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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서초서장, 내사종결 처리… 경찰청 고위간부는 “영상없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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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거짓 들통나자 뒤늦게 조사나서… 불거진 의혹들

조선일보

지난 2019년 3월 이용구 당시 법무부 법무실장(현 법무부 차관)이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검찰과거사위원회 정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의 이용구 법무차관의 폭행 사건 ‘봐주기 수사’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운전 중인 택시기사를 폭행했지만 입건도 하지 않고 사건을 내사 종결하고, 서울 서초경찰서 담당 수사관은 택시기사가 폭행당한 영상을 보고도 “못 본 걸로 하겠다”며 덮었다. 이 사건 수사 책임자인 서초경찰서장은 지난 20일 경찰 인사에서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영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언론 취재를 통해 수사관의 폭행 영상 묵살 사실이 드러나자, 경찰은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위법 행위 발견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출범한 경찰 수사의 컨트롤타워인 ‘국가수사본부’를 책임지는 수사본부장의 1호 지시다.

①담당 수사관, 폭행 영상 묵살

택시기사 A씨는 지난해 11월6일 이용구 차관(당시 변호사)으로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아파트에 도착해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 112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내 파출소 경찰관들은 이 사건을 ‘운행 중 기사 폭행’으로 보고 특정범죄 가중처벌법(특가법) 사건으로 서초경찰서에 보고했다.

서초경찰서에서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9일과 11일 두 차례 A씨를 조사하고는 이 사건을 ‘특가법상 폭행’이 아닌 ‘단순 폭행’으로 처리하고 이 차관을 입건조차 않고 내사종결 처리했다. 11일 조사 때 담당 수사관은 택시 기사 A씨가 제시한 폭행 동영상까지 확인했다. 그럼에도 “못 본 걸로 할게요”라며 묵살했다. 그러면서 A씨가 “처벌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한 것이다. 그러나 특가법 조항에서 ‘운행 중 기사 폭행’은 승객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에도 해당한다고 규정돼 있다. 수사관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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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형사과장·경찰서장·경찰 수뇌부는 몰랐나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용구 차관은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자신의 변호사 명함을 주었다고 한다. 이 차관은 2017년 8월부터 작년 4월까지 법무실장으로 일했다. 법무실장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당시엔 법무부 법무실장에서 물러나 월성원전 조기 폐쇄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변호인으로 일할 때였다. 경찰이 이 차관의 명함을 받고 검색만 해보면 금방 현 정권 실세 ‘법무실장’ 출신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이를 몰랐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찰의 한 총경급 인사는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고 변호사 신분을 파악했다면 윗선에 보고하는 게 상식적”이라며 “주요 인물이 사건에 연루됐는데 윗선에서 파악을 못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 사건이 윗선까지 보고됐다는 데 선을 그었다. 지난해 12월 28일 열린 경찰청 기자단 간담회에서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과 경찰청, 청와대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서초경찰서 형사과장은 지난해 11월 10일 서초경찰서장에게 “사건을 내사 종결하겠다”고 구두 보고했고, 서초경찰서장은 “의견대로 처리하라”고 했다고 한다.

③경찰의 과도한 이 차관 편의 봐주기

본지의 첫 보도로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알려진 이후 경찰은 줄곧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고, 기사가 폭행 사실을 부인해 내사종결 처리했다”고 주장해왔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도 지난달 28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 차관 사건은) 직접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진술뿐”이라며 “블랙박스 녹화가 안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경찰은 이 사건 조사 과정에서 과도하게 이 차관의 편의를 봐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담당 수사관은 택시 기사의 ‘처벌불원서’를 대신 써줬다. 서초경찰서는 또 이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한 뒤 이 차관에게 그 결과를 통보했다. 경찰 내사 처리 규칙에는 피내사자에게 처리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경찰의 이런 ‘봐주기 수사’ ‘부실 수사’ 논란 끝에 검찰이 재수사에 나서 택시기사 A씨의 휴대폰 포렌식과 진술을 통해 사건 당시 폭행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허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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