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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19대 대통령, 문재인

화해 손짓뿐인 文 3·1절 기념사…日도 "새로운 제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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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3ㆍ1절 기념사

화해하자는 방향성은 뚜렷했지만, 어떻게 화해할지에 대한 방법론이 빠졌다. 1일 문재인 대통령이 3ㆍ1절 기념사를 통해 발신한 대일 메시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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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 도중에 물을 마시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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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3ㆍ1절 기념식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발목잡혀 있을 수는 없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미래’를 거듭 언급한 것은 과거사로 인한 갈등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협력에 방점을 찍자는 취지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이라고도 말했다. 2018년 3ㆍ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진실한 반성”을 강조한 것과는 비교된다.



사죄, 반성 언급 않고 일제 만행도 생략



또 2019년 3ㆍ1절에는 제암리 학살, 지난해에는 봉오동 전투를 기념사에서 주요하게 다룬 것과 달리 올해 기념사에선 이런 일제의 만행이나 탄압 사례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을 전염병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생명을 지킨 것은 3ㆍ1 독립운동으로 각성한 우리 국민 스스로였다”고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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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인과 매드클라운이 헤리티지 합창단과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대한이 살았다'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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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 대통령은 양국관계 발전을 강조하면서도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또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며 과거사 문제의 원칙도 재확인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문제는 정부가 추구하는 원칙들이 서로 상충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 중심주의 충족 ▶일본의 신뢰 회복 ▶강제징용ㆍ위안부 피해자에 일본이 배상해야 한다는 사법부 판단 존중 등 세 가지 원칙 사이에서 정부가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기념사에는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조치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피해자 중심-日 존중’ 사이 접점 난망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과거 직시와 미래 지향은 정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언적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는 갈등이 더 확산되지 않도록 현 상태에서 관리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며 “피해자 중심주의 위배를 이유로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한 현 정부로선 피해자 중심주의와 일본 입장 존중 사이에서 절충된 입장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협력의 구체적 예로 도쿄 올림픽을 들며 “한ㆍ일 간, 남북 간, 북ㆍ일 간 그리고 북ㆍ미 간 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쿄 올림픽은 정상 개최 여부조차 불확실하고, 문 대통령 바람대로 도쿄 올림픽이 ‘평창 올림픽 2.0’이 되려면 남ㆍ북ㆍ미ㆍ일 간에 사전에 정교한 외교적 조율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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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3ㆍ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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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과거의 문제에서 미래의 문제로 논지가 옮겨간 것은 지난해에 비해 큰 전환이지만, 그래서 과거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도쿄 올림픽을 구체적 현안처럼 내놓긴 했지만, 이 자체가 굉장히 고난이도의 어젠다라 달성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행동 없는 메시지로는 방향 전환 어려워”



실제 위안부 합의만 하더라도 정부는 최근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정부의 공식 합의’라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위안부 합의 계승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직접 “현금화는 바람직하지 않다”(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고 했지만, 현금화를 막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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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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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했지만, 일본 입장에선 한국이 진전된 제안 없이 ‘일본이 먼저 움직이라’고 하는 것처럼 받아들일 여지가 있는 셈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까지는 좋은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은 안 보이니 일본은 냉담하고 추동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이은 메시지의 연속성은 좋은데, 메시지만 발신하고 구체적인 행동이 없으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 전환은 일어나기 힘들다”며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만 하더라도 현금화는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려면 피해자 접촉 등 먼저 국내적 노력을 통한 상황 정비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日 언론 “새 제안은 없었다”



이와 관련, 일본 교도통신은 문 대통령의 3ㆍ1절 기념사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역사 문제와 분리해 일본과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강조했지만, 일본 정부를 향한 구체적인 요구나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 신문도 “(문 대통령이)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면서도 “위안부 등 현안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유지혜ㆍ정진우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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