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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김정은 핵 전력 키우는데…한국, 3년전 '따뜻한 봄날' 타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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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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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 관계 및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자제하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상황이다. 북한은 당장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한미동맹에 기반한 남북 관계 재조명과 북한 비핵화 과제는 차기 대선에서도 안보 분야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다.

◆ 북한 김정은, 핵 독트린 공식화


핵 전력의 세대교체를 배경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제8차 당대회에서 남북 관계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는 놀라운 두 가지 조치를 공식화했다. 우선 김정은은 당대회 총화보고에서 핵무기 선제 사용(first-use) 독트린으로 전환했음을 시사했다. 즉 "공화국이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여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핵무기는 적대적 핵보유국의 침략이나 공격을 격퇴하고 공격에 대해 보복하기 위해 최고사령관의 최종 명령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발언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핵 선제 사용 독트린 전환과 함께 김정은은 핵무기의 소형 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 현대전에서 작전 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각 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겠다며 주목할 만한 언급을 했다. 처음으로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무기 개발을 공식화했지만 그 발언에 담긴 의도는 북한이 실전에 배치하기 시작한 신형 단거리 미사일이 갖고 있는 능력을 표현한 것으로, 이들이 현대전에서 작전 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개발한 신형 미사일들은 스커드 계열이나 노동 미사일 등 소련이 1950년대 개발한 구형 미사일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이들 미사일은 액체 연료가 아닌 고체 연료를 사용해 연료 주입 없이 언제든지 발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 군이 보유한 현무 계열 미사일과 정확성에서 큰 차이가 없다. 북한 신형 미사일은 500㎞를 날아가 작은 집 정도를 맞출 수 있는 정확성을 갖는다.

북한 신형 미사일은 북한에 상대방의 군사 목표를 사전에 정확히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핵전쟁 수행 능력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북한 핵능력은 미국 본토와 서태평양상 미군기지를 핵공격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 전력이다.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면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의 정확한 선제 핵공격으로 한국 군을 제압·무력화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핵전쟁을 주도할 수 있는 단계에 돌입했다.

매일경제

◆ 한국을 겨냥한 핵 전력의 환골탈태


북한 핵 전력의 비약적 발전을 배경으로 북한 정권은 당대회에서 통일노선과 관련한 당규약을 개정했다. 당규약 서문에 '조국통일을 위해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고 명시했다. 이 개정과 관련해 노동신문은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고 보도하며 평가했다. 핵미사일에 기반한 우월한 군사력으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겠다는 무력통일노선을 노골화한 셈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북한의 통일노선은 주한미군을 축출하고 남한 정권을 타도해 남한에 인민정권을 수립하여 남조선 혁명을 이루고 남북 합작을 통해 사회주의 통일을 이룬다는 소위 '남조선해방노선(민족해방혁명노선)'으로, 역대 북한 정권에 무력통일노선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렇게 명시적으로 노골화한 적은 없었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핵 전력을 지속적으로 증강시켰다. 이들이 실험에서 보인 성능은 러시아군, 미군 그리고 한국군이 현재 사용하는 최신 미사일과 견줄 만하다. 그러나 우리 군이나 미군이 운영하는 단거리 미사일은 재래식 통상탄두인 반면, 북한 신형 미사일은 핵탄두를 운반한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북한은 한반도 군사 균형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는 신형 미사일을 속속 실전 배치했고,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당대회 직후 군사 퍼레이드에서 선보였다.

과거 북한은 열병식에서, 가장 과시하고 싶은 무기를 보여 왔으며 항상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가장 거대한 미사일을 등장시켜 왔다. 작년 10월 열병식에서도 화성16호로 명명된 세계 최대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등장했다. 그런데 북한 최대 정치 행사인 당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에 대미를 장식한 미사일은 놀랍게도 거대한 ICBM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아닌 한국을 겨냥한 북한판 현무 KH23 미사일이었다. 북한 정권이 이 미사일에 대해 가지는 신뢰와 기대감을 말해준다.

이번에 선보인 KH23 미사일은 기존 미사일을 적잖이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길이가 늘어나고 탄두 길이도 늘어났다. 이는 재래식 탄두보다 무거운 핵탄두를 수용하기 위한 개량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KH23 미사일은 한국 군의 현무와 러시아군의 이스칸데르와 같이 매우 정확하며 탄두가 낮게 날아가면서 회피기동을 하기 때문에 요격하기가 매우 어렵다.

◆ 북한 도발에 맞서지 못하는 정부


문재인정부는 김정은이 말한 '남조선 태도에 따라 3년 전의 따듯한 봄날'에 빠져 있다. 김정은의 한미연합훈련, 첨단무기 도입에 관한 합의 불이행 지적질에 전전긍긍한다. 당장 통일부는 남북 합의 이행 의지가 확고하다고 했고, 대통령은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한미연합훈련을 남북이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합의 불이행에 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1992년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무기를 공식화하고 당규약 개정을 통해 무력통일노선을 노골화한 것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평양선언, 판문점선언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왜 위반이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북한의 전술 핵 전력이 사실상 실전에 배치돼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일은 국민을 보호할 억제력을 갖추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한스 모겐소는 '다투는 두 나라 사이에 한 나라가 핵을 보유하면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하나는 대들다 죽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리 항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33조원을 들여 구축하고 있는 '핵·WMD위협대응'(3축 체계)은 일단 일러야 4~5년 후에나 가능하고 그나마 재래식 전력으로 핵무기를 억제하는 전대미문의 결과를 내놓을지 의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과 자주국방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미국의 핵우산에 더욱 의존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북한의 핵 전력은 크게 증강되고 있는데, 한미연합훈련은 멈춘 상태다. 핵우산의 신뢰성은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의 굳건함과 비례한다.

2017년 말 수소 폭탄 실험과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화성15호 미사일 실험에 성공한 직후, 이를 배경으로 김정은은 평화 공세로 전환했다. 지난 3년간 잘못 포장된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함께 세 차례의 역사적 미·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가 크게 진전되는 듯한 인상을 줬다. 하지만 사실 현재까지 단 한 개의 북한 핵무기도 미사일도 줄어들지 않았고, 핵무기 생산 인프라스트럭처 신고는 몰론 동결도 없었으며 비핵화 정의조차 합의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윤덕민 前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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