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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백인 남성만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바이든 정책 근간은 '인종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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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과제-인종 불평등 해소
26일 주거 평등·아시아계 차별금지 행정명령 발동
인종 평등은 코로나19 피해극복·경제회복 첫 걸음
한국일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 백악관에서 미 제조업 관련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6일에는 '인종 평등' 행정명령을 내놓는다. 워싱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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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백인 남성만을 위한 나라는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11번이나 ‘통합(Unity)’을 외쳤다. 현재 미국 내 갈등을 ‘남북전쟁’에 비유하면서 ‘백인 우월주의’에 맞서겠다고 했다. 26일 행정명령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인종 평등’ 정책은 인종 정의 실현을 위한 출발점이다. 주택 보급을 늘려 흑인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안부터 원주민 보호, 교도소 내 인권 강화, 치안위원회 설치까지 주요 현안들이 총망라됐다. 트럼프 시대 ‘중국 바이러스’란 혐오 프레임에 묶여 한 통속으로 피해를 봤던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금지도 담겼다.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는 각료급 인사 26명 가운데 절반을 유색인종으로 채운 데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인종 평등이라는 해묵은 화두가 핵심 국정운영 의제로 올라온 건 두말할 필요 없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탓이다. 미국은 지난 4년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 아래 찢어지고 갈라졌다. 일부 백인 남성만 위대해지는 사이 유색인종과 여성, 소수자는 철저히 배척당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반(反)인종차별 시위대의 절규에는 귀를 닫았지만, 국회의사당을 난장판으로 만든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애국자”라 칭송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인종간 불평등 격차를 한층 심화시켰다. 미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16세 이상 실업률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높아졌는데, 백인이 5.8%에 머문 반면 흑인 9.5%, 히스패닉 8.7%, 아시아계 6.7%로 차이가 컸다. 지난해 코로나19 사망률도 유색인종이 백인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유색인종에게 인종 정의는 생존과 직결된 가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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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종별 실업률. 그래픽=김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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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에게 평등한 인종은 단순한 이념적 선언이 아니다. 취임 직후부터 무수히 쏟아낸 각종 행정명령에도 인종 문제는 빠짐없이 담겼다. 코로나19 감염률이 높은 흑인과 히스패닉에 대한 백신 접종 확대, 인종간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태스크포스(TF) 설립 등이 그렇다. 미 언론은 1조9,000억달러(2,1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들어간 실업 수당 증액 및 저소득층 세금 혜택, 최저임금 두 배(15달러) 인상 정책도 유색인종 노동자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자리와 인종 평등 투자에 따른 혜택은 비용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이미 취임 첫날 임금, 주택, 의료, 교육 등에서 인종 격차를 줄이기 위해 향후 5년간 대규모 예산 편성을 약속했다. 단적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훨씬 진보적 정책이라는 평이 나온다. 니콜 헤머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는 “흑인인 오바마는 오히려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반면, 바이든은 보다 직접적으로 인종 문제를 응시하고 있다”고 짚었다.

물론 반발도 적지 않다. 공화당 등 보수 세력은 바이든 행정부가 “보수=인종주의자”라는 도식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보수 칼럼니스트 앤드류 설리번은 “정체성을 선동하면서 나라를 분열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기계적 평등에 매몰돼 여러 인종 정책들이 자칫 보수층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상원을 반분한 공화당의 비협조로 사문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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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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