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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광일의 입] 말 많은 가덕도 신공항, ‘박정희 공항’이라면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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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항은 이름 지을 때 거의 100% 지명(地名)을 땄다. 김포공항, 인천공항, 성남공항, 옛날 여의도 공항, 제주공항, 양양공항…, 다 같다. 다른 나라는 사람 이름을 많이 딴다. 샤를 드골 공항, JF 케네디 공항, 인도의 인디라 간디 공항, 필리핀의 아키노 공항, 영국 리버풀의 존 레논 공항, 터키의 아타투르크 공항, 미국 휴스턴의 조지 부시 공항, 캘리포니아의 존 웨인 공항, 워싱턴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 공항, 몽골의 징키스칸 공항, 이란 테헤란의 호메이니 공항...때로는 사람 이름을 따지 않은 공항을 찾기 힘들 정도다.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산 가덕도 신공항, 심지어 소관 부처인 국토부는 말할 것도 없고, 관련 부처인 기재부 법무부 환경부 같은 정부 부처마저도 반대했던 그 가덕도 공항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나라를 일으켜 세운 ‘건국 대통령 이승만’, 산업부흥을 일궈낸 ‘부국(富國) 대통령 박정희’, 두 분 중 한 분의 이름을 붙인다면 찬성하겠다는 댓글을 봤다. 주위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 이 공항에는 당초 부산시가 예상했던 7조6000억보다 무려 4배쯤 많은 28조원이 들어갈 수 있다는데, 좋다, 수심이 40~50미터까지 워낙 깊어 매립비용도 많이 들고 안전성을 100%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데, 그래도 좋다,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무시한 채 철저히 선거용으로 짓게 됐다는데, 그래도 좋다, 이승만 정신, 박정희 정신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찬성하겠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인천국제공항 이름 짓기도 사연이 많다. 공사를 막 시작했던 1992년, 건설 본부에서는 새 공항 이름을 현상 공모했다. 결과 1644건 586종의 이름이 응모되었다. 여러분 기억나실지 모르겠다. 그중 ‘세종공항’이란 이름이 101표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서울’, ‘새서울’, ‘아리랑’ 등이 뒤를 이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인천’이란 공항 이름이 순위 5위 안에 없었다.

인천의 지역성을 나타내는 ‘영종’이란 이름이 54표, 그리고 ‘인천’을 곧바로 드러낸 이름이 30표를 얻어 각각 6위와 8위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해 설립되었던 ‘새천년준비위원회’는 신공항이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완공되는 역사적인 공항이기에 ‘인천 밀레니엄 국제공항’ 이라는 이름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3년 5월 정부에서는 청와대, 인천시의회, 문광부, 언론인 등 여러 의견을 모두 모았는데, 그중 3편을 추려냈다. 1) 세종공항, 2) 서울-영종공항, 3) 인천공항 등이었다. 그러다 다시 3년 뒤인 1996년 인천 시민들로 이뤄진 ‘인천국제공항 명칭 제정 추진위원회’가 60만 인천 시민의 서명을 받아 “인천국제공항”으로 최종결정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부산을 찾아가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보고’ 행사에 참석했다. 동남권, 메가시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 대통령은 사실상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부지를 찾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나선 곳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홍남기 기재부 장관, 전해철 행안 장관, 변창흠 국토 장관, 문성혁 해수부 장관, 그리고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까지 참석했다. 야당에서는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의 도를 넘은 선거 개입이다.” “행정 부처가 동원된 관권 선거다.”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등등이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그만큼 선거가 절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오히려 변창흠 국토장관에게 “의지를 가져라” “책임감을 가져라” 하면서 질책성 독려 발언을 하기도 했고, “속도를 내야 한다” “가슴이 뛴다”고 했다. 대통령이 아직 국회 본회의 통과도 되지 않은 사업을 기정사실화한 것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지만 역시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지사, 송철호 시장 같은 이를 대통령이 만나 격려한 것도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문 대통령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비판이었다.

‘선거’라고 하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한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 집권세력들과 청와대, 그리고 여당인 민주당에서야 워낙 선거 밖에 없다는 듯이 모든 운명을 선거에 걸고 있다. 선거에서 지면 모든 게 끝난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처음에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고, 다소 유보적인 목소리도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소리 했다가는 큰일 난다. “부산 선거 망칠 일이 있느냐”며 집중 포화를 맞기에 딱 맞다.

2021년1월 현재 부산광역시 인구는 338만9388명이다. 가덕도 신공항의 소요 비용이 28조원이면, 부산시민 한 분 당 826만 원쯤 돌아가게 되는 꼴이다. 그래서 어떤 인터넷 댓글은 “차라리 미성년자 빼고 부산 유권자 한 분 당 2000만원씩 현금으로 드려라”, 하는 주장도 있었다. 부산시는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전입인구·전출인구를 비교해도 그렇고, 신생아 수를 살펴봐도 그렇다. 전출입은 해마다 마이너스 2만 명 이상 기록하고 있고, 신생아는 11%씩 감소하고 있다. 오죽하면 ‘인구소멸 위기’에 몰려 있다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선거가 있건 없건, 부산 시민들을 위해서라면, 28조원짜리 공사가 아니라 280조원짜리 공사라도 벌여야 한다. 가덕도 공항 규모의 사업을 10개쯤 시작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다만, 국토 전체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부산시 예산 뿐 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낸 세금으로 조성되는 국가 예산이 천문학적 규모로 투입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왕 공항을 짓는다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사랑받는 공항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계획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현시키자.”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우리는 과거 위정자들이 선거 직전에 갖은 계획을 발표하고 법안까지 만들었다가 선거가 끝난 뒤 나 몰라라 하는 경우를 숱하게 경험했다. 문 대통령도 그런 과거를 의식해서 이런 말을 남겼을까 궁금하다. 혹시 공항 이름을 붙이는 문제로, 그러니까 예를 들어 ‘노무현 공항’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논란의 불씨를 만들고, 그러다 시장 선거 끝나고, 대통령 선거까지 끝나고 나면, 신공항 계획 자체가 한없이 지연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부산 시민들께는 있는 것이다. 오늘 조선일보 사설은 이렇게 지적했다. “5년 전 정부가 결정한 김해신공항 안(案)은 아직 폐기되지도 않았다. (어제 시점은) 가덕도 특별법도 통과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부산 지역이 원하는 가덕도 공항을 지어줄 테니 표를 달라고 공개 매수를 한다.” 그렇다. ‘공개 매수’를 한 것일 뿐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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