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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최유식의 온차이나] 화웨이의 반도체 독립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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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회사 20곳 지분 인수하고 연구용 생산라인 구축...낮은 기술수준, 미국 견제 등 첩첩산중 넘어야

미국 상무부가 1월15일 인텔 등 미국 반도체 회사 여러 곳의 화웨이에 대한 수출 면허를 취소했습니다. 임기를 불과 5일 남겨 놓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화웨이의 목줄을 죈 거죠.

◇ “바이든 시대에도 어렵다” 내부 정리 나선 화웨이

중국 내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화웨이 문제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 억류 중인 멍완저우 부회장 석방은 물라도, 화웨이 제재 자체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입니다.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죠. 막대한 보조금과 해킹, 산업스파이를 통해 자국 기업을 키워온 중국식 신중상주의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은 초당적입니다.

화웨이는 이미 기대를 접고 정리 작업을 시작했죠. 작년 11월 중저가폰 브랜드인 아너를 중국 내 30여개 아너 판매상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매각했습니다. 제재 회피용 꼼수 매각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이번 매각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죠.

대신 망설여온 반도체 제조에 직접 뛰어드는 분위기입니다. 화웨이 창업주인 런정페이 회장은 그동안 “우리는 필요한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지만, 반도체 제조는 안 한다. 할 수도 없다”고 공언해왔죠. 하지만 미국의 전방위 제재로 미국 업체는 물론, 한국·대만업체로부터도 반도체 공급을 못받게 되자, 결국 직접 제조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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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청둥 화웨이 소비자부문 사장이 작년 9월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전시회(IFA)에서 자사가 설계해 만든 모바일 반도체 기린990을 소개하고 있다. 위청둥 사장은 그 직전 화웨이가 반도체 제조 분야에 진출할 것임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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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웨이가 주장 맡은 ‘중국 반도체 연합군’

일본 니케이신문의 1월15일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 1년 반 동안 중국 내 20개 반도체 업체의 지분을 확보했어요. 웨이퍼 절삭기계 제조업체, 아날로그 반도체 제조업체, 반도체 패키징 업체, 검사장비 업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확보한 지분 규모는 3~10% 선이에요. 화웨이를 주장으로 하는 ‘중국 반도체 연합군’이 구성된 겁니다.

앞서 작년 8월 화웨이 소비자 부문 위청둥 사장은 반도체 제조 분야 진출 의사를 공식화했죠. 한 중국 내 포럼에서 “화웨이는 반도체 분야에서 전방위로 뿌리를 내리고, 물리학과 재료학 기초 연구와 정밀 제조 분야에서 돌파를 이뤄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계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수준인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있으니, 이제 제조 분야로 가겠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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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라온 화웨이 반도체 제조 진출에 관한 글. 화웨이가 국내 협력업체들과 함께 연내에 45나노미터급 생산라인을 구축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은 담고 있다. /중국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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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중순엔 화웨이가 연내에 45나노미터급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향후 합작을 통해 28나노미터 생산라인을 만들 것이라는 글이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올라왔습니다. 이른바 ‘탑산 프로젝트’에요.

탑산은 국공내전 당시인 1948년 공산당 동북야전군이 병력이 두배 가량 많은 국민당군을 물리친 랴오닝성 진저우 탑산전투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니케이신문은 화웨이가 작년 하반기 선전 본사에 연구 목적으로 소규모 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화웨이가 가장 신경을 쓰는 건 역시 인재입니다. 런정페이 회장과 위청둥 사장은 요즘 상하이자오퉁대, 난징대 등 중국 내 공학 분야 유명 대학을 돌아다니며 반도체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죠. 난징 둥난대는 중국의 첫 반도체 전문 대학을 설립한다고 발표도 했습니다. 산학협동으로 반도체 인재를 양성해 내겠다는 거죠. 이 대학 이름은 ‘난징집적회로대학’이지만, 중국 내에서는 ‘화웨이반도체대학’이라고 부릅니다.

◇ 45나노 생산라인, 인텔 15년전 수준

화웨이가 반도체 독립을 깃발을 들어 올렸지만, 세계 시장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세계 첨단 수준에 10년 이상 뒤처진 것으로 봐요.

화웨이가 만든다는 45나노미터 생산라인은 인텔의 2006년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피 부담이 없는 전력용 반도체 같은 걸 만들 때는 이 생산라인을 쓰죠. 하지만 스마트폰 반도체를 이렇게 만든다면 스마트폰 크기가 예전의 무전기 수준으로 돌아갈 겁니다.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1에 불과한 회로를 인화해 만들죠. 웨이퍼를 가공하고, 회로를 인화해넣고, 칩을 잘라내 포장하고, 성능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높은 정밀도와 노하우가 필요한 2000개 가까운 공정이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제조 장비 가격도 천문학적이죠.

반도체는 대규모 자금과 세계 최첨단 기술, 최고급 인재라는 3박자가 맞아야 하는 만큼 진입 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삼성전자 고위층 출신의 한 전문가는 “반도체 공정은 중국이 따라잡은 디스플레이 분야는 비교 대상이 아닐 정도로 복잡하고 고도의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며 “디스플레이처럼 돈 쏟아부어 생산라인 깔고 한국이나 대만 기술자 스카우트한다고 따라 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해요.

중국이 10년 전부터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세워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하는데도 못 따라오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은 한해 3000억 달러 전후의 반도체를 수입하죠. 2025년까지 자급율을 70%로 올린다는 계획이지만, 2019년 기준 자급율은 16% 정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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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웨이라면 모른다’ 긴장하는 미국

게다가 미국은 자국 반도체 기술 사용은 물론, 글로벌 제조장비업체의 대중 수출까지 막고 있죠. 화웨이의 앞길은 첩첩산중입니다.

그런데도 화웨이라면 어떨지 모른다는 서방 전문가들이 있어요.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 2020년9월25일자는 “풍부한 인재와 막강한 자금력,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다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갖춘 중국이 명운을 걸고 달려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기야 1990년대에 짝퉁 유선전화기 만들고, 홍콩에서 전화교환기 수입해 팔던 화웨이가 오늘날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가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화웨이가 서방 대신 러시아 쪽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워 반도체 기초 기술 확보에 나섰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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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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