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X팔려 당원 못하겠다"···김종철 성추행이 부른 '정의당 쇼크'

댓글 2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성평등과 젠더 문제에 가장 진보적 목소리를 내온 정의당이 김종철 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창당 9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했다.

정의당은 25일 오전 10시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는 “매우 부끄럽고 참담한 소식을 알려드리게 됐다.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다. 피해자는 당 소속 장혜영 의원이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자 실명을 공개한 것은 장 의원의 결정이고 그것을 존중했다”고 부연했다.

중앙일보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은 성추행 사건 닷새 뒤였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회견 이후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문이 잇따라 공개됐다.

먼저 장 의원은 “젠더폭력근절을 외쳐왔던 정치적 동지이자 신뢰하던 당 대표로부터 저의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한 충격과 고통은 실로 컸다”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적인 책임을 묻기로 마음먹은 것은 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면서 “피해 사실을 감추고 살아간다면 이 사건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의원은 또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고, 어떤 여성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가해자다움도 없다. 그가 아무리 이전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왔거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도 예외는 없다”고 썼다.

중앙일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25일 입장문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명백한 성추행의 가해를 저질렀다. 피해자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정의당 대표단 및 당기위원회에 저에 대한 엄중한 징계를 요청드린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날 이후 열흘 간 무슨 일이…



두 사람의 입장문과 배복주 본부장의 회견을 종합하면 김 대표가 장 의원을 성추행한 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저녁 식사 자리 직후였다. 식사 자리엔 둘 뿐이었다. 김 대표는 “이 자리는 제가 청해 만든 자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차량을 대기하던 중 피해자가 원치 않고 전혀 동의도 없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행했다”고 말했다.

발생 후의 전개는 은폐나 회유가 일반적인 다른 성추행 사건과는 달랐다. 배 본부장은 “사건 당일 장 의원이 김 대표에게 항의를 했고 김 대표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장 의원 측에 ▶당대표직 사퇴하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받겠으며 ▶정의당 당기위원회에 스스로 제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장 의원 측이 ‘셀프 제소’ 방식을 거절해 안건은 대표단 회의로 넘겨졌다. 장 의원이 배 본부장에게 사건을 알린 건 발생 사흘 뒤였다. 배 본부장은 양측을 조사한 뒤 이날 대표단 회의에 경위를 보고했다.

중앙일보

정의당 젠더인권본부를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왼쪽)가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오른쪽은 정호진 수석대변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연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김 대표는 성평등을 강조했다. 남성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하는 트렌드인 '알페스'를 거론하면서다. 김 대표는 “사회의 성적 권력 구성은 압도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게 조성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알페스’가 성폭력으로 여성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쓰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당대표 3개월 만에 하차…공황 상태 정의당



이날 소식을 처음 접한 대표단 회의의 분위기를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많이들 놀랐고 참담해 했다”고 전했다. 정의당은 곧바로 김 대표에 대한 직위해제 및 당기위 제소를 결정했고 김윤기 부대표가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다. 그러나 선출 3개월 만의 당 대표 하차로 정의당은 패닉 사태에 빠졌다. 정의당 홈페이지에는 “더 이상 창피해서 당원을 못하겠다. 배신감을 느낀다” “다른 정당도 아닌 정의당에서 가해자가 당대표라는 사실이 참담하다”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정의당 SNS에는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정의당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해자인 1970년대생 김 대표와 피해자인 1980년대생 장 의원은 1990년대생 류호정 의원과 함께 '포스트 심상정 체제'의 중심을 이루는 트로이카였다. 고(故) 노회찬 전 대표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김 대표는 당내 PD그룹을 규합하고 분화된 NL그룹 일부(김종민 전 부대표)의 지지를 이끌어 내 지난 10월 당직 선거에서 NL그룹 후보인 배진교 의원을 제쳤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 2019년 10월 영입인사로 정의당에 합류해 계파색이 없는 장 의원은 류 의원과 함께 김종철 체제의 핵심을 이뤘다. 정의당 관계자는 “원외지만 정치 경력이 긴 김 대표는 두 여성 의원의 정치적 멘토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성평등과 젠더 문제는 이들이 ‘민주당 2중대’ 논란을 벗어나 새로운 진로를 찾기 위해 내세운 핵심 정체성이었다. 지난해 7월 성추행 논란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문을 장 의원이 거부했을 때도 김 대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정의당이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존립의 기로”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에 불붙은 ‘민주당 2중대’ 논란과 박 전 시장 조문 거부 파동을 거치면서 9000여 명의 당원이 탈당한 정의당은 최근까지 극심한 재정난에 허덕여 왔다.

정의당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인사는 “지난 총선 참패에도 정의당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정치의 중심 이슈로 부상시키는 등 존재감을 보여 온 것은 3인방의 선명성과 참신함 때문이었다”며 “더 이상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지도체제 수습도, 재보선도 갈피 못잡아



이날 정 수석대변인은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향후 일정을 밝히지 못했다. 그는 “김 대표의 임기가 상당히 많이 남아서 당규에 따라 당 대표 보궐선거를 할 수밖에 없다”고만 말했다. 정의당 안팎에선 지난 당직 선거에서 패한 최대 계파인 NL그룹(인천연합)이 다시 당권을 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4·7 재·보궐선거 대응은 출발부터 수렁에 빠졌다. 정의당은 서울시장 선거 후보로 권수정 서울시의원, 부산시장 선거 후보로 김영진 부산시당위원장이 출마했다. 전 당원 찬반투표가 남았지만 단수 후보라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상태다. 권 시의원은 지난 11일 출마선언문에 “서울시 최초 성평등시장이 되겠다”고 밝혔지만 익명을 원한 한 여권 인사는 “완주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배 본부장은 “장 의원이 형사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고소 등 법적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친고죄가 폐지돼 강제 추행은 제3자의 고발만으로도 입건이 가능한 범죄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