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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국만 왜 이래"…은행 이익공유 압박에 외국인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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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권 이익공유제 후폭풍 ◆

매일경제

"주주를 관리하는 부서가 빗발치는 해외투자자 전화로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유독 대한민국만 왜 그러냐는 질문이 많은데, 궁색한 답변밖에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해요." 최근에 만난 금융권 고위 관계자의 분노 섞인 하소연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에서 금융회사 이익공유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면서 금융지주사 투자자관리(IR) 부서로 해외투자자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주식예탁증서(ADR)를 발행한 금융지주들은 이러한 문제가 더욱 큰 상황이다. 해외투자자들은 "이익공유제를 하게 되면 순이익이 얼마나 줄어드는가" "정부의 이익공유제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나" "정부가 배당을 줄이라고 했다는데 얼마나 줄어드나" "이익은 늘었는데 배당을 줄이는 근거는 무엇인가" 등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투자자는 자신이 거래하는 외국계 증권사 국내 지점에 "대한민국은 경제체력이 좋지만 장기 투자하기에는 자본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너무 과도하다"며 투자 비중을 줄여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우리금융을 제외하고 모두 50%가 넘는다. 하나금융이 67.2%로 가장 높고 KB금융 66.5%, 신한금융 58.4% 순이다.

현재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진행되는 금융권 사업으로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 출연, 지역신용보증재단 출연, 새희망홀씨 대출, 이익공유제 관련 상생협력기금 등이 꼽힌다. 매년 초 금융당국이 대출 금액을 은행별로 할당하고 연말에 점검하는 새희망홀씨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기준으로 지난해까지 19조2546억원이 집행됐다.

금융주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전형적인 강세장에서도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연초에 잠시 반등했지만 이익공유제 등 규제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다시 하락했다. 코스피가 연초 대비 10% 이상 올랐지만 KB금융과 우리금융은 오히려 주가가 하락했고, 신한금융은 0.3% 오르는 데 그쳤다. 연초 은행 주식을 대거 매수하던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이익공유제가 공론화된 지난 20일 이후 약화됐다. 20~26일 외국인들은 4대 금융지주 주식을 651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금리 인상 기대감으로 올해 들어 19일까지 외국인이 4대 금융지주 주식을 5620억원어치 매수한 것에 비춰보면 매수세가 꺾인 것이다. 특히 20~26일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매도로 돌아섰다.

[이승훈 기자 / 문일호 기자 / 강봉진 기자]


청년창업 5천억·지역신보 4천억…끝없는 정치개입에 은행 골병


은행권 포퓰리즘 청구서

저신용자 대출에 19조 지원
연체율 높아 은행 손실 커져

작년 순익 6700억 줄었지만
지역신보 출연금 3년새 2배

상생기금 1100억도 내놓을판

매일경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영업제한 손실 보상과 함께 협력 이익공유제, 사회연대기금 등 상생연대 3법을 실현하겠다"며 2월 임시국회 처리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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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자와 주주의 돈인 은행 자금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구태는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이번 정권에서 '이익공유제' '착한 임대인 운동' '배당 축소 요구' 등 금융 상식을 깨는 관치금융이 도를 넘어서면서 은행권은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정치권의 등쌀에 직간접적으로 은행권에서 빠져나간 돈은 20조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직접적인 출연도 있었고 정부의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실시한 대출도 있었다. 그동안 인력·점포 구조조정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매왔던 은행권은 작년부터 초저금리와 코로나 사태로 실적까지 감소하면서 더 이상 정치권의 '포퓰리즘 청구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지만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시행될 4대 관치금융으로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지역신용보증재단 출연, 이익공유제 관련 상생협력기금, 새희망홀씨 사업 등이 꼽힌다.

은행권 청년창업재단은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 5월 '청년창업 활성화'라는 취지로 설립됐다. 정치권이 시중은행들의 돈을 걷어 청년 취업 지원에 나서는 모양새였고, 5대 은행들은 2012~2015년 당초 약정대로 은행 돈을 사실상 기부했다. 그러나 2016~2017년에는 은행들이 출연을 중단할 정도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2018년 재개돼 작년까지 5대 은행들은 총 4985억원을 쏟아부었다. 매년 집행된 출연금은 은행 회계에서 비용 처리됐다.

작년 5대 은행들의 지역신용보증재단 출연금은 2016년 650억원에서 2017년 728억원, 2018년 1048억원, 2019년 1370억원, 2020년 1391억원으로 매해 늘고 있다. 은행 실적은 꺾였는데 이 출연금은 최근 3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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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관계자는 "매년 당국에서 '지역신보 출연금으로 얼마를 내라'라고 통보하는데 그 과정에서 은행 의견을 듣거나 금액을 조정하는 절차는 전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들은 수백억 원의 출연금을 내고 있지만 이 자금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관여하지 않고 용처도 모른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매년 은행권 팔을 비틀어 돈을 걷어가는 구태는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은 또 2009년 캠코로부터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 배분금으로 6760억원을 받았지만 이를 고스란히 신용회복기금에 출연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새희망홀씨의 경우 시중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 기준으로 작년까지 19조2546억원이 집행됐다. 새희망홀씨 사업은 '연 소득 3500만원 이하' 또는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이면서 연 소득이 4500만원 이하'인 사람에게 연 10.5% 이하 금리로 최대 3000만원까지 빌려주는 정책 금융상품이다. 저신용자에게 중금리 대출을 해주는 좋은 취지의 사업이나 금리와 연체율에 따라 매년 은행들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신용도가 낮아 법정 최고금리 수준(연 20%)으로 돈을 빌려야 하는 서민에게 시중은행들이 6~7%로 대출해주는 식이다. 2019년 기준 연체율이 2.23%로 일반적인 신용대출 연체율보다 2배 이상 높다.

은행들은 그동안 순이익이 상승하면서 이 같은 '청구서'에 답할 수 있었지만 작년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5대 은행 순익(당해연도 3분기 누적 기준)은 2018년 8조4843억원에서 정점을 찍은 이후 2019년 8조2785억원, 2020년 7조6049억원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특히 작년에 초저금리와 코로나 사태로 6736억원이 줄었다. 이 와중에 정치권에선 "은행들이 코로나 상황 에서도 돈을 벌었으니 서민 금융 지원을 늘려야 한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포스트 코로나 불평등 해소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이익공유제 관련해 상생협력기금 또는 사회연대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의 법 제정안을 준비하는 것도 이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 출연분으로는 쌓여 있는 여유 기금이나 공적자금 등을 활용하고, 다음으로 은행 등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과거 관치금융과 닮아 있다는 지적이다.

이익공유제의 '넘버원' 타깃으로 꼽히는 은행들은 이 같은 서민금융기금에 추가로 1100억원 이상을 내놔야 할 것으로 자체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을 향해 배임·횡령을 감수하고 출연금을 내라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주주들에게 배당을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외국인 주주들이 이미 불만을 표하면서 국내 금융주들은 매도세에 시달리고 있고 자금 여유가 없는 은행권은 향후 국가적 위기 때 금융 지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일호 기자 / 김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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