관 책임론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날 사전 투기 의혹 제기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토부는 해당 지역에 대한 사실 관계를 신속히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수사 의뢰 등 철저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이들이 직업적 경험을 토대로 영민한 투기 계획을 세운 것으로 봤다.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토지 매입의 98.6%는 농지(전답)이기 때문이다. 농지를 취득하려면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농업경영계획서에는 농업 경영을 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 및 농업 기계·장비·시설의 확보 방안 등을 써야 한다. 김남근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LH 직원이 농사를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허위·과장 영농계획서를 제출한 투기 목적의 매입"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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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등은 LH 임직원들이 매입한 일부 필지에서 부동산을 분할하거나 소유권을 나누는 '지분 쪼개기'가 일어난 것으로 봤다. 지분 쪼개기는 지구 지정 전 지분을 나눠 입주권 등을 다수 확보하는 방식이다.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필지(5025㎡)는 지난해 2월 매매계약이 체결된 뒤 4개 구역으로 땅이 쪼개졌다. 각 필지는 LH의 대토보상 기준이 되는 1000㎡ 이상으로 나뉘었다.

참여연대와 민변 관계자는 "토지 취득 이후 지분이 쪼개진 것을 고려해보면 토지 매수자들이 무엇을 노렸는지 알 수 있다"며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LH 직원 명단 등을 대조해본 결과 상당수가 LH에서 보상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직업적 경험을 토대로 투기 계획을 세밀하게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970~1980년대에나 일어날 법한 범죄가 다시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며 "토지수용에 관한 시스템이 그때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땅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추진하는 토지수용 및 현금청산 제도는 우리가 선진국이 되면서 없어졌어야 할 제도"라며 "이번 일을 토지수용에 대한 시스템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같은 사례가 또 일어나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따르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공사가 공급하는 토지 등을 취득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LH 내부 임직원 행동강령 역시 해당 법에 준하는 규정을 둬 사업 후보지에 대한 투기 행위를 막고 있다. 하지만 미공개정보 이용에 대한 입증이 어려운 데다, 토지 취득 자체를 막는 규정은 없다.

LH 직원들의 사전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부의 2·4 대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2·4 대책을 통해 공기업이 민간 재개발·재건축 조합을 대신해 정비사업을 주도하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 도심 내 역세권과 준공업지, 저층주거지를 개발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역시 LH 등 공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공공개발을 주도해야 할 LH가 투기를 주도했으니 공공개발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공공재개발·재건축을 비롯해 공공주도 도심개발 사업 등이 지금보다 더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민변 측 관계자 역시 "LH 임직원들이 신도시 예정지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토지 투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공공주택사업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고, 토지를 강제로 수용당하는 주민들은 심한 박탈감을 느낄 것"이라고 비판했다. 누리꾼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부동산 카페 회원은 "전문성도 없고 기본적 도덕성도 갖추지 못한 LH가 대한민국 개발사업을 독점하도록 만든 정부가 문제"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공공주도 개발만 주장하는 정부와 당국자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전 투기 의혹 제기에 국토부와 LH는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주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3기 신도시 전체 토지주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는데, 국토부는 우선 광명시흥 지역 토지주 전수조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를 기다려 본다는 입장이다. LH도 사전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직원 12명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자체 조사에 나섰다. LH 직원들의 다른 비리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8년 검찰은 공공택지지구 개발사업을 감독하면서 일감을 특정 업체에 몰아주고 그 대가로 수천만 원의 금품을 제공받은 LH 직원 A씨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

[김동은 기자 / 이윤식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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