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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초등학교 동창인 이 둘은 자라나 한국 야구의 레전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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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친구이자 라이벌 < br> 추신수·이대호의 야구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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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시절의 추신수와 경남고에 재학 중이던 이대호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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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 같은 학년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가 두 명이나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수영초등학교 동창생인 추신수(39)와 이대호(39) 얘기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16년간 정상급 선수로 뛰며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선수가 됐다. 한·미·일 무대에서 모두 활약한 이대호는 2008 베이징올림픽, 2015 프리미어12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조선의 4번 타자’란 칭호를 얻었다.

30년 지기인 두 전설은 이제 KBO리그에서 조우한다. 추신수가 신세계 이마트 야구단과 계약하면서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뛰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은 인천에서 열리는 신세계와 롯데의 개막전(4월 3일)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매치업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두 전설의 야구 인생을 연대기로 정리해 봤다. 정리하다 보면 새삼 두 선수의 위대한 커리어에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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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아시안게임 대만전에서 추신수가 두 번째 홈런을 친 뒤 이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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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7월 13일 부산 수영구에서 태어났다.



6월 21일 부산 수영구에서 태어났다.

1991년



외삼촌이 롯데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정태.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야구 선수를 꿈꿨던 그는 박정태의 권유로 수영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수영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덩치가 어른 같았다. 전학생인 야구부 추신수가 “우리 반에 고등학생이 있다”고 했고, 감독이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운명처럼 방망이를 잡게 됐다.

1995년



부산중으로 진학했다.



대동중으로 진학했다.

1998년



부산고로 진학했다. 전 국가대표 정근우가 동기다.



경남고로 진학했다. 한화에서 은퇴한 장민석이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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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와 이대호 모두 고교 시절 최정상급 투수로 활약했다.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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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투타에서 맹활약, 부산고를 대통령배 정상에 올려놓았다. 2학년으로 대회 MVP와 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배명고와 벌인 결승전에서 에이스 겸 3번 타자로 나와 6.1이닝 1자책과 함께 솔로 홈런을 치며 6대3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배명고 마운드엔 심수창이 있었다.



경남고 2학년. 전국 대회 기록은 봉황대기 4강이 최고였다.

2000년



3학년 때도 부산고를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며 2년 연속 대회 MVP와 우수 투수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결승에선 오승환·이동현의 경기고와 만나 10대3으로 이겼다. 투수 추신수의 대통령배 기록은 4전 전승, 평균자책점 1.74였다.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미국과의 결승전에 구원으로 등판해 4.2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는 등 2승,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다. 타율은 0.263. 대회 MVP와 베스트 왼손 투수에 뽑혔다. 대회 참가 도중에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한다.



청룡기 1회전에서 동산고를 상대로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투수로 활약했다.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네덜란드와의 예선 3차전에서 홈런 두 방을 몰아쳤다. 호주와의 4강전에서도 홈런을 뽑아내는 등 슬러거의 면모를 과시했다. 7-7로 맞선 미국과의 결승전 연장 13회초 1사 이후 안타를 치고 나가 결승 득점을 뽑았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했다. 돌이켜 보면 운명을 가른 선택이었다.



2차 1라운드 전체 4번으로 롯데에 입단했다. 롯데는 1차 지명에선 추신수를 지명했지만, 추신수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선택했다. 당시 SK가 2차 1순위 지명권 3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대호를 거르고 김희걸·조형식·김동건을 지명했다.

롯데에 투수로 지명받아 입단했지만 타자로 전향했다. 그해 9월 호세가 ‘영수! 돈 두 댓!’ 사건으로 출장 정지를 받자 1군에 콜업돼 19일 4번 타자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해 성적은 8타수 4안타 1타점.

2002년



싱글A에서 130경기에 나와 타율 0.303, 7홈런 57타점을 올렸다.



우용득 감독이 붙박이 4번 타자로 쓰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2군으로 내려갔고 우 감독이 사임하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무릎 부상 등으로 몸무게가 30kg 이상 불기도 했다. 타율 0.278, 8홈런 32타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2003년



싱글A에서 110경기에 나와 타율 0.286, 9홈런 55타점을 올렸다.



무릎 부상으로 54경기에만 출전하며 타율 0.243, 4홈런 13타점에 그쳤다.

2004년



더블A팀인 샌안토니오에서 132경기에 나와 타율 0.315, 15홈런 84타점을 올렸다.



타율은 0.248로 좋지 않았지만, 20홈런을 치며 68타점을 기록했다. 정교함보다는 파워가 앞선 타자였다.

2005년



미국 진출 5년 만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10경기에 나서 1안타를 때렸다.



2004시즌과 비슷한 성적을 남겼다. 타율은 0.266으로 소폭 올랐고, 21홈런 80타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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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시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뛰던 추신수. 그는 인디언스로 이적하면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발돋움한다.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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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유니폼을 바꿔입었다. 이적 후 첫 경기인 7월 27일 친정팀 매리너스를 상대로 데뷔 후 첫 홈런을 뽑아냈다. 투수는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그해 3홈런 22타점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도하 아시안게임 승선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당시 김재박 감독은 검증이 필요하다며 뽑지 않았다. 대표팀은 고전 끝에 동메달에 머무르며 ‘도하 참사’란 말이 나왔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발돋움한 시즌이다. 강병철 감독의 지휘 아래 15kg를 감량하고 온 그는 타율 0.336, 26홈런 88타점으로 타율·홈런·타점 1위를 휩쓸며 1984년 이만수 이후 22년 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하지만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이룬 ‘괴물’ 류현진에게 MVP를 내줬다.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타율 0.409, 10타점을 올렸지만 팀의 부진으로 활약이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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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시즌의 이대호. 롯데 타선을 홀로 이끌던 시절이다.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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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렸다. 당시 해외파 특별 지명 1순위로 그를 지명한 SK의 권유로 한국행을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아내 하원미씨의 만류로 미국에 남았다. 돌이켜보면 ‘신의 한 수’이자 한국 야구의 역사를 바꿔 놓은 결정이었다.



롯데 타선이 ‘이대호와 여덟 난쟁이’로 불리던 시절. 롯데가 2006년에 이어 7위를 기록한 가운데 그는 타율 0.335, 29홈런 87타점으로 팀 타선을 홀로 이끌다시피 했다.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2년 연속 받았다. 2006·2007시즌 맹활약에 힘입어 그는 롯데의 암흑기에 팀을 지탱한 스타로 부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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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올림픽의 이대호. 그는 대표팀의 간판 타자로 활약하며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 조선일보DB


2008년



5월 31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 복귀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아메리칸리그 9월의 선수에 선정되는 등 메이저리그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시즌이다. 최희섭이 보유했던 한 시즌 한국인 타자 안타와 타점 기록 등을 경신했다. 94경기에 나와 타율 0.309, 14홈런 66타점을 올렸다. OPS가 0.946에 달하며 OPS형 타자로의 가능성을 보인 시즌이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부임과 함께 상승세를 탄 롯데가 암흑기를 끝내고 드디어 ‘가을 야구’에 나가게 된 시즌. 타율 0.301, 18홈런 94타점으로 앞선 두 시즌보다는 약간 부진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3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의미 깊은 해다. 최종 엔트리 결정 당시만 해도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탓에 동기생인 김태균(한화) 대신 뽑힌 것에 대해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랐던 그는 베이징에 가서는 대표팀의 간판 타자로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7경기에서 21타수 9안타(타율 0.360) 3홈런 10타점. 장타율(0.905)과 홈런(3개)은 전체 1위였다. 첫 경기인 미국전과 4차전인 일본전에서 경기 흐름을 바꾸는 2점 홈런을 때렸다. 이 금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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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WBC 결승전에서 일본 이와쿠마를 상대로 동점 홈런을 치는 추신수.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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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시즌이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3할-20홈런-20도루란 대기록을 작성했다. 15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0, 20홈런 21도루 86타점을 기록했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5.5로 팀 내 1위였다.

그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했다. A대표팀으로는 첫 국제 대회였다. 대회 기간 내내 컨디션을 찾지 못하다가 베네수엘라와 벌인 4강전에서 1회 승부에 쐐기를 박는 스리런포를 터뜨렸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선 5회말 이와쿠마 히사시를 상대로 동점 솔로 홈런을 때리며 메이저리거의 위용을 과시했다. 아쉽게 한국은 일본에 연장 승부 끝에 3대5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타율 0.293, 28홈런을 때렸고 커리어 처음으로 100타점을 딱 채웠다.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참가해 결승에서 5개 모두를 장외로 날리는 괴력을 과시하며 우승했다. 준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두산에 1승3패로 밀려 탈락했다.

친구 추신수와 함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나섰다. 타율 0.278, 5타점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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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추신수와 이대호 모두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추신수는 3할-20홈런-20도루에 출루율 4할을 달성했고, 이대호는 타격 7관왕에 올랐다.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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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만전에서 추신수가 홈런 2개를 친 뒤 이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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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넘버원 타자 자리를 굳힌 시즌. 타율 0.300, 22홈런 22도루로 또 한 번 3할-20홈런-20도루 시즌을 만들었다. 인디언스 최초 기록. 출루율 4할(0.401)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시즌에 올린 90타점은 추신수의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타점이다. WAR도 커리어하이인 5.9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도 14개의 보살로 이 부문 전체 1위에 올랐다.

9월 17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홈런 3개를 때리며 7타점을 올렸다. 투런-만루-솔로 홈런 순으로 쳤다. 손가락 부상만 없었다면 30홈런도 가능한 시즌이었다는 평가다.

시즌이 끝나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메이저리거의 클래스를 보여줬다. 14타수 8안타 3홈런 11타점 8득점 10사사구, 타율 0.571, 출루율 0.750이라는 믿기지 않는 기록으로 금메달을 거머쥐며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KBO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 냈다. 그 누구의 어떤 시즌과 비교해 봐도 모자람이 없다. 그는 타율 0.364, 44홈런 133타점, 장타율 0.667, 출루율 0.444로 ‘괴물’ 같은 시즌을 보냈다. 타율과 타점, 홈런, 최다안타, 득점, 출루율, 장타율 등 타격 7부문 타이틀을 휩쓰는 동시에 시즌 MVP까지 차지했다. 그의 2010시즌 타격 7관왕은 KBO리그의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1-1로 맞선 연장 10회초 결승 3점 홈런을 날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롯데는 2승을 먼저 거두고도 두산에 3패를 당하며 역스윕의 제물이 됐다.

2011년



메이저 등록 일수 3년을 채워 연봉 조정 자격을 얻었다. 인디언스는 5년 4500만달러의 장기 계약을 제안했지만,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FA를 계산하고 그 제안을 거부했다. 약 400만달러에 1년 계약을 맺었다.

부상과 음주운전 적발 등으로 순탄치 않았던 시즌이었다. 85경기만 나서며 타율 0.259, 8홈런 36타점 12도루에 그쳤다.



연봉 조정 신청에서 패하며 6억3000만원을 받게 됐다. 타율(0.357)과 최다안타(176개), 출루율(0.433)에서 1위를 차지했다. 홈런은 27개, 타점은 113개였다.

플레이오프에서 18타수 4안타 1홈런을 기록했다. 팀은 SK에 2승3패로 패하며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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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는 2012시즌 오릭스 유니폼을 입으며 일본 리그에서 뛰었다.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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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011년의 부진을 딛고 다시 팀의 간판 타자로 거듭난 시즌. 타율 0.283, 출루율 0.373에 16홈런 21도루를 기록했다. 리드오프로 본격적인 변신을 꾀한 첫 시즌이다.



일본 오릭스 버펄로스로 이적해 첫 시즌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타점(91개)과 OPS(0.846)에서 일본 프로야구 전체 1위에 오르며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 타자로 자존심을 세웠다. 홈런도 24개를 때려내며 리그 2위에 올랐다.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144경기에 모두 출전한 것도 인상적이다. 퍼시픽리그 베스트9 1루수 부문에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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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즌 신시내티 레즈에서 뛴 추신수.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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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시내티 레즈로 유니폼을 바꿔 입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란 찬사를 받았다. 타율은 0.285로 3할에 못 미쳤지만, 출루율이 무려 0.423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2위를 기록했다. 특유의 선구안으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112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21홈런 20도루로 통산 세 번째 20-20클럽에 들었다. 그는 정확히 300출루를 달성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와일드카드 게임에 선발 출장하며 생애 첫 ‘가을 야구’를 경험했다. 3타수 1안타 1홈런으로 좋은 활약을 했지만, 팀은 2대6으로 패했다.



오릭스 소속으로 141경기에 나서 158안타(리그 8위)를 쳤고, 24홈런(6위), 91타점(6위)을 기록했다. 여전히 일본 리그 최정상급 타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시즌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해 3경기 동안 타율 0.455, 2타점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한국은 1라운드에서 조기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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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1억30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계약을 맺고 2014년부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뛴 추신수.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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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간 1억3000만달러의 천문학적인 계약을 맺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오랜 시간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그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순간이었다. 당시 아시아계 선수로 최고액인 동시에 역대 메이저리그 외야수 6위의 대형 계약이었다.

하지만 첫 시즌은 ‘먹튀’에 가까운 성적을 남겼다. 5월 초까지는 타율과 출루율에서 아메리칸리그 1위를 달리며 ‘모범 FA’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8월 말 왼쪽 팔꿈치에 튀어나온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타율 0.242, 13홈런 40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3년 19억엔의 계약을 맺었다. 타율은 딱 3할(리그 6위)을 채웠지만, 홈런(19개·8위)과 타점(68개·12위)이 아쉬웠다. 재팬시리즈 2차전에서 솔로 홈런, 3차전에서 2타점 적시타를 쳤다. 소프트뱅크가 재팬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프로 경력 첫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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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1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추신수. 3루타로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한 직후의 모습이다.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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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고 벤덴헐크와 함께 팬들에게 하트를 그려보이는 이대호. 그는 재팬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 벤덴헐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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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프리미어12 준결승 일본전에서 2타점 결승 적시타를 치고 기뻐하는 이대호.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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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동전의 양면 같았던 시즌. 전반기엔 타율 0.221로 최악의 부진을 보였으나 후반기에는 리그 최고 활약을 펼쳤다. 신임 감독인 배니스터와 불화설로 시끄러웠던 시즌이기도 하다. 22개의 홈런을 때렸다.

7월 21일 7번 타자로 출장해 아시아 선수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사상 8번째 사이클링 히트. 9월엔 타율 0.410, 출루율 0.524(이상 리그1 위), 20타점(5위)으로 불타오르며 개인 통산 두 번째로 아메리칸리그 이달의 선수에 선정됐다.

팀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하며 두 번째 ‘가을 야구’ 무대에 나섰다. 그는 21타수 5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레인저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2승 후 3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재팬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타율 0.282, 31홈런 98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홈런과 타점은 일본 프로야구 커리어 하이. 퍼시픽리그 지명타자로 베스트9에 들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며 쾌조의 컨디션을 보인 그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재팬시리즈에서도 맹활약을 이어갔다. 1차전에서 4타수 3안타를 친 데 이어 2차전에선 선제 투런 홈런을 때렸다. 4차전에서도 4타수 3안타 4타점을 올렸다. 5차전에선 2점 홈런을 쳤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소프트뱅크의 2년 연속 우승을 이끈 그는 19년 만에 외국인 선수로 재팬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

시즌이 끝나고 WBSC 프리미어12 초대 대회에 출전했다. 일본과 벌인 준결승전 9회초 무사만루에서 2타점 적시타를 쳐 ‘도쿄 대첩’의 주역이 됐다. 그의 결승 타점으로 4대3 승리를 거둔 한국은 결승에서 미국을 물리치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조선의 4번 타자’란 별명으로 유명해진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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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가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고 기뻐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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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인 두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만난 역사적인 장면. / 중계하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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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48경기만 뛰었다. 타율 0.242, 7홈런 17타점에 그쳤다. WAR은 0.2.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벌인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9번 타자로 나와 3타수 무안타에 그친 뒤 이후 경기엔 뛰지 못했다.

4월 4일 친구 이대호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만났다. 경기가 끝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성공적인 일본 경력을 마치고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으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4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맞붙은 연장 10회말 대타로 출전해 끝내기 투런포를 쳤다(추신수는 부상으로 빠졌다). 구단 역사상 첫 루키 끝내기 홈런이었다.

5월 5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선 연타석 아치를 그렸다. 플래툰으로 출전하며 전반기 좋은 성적을 올린 그는 후반기에 부진하며 스탯이 내려갔다. 타율 0.253, 14홈런 49타점, OPS 0.740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7년



어느 정도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몸값을 생각하면 역시나 아쉬운 시즌이었다. 타율 0.261, 출루율 0.357, 22홈런 78타점을 기록했다. 시즌을 앞두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하려고 했으나 구단이 반대했고, MLB 조정위원회가 레인저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3번째 국가대표팀 합류는 무산됐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인 4년 150억원에 친정팀 롯데로 돌아왔다. 34홈런 111타점을 올렸지만, 타격 WAR이 리그 20위(3.68)에 그치며 몸값을 생각하면 아쉬운 활약이었다.

롯데는 5년 만에 ‘가을 야구’에 나섰다. NC와 벌인 준플레이오프에서 3차전 4안타, 4차전 홈런 등을 기록했지만, 팀의 탈락을 막진 못했다. 그는 롯데에서 뛰면서 포스트시즌 시리즈를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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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는 2018시즌 마쓰이가 가진 아시아 선수 최다 홈런 기록을 깼다.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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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는 2018시즌 생애 첫 올스타의 영광도 안았다. 올스타전 행사에 참석한 추신수 가족.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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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생애 첫 올스타의 영광을 안은 시즌이다. 전반기 타율 0.293, 출루율 0.405, OPS 0.911, 18홈런 43타점으로 텍사스 이적 후 최고 활약을 펼쳤다. 7월 4일 44경기 연속 출루를 달성하며 이치로 스즈키의 아시아 최다 연속 출루 기록을 넘어섰고, 8일엔 47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훌리오 프랑코가 25년 동안 보유한 구단 기록을 깼다. 연속 출루 기록은 ’52′에서 마감됐다.

올스타전에선 2-2로 맞선 8회초 넬슨 크루즈 타석 때 교체돼 나와 좌완 조쉬 헤이더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기록했다. 진 세구라의 홈런으로 홈을 밟았다. 9회초엔 범타로 물러나며 올스타전 통산 기록은 2타수 1안타 1득점이 됐다.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처지며 홈런 3개를 추가하는데 그쳤다. 타율 0.264, 21홈런 62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144경기에 모두 나서 타율 0.333, 37홈런 125타점으로 롯데 타선을 이끌었다. 타점은 2위, 최다안타(181개)는 3위였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려 있던 시즌 막판 부진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지명타자로 첫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그는 KBO리그에서 1루수로 4회, 3루수로 1회, 지명타자로 1회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2019년



커리어 사상 가장 많은 홈런(24개)을 때려낸 시즌. 151경기를 뛰면서 전 시즌(6개)의 2배가 넘는 15개의 도루를 했다. 타율 0.265에 출루율은 0.371, 타점은 61개였다. 37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좋은 성적이지만 몸값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운 기록이다.



‘에이징 커브’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부진했다. 타율 0.285, 16홈런 88타점으로 2006년 이후 가장 개인 성적이 나빴다. 더구나 롯데가 최하위로 추락하며 여러모로 최악의 시즌이 됐다.

2020년



FA계약 마지막 시즌. 코로나 여파로 단축 시즌이 치러지며 33경기만 뛰었다. 5홈런 6도루 15타점을 기록했다.

9월 27일 시즌 최종전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 출전해 기습번트를 대고 전력질주로 내야 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베이스를 밟는 과정에서 발목이 다쳐 교체됐다. 교체된 이후 텍사스 동료들과 포옹하며 마지막임을 암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신세계 이마트 야구단과 계약하면서 이 타석은 그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타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20홈런에 110타점을 기록했지만, 타격 WAR은 리그 68위인 1.01에 그치며 논란이 됐던 시즌이다. 클래식 스탯은 좋은 편인데 세이버매트릭스로 보면 연봉에 전혀 걸맞지 않은 시즌이 됐다. 규정타석을 채운 지명타자 중 wRC+ 최하위를 기록했다.

조선일보

25일 입국 당시 신세계 임시 유니폼을 입은 추신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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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1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2년 총액 26억원에 계약한 이대호. /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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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세계 이마트 야구단과 1년 27억원에 계약하며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연봉 중 1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롯데와 2년 26억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8억원에 연봉 8억원, 우승 옵션이 매년 1억원씩이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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