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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국내 백신 접종

공염불된 대통령 1호 접종 [김세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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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강한 힘을 뿜어낸다.

2020년 12월 19일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코로나19 백신을 1호 접종한 장면은 길이 남을 것이다.

세기적인 무서운 팬데믹을 인류가 1년 이내에 무찌른 승리의 깃발이며 이스라엘 총리가 1번 투사였음을 역사가 기억하도록 할 것이다.

그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의 접종 사진이 지면을 장식했지만 역사는 2등을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이미 세계 각국 정상의 접종 사진을 보아온 만큼 26일 세계 104번째로 첫 접종을 시작한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접종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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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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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의 첫 접종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에서 아직 안전 승인이 나오지 않았고 질병관리청도 65세 이하만 맞도록 교통정리를 한 상황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65세 이하를 접종 대상으로 정한 만큼 그보다 연상인 문 대통령이 먼저 접종하면 이런 저런 정치적 잡음이 나올 텐데 '백신의 정치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정리했다. 그래서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문제와 관련해 TV에 자주 등장하는 김우주 고려대 교수에게 현재 세계 각국이 접종 중인 백신을 우수성에 따라 나열해 달라고 부탁해봤다.

김 교수는 1위 화이자·모더나, 2위 노바백스·스푸트니크, 3위 얀센·아스트라제네카 순으로 그룹 지었다.

mRNA 방식인 화이자의 경우 약효가 95%로 으뜸이며, 한국이 첫 접종하는 아스트라제네카는 64%로 3등급이다. 중국의 백신들은 4등급으로 완전 꼴찌일 것이다.

한국은 국력이 세계 10위권인데 접종 순번은 100번이 넘고, 미국 이스라엘 일본 싱가포르 등이 맞는 화이자가 아니고 아스트라제네카밖에 우선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현실은 기쁘지는 않다.

모 국회의원은 "세계 각국 정상이 그 나라 1호로 백신을 접종하는 장면을 내보냈지만 부작용이 많다는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은 정상은 없다. 한국도 화이자 백신 접종을 곧이어 시작하니 그때 문 대통령이 맞으면 된다"고 말한다. 1호는 아니지만 화이자를 며칠 후 접종하는 장면은 나올 것 같다.

스코틀랜드에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65~79세를 대상으로 54만명, 80세 이상에선 21만명을 접종했는데 80세 이상 고령자들도 효과가 양호하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선 아스트라제네카를 맞느니 다른 백신을 기다리겠다는 거부감이 52%에 달할 정도다. 프랑스 남서부 페리괴 병원 간호사들은 아스트라제네카를 맞고 50~70%가 두통, 피로감, 오한, 발열, 멀미, 근육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훤히 꿰뚫고 있는 한국인도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해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있을 터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리더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쏙 빠져버리고 "너희들이 맞아라"고 등을 떠미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백신 접종 불안감 해소를 위해 먼저 접종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솔선수범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피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의 회견이 있기 5일 전에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중국산 백신 시노백을 TV 생중계하에 접종한 바 있다.

부자 나라가 아닌 인도네시아는 미국·영국 제품을 구하지 못해 값싼 중국산(시노백)을 서방국가가 인증도 안 한 상황에서 용감하게 접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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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의원. /사진 출처=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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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야당 측은 "신년 기자회견 당시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상황이 바로 지금"이라며 문 대통령의 1호 접종을 독촉했다. 그러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민정 의원 등 수호부대가 득달같이 나서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고 따지고,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과 험악한 말을 주고받으며 설전을 벌였다.

청와대는 첫 접종 일에 가까운 막바지에도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맞는 상황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더니 질병청은 "26일 전국 9시 접종자 모두가 공동 1호"라고 정리하며 "접종 사고로 사망하면 4억원을 지급한다"고 정은경 청장의 발표가 있었다.

정 청장의 발표가 대통령이 1호로 접종하기로 했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실제 문 대통령의 1호 접종 사진이 네타냐후 총리, 바이든 대통령, 에르도안 대통령처럼 당당하게 신문 1면 톱에 실린다면 팬데믹을 무찌른 영웅적 모습으로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까를 상상해봤다.

나는 두 사람의 전직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대통령이나 현직 총리라면 어떻게 처신했겠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두 분 다 "나라면 맞았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A 전 총리는 "위기 시 대통령, 총리는 정상적인 룰(Rule)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 진영 논리 선거 논리가 있겠지만 위기 시에 리더가 앞장선다는 데 누가 시비하겠나. 나라면 먼저 맞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B 전 총리는 "룰 때문에 못 맞겠다고 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불안하지 않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게 급선무 아니겠는가. 가짜뉴스 문제로 언론 개혁한다는데 가짜뉴스 리더가 없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와 싸우면서 세계적 상황을 꿰뚫고 있는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 등 전임 질병본부 관계자들의 견해를 구해봐도 비슷한 답변이었다.

실제 65세를 넘은 국가 지도자들이 부작용를 무릅쓰고 3위급 백신을 자청해 맞았다면 "왜 내 차례를 가로챘느냐"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왜 원칙을 어겼느냐고 비판하는 댓글을 단 네티즌은 더 많은 사람에게 몰매를 맞을 것이다.

사실 코로나19 백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꼴찌로 접종하면서 그것도 3류급만 국민에게 떠맡긴 것은 좀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K방역 칭찬에 우쭐해 백신이면 다 똑같은 종류인 줄 착각했는지 아스트라제네카만 믿고 화이자, 모더나 같은 우수 품목 확보전은 완전 놓쳐서 그렇게 된 것이다.

박능후 전 복지부 장관은 작년 11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에 출석해 "화이자, 모더나가 서로 우리와 계약하자고 한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했다. 그 무렵 1류급 백신 열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런 무능에 대해 책임자가 사과하고 접종을 시작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연히 일찍 백신을 확보해 사진 한 컷 찍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정보기관인 모사드를 동원해 일찍이 화이자와 협상에 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3상 임상 대상으로 써라. 백신 가격도 미국, 독일보다 더 비싸게 쳐주겠다. 그 대신 더 많은 백신을 보장하라"고 베팅했다. 그는 경제 정상화가 일찍 되면 2~3일 치 경제 활동에서 그 백신 값은 나온다고 계산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한국이 서울시장 선거를 할 무렵이면 경제 정상화를 선언할 것이라고 한다.

갈등의 시대에 리더의 위험을 무릅쓴 행동은 국민을 통합시키고 자신의 위치는 단단해진다.

2014년 8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서부 아프리카 에볼라 창궐 지역에서 감염됐다가 간신히 회복한 간호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허그(hug)한 한 장의 사진으로 정치적 분쟁을 일시에 해소했다. 에볼라는 90% 치사율을 기록했고 모두가 꺼리는 데도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용감하게 감염 이력자를 껴안았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을 단합시켰던 한 장의 사진…. 한국은 만들어낼 수 없었나.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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