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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파일] '미국풍'이 바뀌었다…어느 장단에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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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 첫날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지난 1월 20일 취임한 조 바이든(Joe Biden) 46대 미국 대통령이 하루에만 17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취임 첫날부터 기록적인 규모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전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실시한 정책 뒤집기에 나선 것이다.

코로나19 방역대책으로 공공장소와 주 간 또는 국가 간 이동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것을 비롯해,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 재가입, 멕시코와의 국경에 설치한 이민 장벽 건설을 위한 자금 지원 중단, 이슬람 국가 국민들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 철회 등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3일 동안 서명한 행정명령과 각종 행정조치들은 30개에 달한다고 미국 CNN 방송은 집계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실시한 잘못된 정책을 시정하고,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지위와 체면을 되살리겠다고 공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취임 100일 동안 정책 변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함께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발 바람, '미국풍'의 방향이 바뀌어 5대양 6대주로 세차게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헌법 2조는 '미국의 행정권은 대통령에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 2조에 따라 미국의 대통령들은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지 워싱턴 이래 각종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왔다.

CNN은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29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1945년 취임 후 100일 동안 57개 행정명령에 서명한 해리 트루먼(Harry Trumen) 대통령 이래 가장 많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미국 대통령 프로젝트 데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모두 220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1년에 평균 55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셈이다.

8년 동안 재임한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291개,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은 394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276개, 1년 평균 서명한 행정명령이 35개에 그쳐 120년 만에 가장 적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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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에 휩싸인 로스엔젤레스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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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마다 바뀌는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전 세계에 '나비효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적인 행정명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에의 재가입이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파리기후협약은 작년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기후변화를 억제하거나 환경 보호를 위한 주요한 조치들도 제거하거나 약화시켰다.

올해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Scotland Glasgow)에서 개최될 예정인 기후변화회의 COP26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조치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들은 녹색에너지 바람을 일으키며 관련 기업의 주가 상승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이 같은 기후변화 억제 정책들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은 20년 전 빌 클린턴 대통령이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에 서명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날 공언한 캐나다 앨버타와 미국 텍사스를 잇는 1천800km 길이의 송유관 건설사업 키스톤XL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취소는 미국 내 관계자들 물론 캐나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독일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건설사업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은 미국 중산층에 큰 충격을 주는 자해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뒤집은 또 하나의 정책으로 멕시코시티 정책(Mexicocity Policy) 또는 국제금지규정(Global Gag Rule)으로 불리는 낙태 지원 비정부기구에 대한 자금 지원 금지 정책이 있다.

비영리기구 KFF에 따르면 멕시코시티 정책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 만든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철폐와 부활을 반복했다. 그 결과 지난 34년 동안 19년만 효력을 유지했고, 15년은 폐지 상태였다. 지난 2009년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멕시코시티 정책을 폐지했지만, 8년 후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3일 만에 이 정책을 부활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낙태에 대한 직접 지원은 금지됐지만, 피임이나 낙태 후 회복을 위한 지원은 허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를 더욱 강화해 가족 계획으로 낙태를 하거나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통한 지원을 금지했다.

출산 관련 모성 보호를 지원하는 'MSI Reproductive Choices'는 멕시코시티 정책이 폐지되지 않았다면 800만 명의 여성을 지원하고, 600만 건의 원하지 않은 임신을 막아 180만 건의 위험한 낙태와 2만 명의 사망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멕시코시티 정책으로 우간다와 마다가스카르, 네팔과 같은 곳에 지원금이 끊기면서 원하지 않는 임신과 위험한 낙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도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2015년 합의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며, 그게 더 미국 국민들에게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파기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을 시작했고, 관련 동맹국들의 신뢰는 낮아진 상태여서 난관이 예상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국무장관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나 만나 리얼리티쇼 하듯 빅딜을 시도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절대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의 반대에 관계없이 한미 군사훈련도 재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의 정책도 큰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권마다 입맛에 따라 정책을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서명하는 행정명령을 넘어서 의회에서 법제화하고, 국제적인 문제는 조약으로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문제일 뿐 손바닥 뒤집듯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7천400만 표 이상을 얻은 것은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도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마다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리더를 선출해 통치권을 위임하는 민주주의 제도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어떤 정책도 영원하지 않고 국민들의 뜻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융통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정당의 목적이 그 단체의 이익 극대화에 있지만, 정권을 잡은 리더의 의무는 소속 정당의 이익이나 정권 유지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에 있다는 사실이다. 정권을 손에 쥐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를 통해 정권을 잡고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새롭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베끼고 모방하며 정답을 쫓는 집단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질문하며 해결 방법(solution)을 고민하는 철학을 할 줄 아는 눈높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순자(筍子)의 권학(勸學)에 나온다는 다음 글귀는 울림이 크다. 바람과 비, 물고기, 성심이라는 결과물을 먼저 탐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흙과 물을 쌓아 산과 연못을 만들고 선을 쌓아 덕을 갖추면 성심은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며
선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갖춰진다.
적토성산 풍우흥언(積土成山 風雨興焉), 적토성연 교룡생언(積水成淵 蛟龍生焉)
적선성덕 이신명자득(積善成德 而神明自得), 성심비언(聖心備焉)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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