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3도면에서 튀어나온 한국형전투기의 첫 위용…다음달 출고식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 24일 카이 현장 ‘미디어데이’ 행사

한겨레

지난 24일 최종 조립 막바지에 한창인 한국형전투기(KF-X) 시제 1호기. 지금은 동체가 옅은 녹색이지만, 출고식을 앞두고 짙은 잿빛으로 도색할 예정이다. 국방일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경남 사천 카이(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한국형전투기(KF-X) 제작 현장. 축구장 3개 남짓한 넓이의 ‘고정익동’(6500평·120m×180m) 한 켠에선 오는 4월로 예정된 한국형전투기 시제기 출고식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어엿한 전투기 형상을 뽐내고 있는 시제 1호기는 동체 이곳저곳에 장비와 부품, 전선 같은 것들이 설치된 채로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제 1호기 동체 밑에선 예닐곱 사람이 작은 트레일러를 가져다 놓고 서로 손짓으로 뭔가를 설명해가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카이 관계자는 “엔진 장착 시험을 마치고 동체 도색 작업을 위해 엔진을 떼어내고 있다”며 “다음주 도색을 마치면 동체가 짙은 회색을 띠게 된다”고 설명했다. 엔진은 도색 작업 중 이물질이 들어갈 우려가 있어서 떼어냈다가 칠을 마친 뒤 다시 장착한다고 한다.

방위사업청과 카이는 오는 4월 한국형전투기 시제기 출고식을 대대적으로 열 계획이다. 앞서 지난 24일엔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미디어데이’ 행사를 열어 그동안 개발 과정과 성과 등을 설명했다. 한국형전투기 사업은 2015년부터 8조8000억원을 투자해 노후화한 F-4와 F-5 전투기를 대체하고 향후 기반 공중전력으로 활용할 전투기를 연구·개발하는 사업이다. 카이의 주도로 인도네시아와 국제 공동 연구·개발 방식으로 추진되며, 사업비는 한국 정부가 60%, 인도네시아 정부가 20%, 카이가 20%를 분담한다.

시제기 출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1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및 임관식에서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이래 대략 20년 만의 첫 가시적인 성과이다. 군 당국이 2002년 11월 합동참모회의에서 신규 전투기의 장기 소요를 결정한 이후부터 따져도 대략 18년여 만이다. 정광선 방사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은 “한국의 첫 전투기가 나오는 기념비적인 이벤트가 열리는 것”이라며 “개발자 입장에서 보면 도면으로만 존재했던 전투기가 실체화해서 연구한 대로 성능이 나오는지 검증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고비”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겨레

한국형전투기(KF-X) 시제 1호기의 동체 밑에 트레일러를 놓고 엔진 탈거 작업을 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형전투기 내년 시험비행…2026년부터 양산


시제기는 4월 출고되는 1호기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모두 8대가 제작된다. 6대는 비행시험을 위한 시제기며, 2대는 지상시험용이다. 비행 시제기는 1년 남짓 지상시험을 거친 뒤 내년 초도비행에 나선다. 시험 비행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2024년 초 초도양산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개발 방식은 두 단계로 나눠 이뤄진다. 첫 단계(Block-Ⅰ)는 2026년까지 기본 비행성능과 공대공 전투능력에 초점을 맞춰 개발이 이뤄지고, 두 번째 단계(Block-Ⅱ)에서는 2028년까지 공대지 전투능력 등 추가무장 시험이 수행된다.

그동안 난관도 있었다. 애초 정부는 한국형전투기 개발을 위해 미국에 25개 항목의 기술 이전을 요청했으나, 미국이 에이사(AESA) 레이더 등 항전장비를 항공기의 임무컴퓨터에 통합해 운용하는 기술(체계통합기술) 4건에 대해 기술 이전을 거부한 것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다른 나라에서 기술 협력을 얻고 일부는 국내 개발도 이뤄졌다”고 말했다.

항공기 개발은 일정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하나라도 차질을 빚으면 곧바로 전체적인 개발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카이 관계자는 “그동안 계획대로 잘 진행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며 “앞으로 시제기의 비행시험 4년 동안 2200여회 비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날씨 등 자연환경도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발된 전투기는 너비 11.2m, 길이 16.9m로, F-16보다는 크고, F-15보다는 작은 크기다. 기체의 뼈대를 이루는 구조물은 중력가속도의 9배까지 견디고 30년 이상 수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알루미늄복합체 타이타늄으로 만들어졌다. 전투기 비행제어에는 이른바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시스템이 채택됐다. 플라이 바이 와이어 방식은 항공기 제어를 기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기 신호로 유압시스템을 움직여 항공기 조정면을 작동하게 하는 첨단 전자식 비행제어시스템을 말한다.

에이사(AESA) 레이더와 적외선 탐색 및 추적장비(IRST), 전자광학 표적추적 장비(EO TGP) 등 첨단 탐지장비가 내장돼 있어, 현대 전장 환경이 요구하는 ‘먼저 보고 먼저 쏘는’ 능력을 갖췄다. 임무 수행 중 이들 탐지장비가 보내온 각종 정보는 컴퓨터에서 융합돼 조종사의 헬멧시현기(HMD)와 대화면시현기(MFD), 전방상향시현기(HUD) 등에 표시된다. 카이 관계자는 “조종사는 이들 첨단 탐지장비를 통해 비행정보뿐 아니라 전장 상황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한국형전투기 교육·훈련용인 ‘조정성 평가 시뮬레이터’(HQS)에서 필자가 전방상향시현기(HUD)를 보며 조종간을 작동해보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장용 스테이션은 양 날개에 6개, 동체 하단에 4개 등 모두 10개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 공대공미사일과 공대지미사일 등 각종 첨단 무기가 최대 7.7톤까지 장착되며, 기총 화기로는 20㎜ 발칸포가 내장돼 있다. 엔진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F414 터보팬 엔진 두 기가 장착됐다. 동체와 날개에 있는 연료통에는 기름 5.3t이 들어가며 공중급유 기능도 탑재돼 있다. 카이 관계자는 “모두 7700개의 구성품과 부품, 550개의 장비, 1200여 종의 튜브와 배관류 등이 들어갔으며, 이들 부품 조립과정에서 볼트와 리벳류도 22만개 이상 쓰였다”며 “부품 국산화율은 전체 비용 대비 65% 수준”이라고 말했다.

■ 스텔스 형상 도입, 레이더 반사면적 줄여


이번에 나오는 한국형전투기는 본격적인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지만 기본적인 스텔스 형상을 갖췄다. 전투기 동체와 날개 등에 반사각 정렬 기술을 도입해 레이더 반사면적을 줄였고, 공기흡입구 통로를 에스(S) 자로 만들어 앞에서 엔진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향후 본격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5세대 전투기로 진화할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카이 관계자는 “스텔스기가 되려면 형상뿐 아니라 도료 등 레이더 흡수 기술과 내부 무장창 등 추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련 기술 개발을 계속해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투기 개발이 완료되면 공군에 120대가 납품된다. 인도네시아는 지분 참여의 대가로 시제기 1대와 기술 자료를 넘겨받아 48대를 현지 생산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분담금을 제때 내지 않아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방사청이 지난달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인도네시아는 총사업비 20%에 해당하는 1조7619억원을 단계별로 분담하기로 했으나 2월까지 내야 할 8316억원 가운데 2272억원만 내고 6044억원을 미납한 상태이다. 당시 논란이 이어지자 방사청은 자료를 내어 “인도네시아측은 한국형전투기 개발 사업의 지속 참여 의지를 표명한 바 있으며 양국은 수차례 실무 협의를 통해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정광선 사업단장은 이날 ”인도네시아가 코로나와 경제 침체 등으로 분담금 납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며 “최대한 함께 간다는 입장에서 협의 중이지만 설사 공동개발이 무산되더라도 사업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한겨레

한국형전투기의 비행제어 계통을 모사해 시험하는 ‘아이언 버드’ 시설. 비행 안정성 검증에 필수적인 설비지만,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 기술 이전을 거부해 국내 개발로 설치했다고 한다. 국방일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사청과 카이는 국외 수출도 기대하고 있다. 정광선 사업단장은 “2000년대 초·중반 사업 추진을 검토할 때 국내 연구기관에서 개발될 한국형전투기의 성능과 외국의 전투기 교체 수요 등을 고려해 300~500대 정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며 “시제기의 시험비행이 이뤄지면 각종 에어쇼 참가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국외 수출의 최대 변수로는 미국 록히드 마틴의 최신예 스텔스기 F-35A의 판매값이 꼽혔다. 카이 관계자는 “스텔스 기능까지 갖춘 F-35의 값이 낮게 책정되면 우리 전투기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얼마 전 F-35 가격을 낮췄는데 우리 전투기의 출시에 맞춰 판매가를 한 번 더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소형무장헬기 지난해 12월 ’잠정 전투적합’ 판정 받아


이날 미디어데이 행사에선 소형무장헬기(LAH)의 개발 현황도 소개됐다. 기자단에 공개된 3000평 규모의 ‘회전익동’ 조립현장 한쪽에는 소형무장헬기 시제기 3대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형무장헬기 사업은 육군의 노후화한 공격헬기(500MD, AH-1S)를 대체하기 위해 민수헬기(LCH)와 연계해 공격헬기를 연구 개발하는 사업이다. 먼저 올해까지 9500억원을 들여 4.5톤급 민수 소형헬기 개발을 마무리하고, 2023년까지 6643억원을 투자해 이를 군용으로 개조한다. 군용에는, 헬기 동체의 장갑이 보강되며 광학·적외선(EO·IR) 카메라 등 표적획득장치(TADS)와 20㎜ 터렛형 기관총, 대전차용 공대지유도탄 등 무장이 추가된다. 카이 관계자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민·군용 두 종류의 헬기를 동시에 개발하는 방식이어서, 부품과 구성품 62%가 공동으로 사용되는 등 개발비와 운용비의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소형무장헬기(LAH) 시제기가 24일 미디어데이 행사에 맞춰 기동 시범을 보이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형 민·군용헬기 개발은 에어버스 헬리콥터(AH)의 H155를 기본 플랫폼으로 두고, 성능을 개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카이 관계자는 “H155 헬기는 관련 파생형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1000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라며 “소형 민·군용헬기의 국산화 비율은 비용 기준 60% 수준”이라고 말했다. 카이는 이미 에어버스 헬리콥터와 공동개발 형식으로 중형 기동헬기 ‘수리온’을 개발해 군과 경찰청, 소방청 등에 납품한 바 있다. 카이 관계자는 “중형급 헬기 수리온(최대이륙중량 8.7톤)에 이어 이번에 소형급 민수·군용공용헬기(최대이륙중량 4.5톤) 개발이 마무리되면 우리나라는 본격 헬기 생산국에 진입하는 기반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형무장헬기 사업은 한국형전투기 사업보다 진도가 빠르다. 지난 2018년 11월 첫 시제기를 출고해 8개월 만인 2019년 7월 첫 비행에 성공했고, 지난해 12월엔 잠정 전투용 적합판정을 받았다. 앞으로 연료계통 내추락 시험, 고·저온환경 챔버시험, 군운용 적합성 시험 등을 거쳐 2023년 개발이 완료된다. 육군에서 20년 넘게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며 코브라와 아파치, 바이퍼 등 34종의 헬기를 몰아봤다는 카이의 김진수 수석조정사는 시제기 헬기 옆에서 “이번에 개발되는 소형무장헬기는 복잡한 국내 지형과 도시 환경에서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강점이 있다”며 “미국의 대형 공격헬기 아파치와 견줘도 파워에서는 밀리지만 기동성은 앞선다”고 말했다.

국외 수출도 추진된다. 방사청과 카이는 이들 헬기의 국내·외 판매 전망에 대해, 2015년 6월 언론 설명회에서 “군용 430여대(국내 250여대, 수출 180여대), 민수용 570여대(국내 150여대, 수출 420여대) 등 1000여대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제시장에서 경쟁 기종으로는 유사한 규모와 비행 성능을 갖춘 인도의 ‘드루브’(Dhruv) 헬기가 꼽혔다. 최대이륙중량 5.5톤인 드루브는 독일 항공사 MBB의 기술지원으로 개발돼 2002년부터 인도군에 배치됐으며, 현재 국내·외 시장을 겨냥해 파생형이 개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앞으로 소형무장헬기를 기반으로 향후 ‘유·무인 복합체계’(MUM-T) 개발도 추진할 방침이다. 첫 단계로는 사단 등 지상부대에서 정찰용 무인기(UAV·드론)를 띄우면 헬기 조종사가 무인기 제어를 넘겨받아 운영하는 방식이 추진된다. 이보형 방사청 헬기사업부장(육군 준장)은 “소형무장헬기과 무인기가 이미 확보돼 있어 이르면 2년 이내에 시범 운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번째 단계로는 헬기에 캐니스터(원통) 발사형 무인기를 싣고 가서 헬기 조종사가 직접 원하는 지역으로 무인기를 날려보내 운용하는 방식이 추진된다. 이보형 사업부장은 “이렇게 유무인 복합체제가 도입되면, 헬기 조종사가 작전 수행 지역에 미리 무인기를 보내 적 상황 등 정보를 획득한 뒤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헬기의 생존율이 50%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천/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sc 기사 보기▶4.7 보궐선거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