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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의 좌절, 국민기업의 이상은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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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30화 기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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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국민기업’을 자부했다. 재벌 체제의 부조리에 질린 이들은 마음으로 기아를 응원했다. 기술로 승부하는 ‘한우물’ 기업, 소유 분산이 잘되고 전문 경영인이 이끄는 기업, 종업원이 주인인 기업이 하나쯤 잘돼 바른 기업이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재계 8위까지 올랐던 기아는 10조원의 부채를 안고 쓰러져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된다. 여론은 재벌에 포위돼 질식한 국민기업을 도와야 한다는 쪽과 주인 없는 방만한 경영은 시장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1997년 하반기 ‘기아사태’와 함께 뜨겁게 달아오른 국민기업 논란을 살펴봤다. 해설 이봉현

10조원 부채 안고 쓰러져

IMF의 도화선이 된 기업

“돕자” “심판하자” 갈라진 여론


한겨레서도 이봉수 경제부장과

정운영 논설위원 시각 엇갈려

결국 기아는 현대, 삼성은 르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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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가 브리사 후속으로 ‘도시감각의 첨단 승용차’를 내세우며 1987년 내놓은 해치백형 소형승용차 프라이드. 마이카 시대를 열어젖히고 30년 이상 브랜드가 유지된 인기 모델이다. “도시의 멋진 자부심, 타면 탈수록 프라이드를 느낍니다”라고 광고했다. 기아차 제공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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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1993년 2월8일치부터 ‘한 우물로 승부한다’ 연재기사를 내보낸다. 전자의 소니, 컴퓨터의 아이비엠(IBM)같이 각 업종에서 세계에 내세울 만한 대표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뜻에서 연말까지 34개 기업을 발굴한 이 기획의 첫 회는 기아자동차에 할애했다. 기사는 “조직·자금이 모두 자동차에만 집중돼 있고 주인이 따로 없어 전문 경영인 체제가 갖춰져 있다”고 평가한다.

기아는 한국 기업사에서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회사였다. 창업자 김철호 회장(73년 타계)이 한국전쟁 통에 드럼통을 쪼개 첫 국산 삼천리호 자전거를 만든 이래 탈것 하나에 매달렸다. 60년대 오토바이와 3륜 자동차, 70년대 트럭과 소형 승용차(브리사) 등 기술에 대한 집념으로 바퀴 수를 늘려왔다. 1973년 기업공개와 함께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한다. 창업주의 아들 김상문씨는 1981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남으로써 전문 경영인 체제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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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송강호)이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를 태우고 5월 광주의 현장으로 내려간 택시는 기아의 브리사였다. 영화사 더 램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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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의 첫 승용차 브리사는 정부의 자동차 국산화 정책에 맞춰 개발됐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가 2001년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 공동대표인 임기상씨의 21년 된 브리사를 찍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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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산업이 1962년 일본 마쓰다자동차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 생산한 삼륜차. 차체가 작아 쌀이나 연탄을 싣고 시장통과 골목길을 누비기에 좋았으나 가끔 옆으로 쓰러지는 등 안정성은 떨어졌다. 당시 제공 사진으로 추정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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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로 입사해 사장을 거쳐 1990년 회장에 오른 김선홍씨는 기아의 산 역사였다. 80년대 초 직원을 단합시켜 이른바 ‘봉고 신화’를 일궈, 500억원대 누적적자에 휘청이던 기아를 3년 누계 500여억원의 흑자 회사로 돌려세워 ‘한국의 아이어코카’란 별명을 얻는다. 회장보다 ‘대표사원’이라 불리길 좋아한 그의 기아 주식 보유량은 0.06%에 지나지 않았다. 간부 자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공학을 전공한 아들의 입사를 뿌리친 일화도 있다. <한겨레21> 170호(1997년 8월14일치)는 “김영삼 대통령은 ‘가장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주저 없이 김 회장을 거론하기도 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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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의 소형차 아벨라 광고. 1995년 2월3일치 주간지 <한겨레21>에 실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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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화합을 강조하는 기아자동차서비스의 광고. 기아자동차는 직원들이 우리사주 형태로 주식의 11% 가까이를 보유한 회사였다. 1996년 8월1일 <한겨레21>에 실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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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서울모터쇼 기아홍보관 앞에서 여성 모델들이 춤을 추고 있다. 당시엔 이런 홍보를 했다. 당시 지면에 소개되지 않았던 비컷이다. 이종찬 기자가 찍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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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아가 1997년 7월 주저앉자 비판의 목소리가 금융계와 경제부처에서 고개를 들었다. “노조가 주인행세하고, 전문 경영인이 재벌놀이하다 위기에 봉착했다”는 탄핵이었다. 이상하게도 여론은 기아에 우호적이었다. 격려 전화와 팩스가 밀려들었다. 시민단체들은 ‘기아 살리기 범국민운동연합’을 결성해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기업의 부도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당시 여권의 대선주자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소하리 공장을 격려 방문하는 등 정치권도 여론에 편승해 기아를 두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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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그룹이 부도 위기에 몰리자 1997년 7월21일 시민단체들이 모여 ‘기아살리기 범국민운동연합’을 결성한다.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1997년 여름에 열린 기아살리기 시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모습. 이종찬 기자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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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신한국당의 대선후보인 이회창 대표가 1997년 8월14일 기아 소하리 공장을 전격 방문해 기아의 자력회생에 힘을 실어주는 말을 한다. 당시 지면 이미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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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1997년 7월21일자 기사로 기아차살리기 운동에 대해 보도했다. 임석규 현 <한겨레> 편집국장이 당시 취재를 함께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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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는 ‘기아가 재벌 체제에 희생됐다’는 동정에서 비롯됐다. 실제 ‘국민기업’은 진공 속에 있지 않았다. <한겨레> 1997년 6월25일치는 “역설적이게도 기아의 특수한 소유·경영 형태가 한국적 상황에서 약점으로 작용해 경영악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소개한다. 즉 “경쟁사들(현대차, 대우차 등)은 문어발식으로 벌여놓은 계열사를 통해 금융조달을 수월하게 하고 인력, 판매 등에서 계열사끼리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고받지만 (…) 자동차 관련 업종으로 수직 계열화된 기아는 이런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의 집요한 자동차 진출 욕망은 기아에 목의 가시였다. 삼성이 기아의 신경을 긁는 일이 잇따라 벌어진다. 1993년 삼성 계열 금융회사가 기아차 주식을 매집한 것,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정부에 주문한 삼성발 보고서가 폭로된 것이 예이다. 기아인들은 삼성의 기아인수 ‘음모론’을 굳게 믿었다. 기아가 연산 100만대 규모의 투자를 밀어붙여 자금 사정이 악화한 것도, 후발주자 삼성에 곁을 내주지 않겠다는 조바심이 작용한 것이었다.

기아 처리방안은 국민기업론을 만나 표류했다. 채권단은 부실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의 사표 제출을 요구했으나 김 회장은 버텼다. 자력 회생에 배수진을 친 노조도 김 회장 없는 회생은 불가능하다고 어깨동무를 했다. 김 회장 퇴진 요구는 “기아를 삼성에 넘기려는 채권단의 시나리오”라며 버티기의 명분으로 삼았다. 현대와 대우는 삼성 견제를 위해 기아 편을 들어, 재벌들 간의 합종연횡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 운명의 겨울을 향해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기아 사태 장기화로 경제위기가 깊어짐에 따라 여론의 갈등은 첨예화했다. 당시 <한겨레>의 보도 역시 이런 여론의 단층을 보여준다. 특징적인 것은 당시 이봉수 경제부장(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과 정운영 경제담당 논설위원의 시각이 달랐다는 점이다. 정 위원은 같은 해 8월5일치 ‘기아 현상’이란 칼럼에서 “기아는 (경영진이 범한 실수의 결과) 10조원의 빚을 지고 부도에 직면한 기업이며, 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기아 사태를 대하는 기본 관점이 되어야 한다 (…) 이 실패의 부담을 ‘운동’을 빌려 정부에 지우려는 행위는 감상이지 논리의 산물이 아니다”라고 쓴다. 반면 이 부장은 1997년 10월29일치 ‘도요타와 기아 사이’라는 칼럼에서 “문제점도 많았지만 기아는 국민기업의 싹을 키워가던 중이었다. 기아가 무너져 그 기업이 추구하던 가치마저 뿌리내릴 곳을 잃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밝힌다

시장의 냉혹함은 해일처럼 이 모든 논란을 쓸어갔다. 1997년 말 한국 경제는 아이엠에프 체제에 들어선다. 버티던 기아는 10월22일 법정관리에 넘겨지고 김 회장도 결국 물러난다. 기아는 부채의 상당량을 덜어내고 국제입찰에 부쳐져 이듬해 10월 현대그룹에 인수된다. 기아를 자극하던 삼성도 부산 공장을 르노에 넘기고 손을 뗐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차도 지엠에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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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를 정상화할 때까지는 물러날 수 없다”던 김선홍 회장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1997년 10월29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도로를 나서면 많은 기아의 벗들이 보여 반갑다. 저기 엔터프라이즈(당시 기아의 최고급 세단)도 가고…” 하면서 불운하게 자동차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회한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창하 기자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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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당시 현대자동차 회장이 1998년 10월19일 오후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사 대회의실에서 기아차 낙찰 이후의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아를 인수했으니 솔직히 말하지만 기아가 현대보다 앞선 부문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장철규 기자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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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인수된 뒤 1999년 5월께 기아자동차 전시장에서 고객이 차를 살펴보고 있다. 지면에 소개되지 않았던 비컷이다. 이정용 기자가 찍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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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국민기업이었나, 국민기업의 이미지를 세일하는 기업이었나? 기아의 좌절과 함께 국민기업 이상은 사라진 것일까? 위기 2년 전 기아를 진단한 <한겨레> 기자 칼럼은 무언가를 암시한 듯하다.

“시장의 승부는 냉혹하고 시장에서 패배하면 국민기업도 의미가 없다. 외려 국민기업이 족벌기업보다 더 어렵다는 나쁜 선례만 남길 뿐이다/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전문화 기업이 확실히 경쟁우위를 가진다는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소유가 분산되고 업종이 전문화되면 경쟁력이 있다고 경제정책 교과서에 나와 있는지 모르지만, 이는 뼈를 깎는 노력 없이 결코 이뤄질 수 없다.”(1995년 7월11일 이홍동 기자 ‘기아는 지금 몇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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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해설자인 이봉현 기자는 1990년 <한겨레>에 입사해 경제분야를 주로 취재해 왔습니다. 1997년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당시 자동차 산업과 금융 취재를 담당해 위기의 발단, 전개, 수습 과정을 가까이서 들여다봤습니다. 이후 <로이터> 통신 선임기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는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우연히도 30대부터 지금까지 기아차를 계속 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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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사진, 기사, 지면 이미지 등의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관련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 사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시즌3인 25~36화는 주로 기업·기업인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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