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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값 인상 들끊는 민심···4년 전 文 발언은 “서민 쥐어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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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 발표를 하던 문재인 당시 후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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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월 출간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담배는 우리 서민들의 시름과 애환을 달래주는 도구이기도 한데, 그것을 박근혜 정권이 빼앗아갔습니다. (중략) 세수를 늘리는 문제가 박근혜 정부로서는 상당히 중요했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재벌과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불쌍한 서민들을 쥐어짠 거에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월 2500원이던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올랐는데, 이를 ‘서민 증세’의 관점에서 비판 것이었다.

4년여가 흐른 지금 민심은 담뱃값 문제로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지난 27일 보건복지부가 4500원인 담배 가격을 10년 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00원 이상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하자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포털 검색어 장악…비판 댓글 줄이어



발표 이후부터 28일 오전까지도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1위는 ‘담뱃값 인상’이 차지하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대부분 정부를 강하게 성토하는 비난 글이 올라오고 있다. 단순 비판을 넘어 “그놈의 OECD 평균. 출산율이나 좀 올려라”거나 “이 정권에선 다 오르네. 집값, 술값, 담뱃값 그리고 내 혈압”과 같은 풍자 댓글도 줄을 잇고 있다.

재빠른 사람은 투자의 기회로 보고 있다. 담배 회사인 KT&G는 28일 오전 11시 현재 전일 대비 1600원(1.97%) 오른 8만29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담배 가격 인상으로 담배 회사가 이득을 볼 것으로 시장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파급력이 큰 담뱃값 문제로 박근혜 정부는 홍역을 치렀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9월 국민 건강을 증진하겠다는 이유로 담뱃값 인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9일 만에 속전속결로 가격 인상이 확정되자 민심이 들끓었다. “사실상 꼼수 증세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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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1일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담배값 인상안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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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증세’라는 말을 금기시했다. 2015년 4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연설했다가 청와대와 마찰을 빚을 정도였다.



‘증세’ 금기시했던 박근혜 지지율에 악영향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줬다. 담뱃값이 논란이 된 뒤 당시 대통령 지지율은 리얼미터 기준으로 3주 연속 하락했다. 당시 여론조사업체는 “담뱃값 인상 등 서민 증세 논란이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당시 야권의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마한 문 대통령은 담배 가격 인상 실행 직후인 2015년 1월 8일 전북 군산의 유명 빵집에서 담배값 인상에 불만을 표시하는 당원을 만나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담배값은 2017년 5월 대선 때도 논쟁이 됐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담뱃값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 문재인 당시 후보 측에서도 전면 인하안을 검토하다가 저소득층과 고령층에 면세 담배를 공급하는 공약을 제시했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고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2017년 7월 담뱃값을 내리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당 소속이던 정태옥 의원은 “(가격 인상 직후) 흡연율이 떨어졌다가 거의 회복돼 오히려 그만 세수만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서민 증세가 됐다”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친문재인계 전재수 의원은 당시 “속이 빤히 보이는 발목잡기”라며 “비상한 각오로 세수 확보 노력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담뱃세를 인하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라고 했다. 두 당 모두 정부를 이끌 때와 야당일 때 입장이 바뀐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 것이다.

담뱃값 인상은 어느 정부나 쉽게 유혹에 빠지는 카드다. 흡연율을 낮춰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명분과 함께 세수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담배 판매 줄었지만 세수 67.1% 증가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월 발표한 ‘2019년도 담배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담배 판매량은 담뱃값 인상 전인 2014년에 비해 20.9% 줄었다. 판매량으로만 보면 분명 효과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제세부담금은 2014년 7조원에서 11조원으로 57.7% 증가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짭짤한 수입이다.

문제는 과연 흡연율을 낮추는 데 효과가 크냐에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2020년도 1~3분기 담배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같은 시기에 비해 판매량은 15.1%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제세부담금은 67.1%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상황이 나빠져 서민층의 흡연량이 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올해 들어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다.



나경원, “눈치도 도리도 없어…가혹”



이런 상황에서 나온 담뱃값 인상 추진안에 대해 야당에서는 당장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서민들은 코로나19로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이 와중에 담뱃값과 술값마저 올린다니 참 눈치도 없고 도리도 없는 정부”라며 “이 어렵고 힘든 시국에 마음 달랠 곳도 없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소식”이라고 적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도 “반(反)서민 정책이 바로 이런 서민 착취 증세 제도”라며 “국민 건강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이지만 마치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고 썼다. 그런 뒤 “이런 것을 바로 가렴주구(苛斂誅求)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당정, 비판 여론 커지자 “추진 계획 없다” 강조



여론이 싸늘해지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급히 불끄기에 나섰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8일 페이스북에 “담배 가격 인상 및 술의 건강증진부담금 부과에 대해 현재 정부는 전혀 고려한 바가 없으며 추진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차원의 장기 계획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무총리실이 검토한 바 없고 추진 계획이 없다고 분명히 입장을 밝혔다”며 “복지부 해명자료를 통해서도 추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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