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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결국 진보도 똑같다’ 국민 실망”… 성비위로 무너지는 범여권·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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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권 출범 뒤 잇단 성추문

안희정·오거돈·박원순 등 미투 몰락

젠더문제 앞장 金대표 이중행태 충격

‘피해호소인’ 논란 與 “경악” 입장 내

野 “공당 대표, 동료 의원 가해 당혹”

정의당 성평등 조직문화 개선 나서

일각선 “與와 사건 대응 뚜렷한 차이”

전문가들 “진보도 정권 쥐면 성비위

권력에 취해 범죄 인지 못하는 상태”

세계일보

김종철 정의당 대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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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까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진보 진영 정치인들이 잇따른 성 비위 사건을 일으키며 본인들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소속 정당과 진영에까지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여성인권과 성평등 운동에 앞장서겠다고 자신해온 이들이 정작 권력을 잡고 나면 성 비위 사건의 가해자가 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文정권 들어 안희정 시작으로 성 비위 사건 잇따라

김 전 대표는 25일 오전 낸 입장문에서 “제 행위를 성찰하고, 저열했던 저의 성인식을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표로 선출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라디오방송에서 “성폭력 문제라고 하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본인의 안전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당시 박 전 시장의 조문을 보이콧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같은 당 류호정·장혜영 의원과 관련해 “두 분은 상대적으로 당에서 젊은 여성청년 의원이고, 그러다 보니 특히나 그런 성폭력이나 성희롱, 이런 것에 많이 더 노출되는 여성들”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진보 진영에서는 초대형 성 비위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친문(친 문재인)’ 진영 유력 대권주자였던 안 전 지사 사건이 시작이었다. 안 전 지사는 2018년 3월 자신의 수행 비서로 일하던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6월의 확정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다.

오는 4월 열리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도 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성 비위 사건에서 비롯됐다. 부하 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지난해 4월 사퇴한 오 전 시장은 수사과정에서 부산시청의 한 여직원을 성추행한 추가 정황이 밝혀져 관련 수사도 함께 받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지난해 7월 전직 비서를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했다는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된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밖에도 정봉주 전 의원이 2018년 성추행 의혹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있고,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영입 인재 2호이던 원종건씨가 옛 여자친구의 미투 폭로로 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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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긴급 기자회견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을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왼쪽)가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른쪽은 정호진 대변인. 허정호 선임기자


◆‘피해호소인’ 논란 민주당, 정의당엔 “충격 넘어 경악”

박 전 시장 사건 당시 이해찬 대표를 포함한 소속 의원들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하며 ‘축소·은폐’라는 비판을 받아온 민주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충격을 넘어 경악”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정의당은 젠더 이슈와 인권, 성평등 가치에 누구보다도 앞에서 목소리를 내왔다”며 “지금까지 정의당의 모습에 비춰 이번 사건으로 인한 국민의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의 파장은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인권과 성평등 실현에 앞장서 왔던 정의당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의 문제 제기와 이에 대한 정의당의 사건 처리 방식은 이전 민주당의 관련 사건 대응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그간 진영 내 성폭력이나 성차별 문제를 지적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기존 정당의 여성계 출신 정치인들도 자기 편의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곤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브리핑에서 ‘성평등 조직문화 개선’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보선에 후보를 내는 것을 강하게 비판해 온 정의당이 자체 후보를 낼지 여부도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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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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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보도 똑같다’ 생각에 국민 실망 더 커”

범여권 내 잇따른 성 비위 사건과 관련해 국민대 최항섭 교수(사회학)는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양상을 보면 과거 운동권 시절부터 시작해 자신들의 행위는 거의 모든 것들이 정의롭고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정치 자체가 가진 막강한 권력의 속성이 이같이 비뚤어진 행태로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도 결국 (보수와) 전혀 다를 게 없고 똑같다는 생각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더 큰 것”이라고 해석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정치외교학)는 “권력에 취했기 때문에 이게 범죄인지 아닌지조차 구분 못하는 그런 상태에 접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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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25일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사진은 지난 4일 당 대표단회의에 참석한 김종철 대표와 장혜영 의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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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의원“닥쳐올 2차 가해 참으로 두렵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려 피해 사실 알려”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에게 성추행 피해를 본 장혜영 의원은 25일 본인 의사에 따라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장문의 입장문을 냈다. 현직 국회의원이 소속 당 대표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겪은 사실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형식으로 세상에 알린 사상 초유의 일이다. 장 의원은 “피해자다움이 강요돼선 안 된다”며 우리 사회 성폭력 피해자들이 직면해야 하는 ‘2차 가해’의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공개한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A4 3쪽 분량의 입장문에서 “가해자는 모든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모든 정치적 책임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어 “이 글을 통해 제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임을 밝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추행 피해사실을 공개한 이유와 관련해 “당 대표라 할지라도, 오히려 당 대표이기에 더더욱 정의당이 단호한 무관용의 태도로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특히 “피해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닥쳐올 2차 가해가 참으로 두렵지만, 그보다 두려운 것은 저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라며 “만약 피해자인 저와 국회의원인 저를 분리해 영원히 피해 사실을 감추고 살아간다면 저는 거꾸로 이 사건에 영원히 갇혀 버릴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제가 겪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정치라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이번 사건을 겪으며 깊이 깨달은 것들이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떤 여성이라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제가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제가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어떤 피해자다움도 강요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서 미투 운동 참여자를 비롯한 성범죄 피해 여성들은 줄곧 “피해자답지 않다”, “꽃뱀 아니냐” 등 소위 ‘피해자다움’을 요구받았다. 이러한 요구 자체가 ‘2차 가해’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장 의원은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장 의원은 “누구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그가 아무리 이전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오거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고 했다.

성추문 속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박 전 시장을 추모한다며 그의 공로를 기리는 한편 서울시가 대대적인 장례식을 연 점 등을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 실제로 이 같은 민주당의 행보는 정치권 안팎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장혜진·배민영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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