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삼성, 美반도체 30조 투자설…“‘파운드리 세계 최고’ 신호탄”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Deep & Wide] 전문가들이 보는 ‘미국 반도체공장 증설’

중앙일보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운영 중인 삼성 오스틴 반도체공장. 고용 인력은 3000여 명이며, 지난해 상반기에 2조14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사진 삼성전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반도체공장 신·증설을 검토한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삼성전자가 170억 달러(약 18조8000억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나 애리조나주, 뉴욕주에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같은 날 “삼성전자가 100억 달러(약 11조원) 이상을 투입해 텍사스주 오스틴공장에 파운드리(위탁생산) 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라고 기사화했다.

삼성전자는 24일 이에 대해 “투자 규모나 시기가 결정된 바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선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경쟁사에게 영원히 밀릴 수 있다.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5세대(5G)통신·인공지능(AI)·자율주행·클라우드 등이 확대 보급되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은 ‘슈퍼사이클(장기 초호황)’을 예고한 상태다. 더욱이 ‘반도체 지존’으로 불리던 인텔이 파운드리 파트너로 삼성전자와 손잡을 가능성도 커졌다. 삼성의 ‘미국 투자설’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정치·경제 요소 고려한 ‘입지’ 결정



중앙일보

삼성전자의 해외 반도체 공장. 그래픽 박경민 기자


텍사스주의 주도(州都)인 오스틴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집안의 정치적 근거지다. 삼성은 고(故) 이건희 회장 때부터 부시 부자(父子)와 가까웠다. 1998년 삼성전자가 오스틴공장을 준공했을 때, 부시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를 지냈다. 아들 부시는 법인세 감면과 도로·용수·전기 등 인프라를 지원했다. 이런 인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오스틴은 최근 정보기술(IT)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에 빗대 ‘실리콘힐스’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 애플·제너럴모터스 연구소가 몰려왔고, 오라클이 본사를 옮긴다고 발표했다. 텍사스주에는 개인소득세·법인세가 없어 세금 부담이 적고, 텍사스주립대·라이스대 등에서 고급 인재를 배출한다.

중국 산시(陝西)성에 있는 삼성전자 시안(西安)공장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시안을 낙점한 것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생산거점이 일대에 위치해서다. 하지만 2013년 중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고향이 산시성이라는 사실도 배경으로 꼽힌다.

중앙일보

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그래픽 박경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도체 투자가 그만큼 정치적이라는 의미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미국 입장에서는 파운드리 양대 산맥 격인 삼성전자엔 ‘북한 리스크’가, 대만 TSMC에는 미국과 무역갈등 중인 ‘중국 리스크’가 있다”며 “인텔·엔비디아·퀄컴의 AI칩, 가속처리장치(APU) 등이 안정적으로 생산되려면 자국 내 생산기지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공급망 타격을 경험하면서 이런 목소리가 커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임인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했던 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귀환(리쇼어링)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대선 공약은 ‘미국 내 생산(Made in All of America)’이었다. 자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돼 있다.

무엇보다 고급 일자리가 생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공장 한 기를 통해 5000~7000개의 고용 창출을 예상한다. 유틸리티·장비·안전 등 간접부문을 포함해 2~3배, 최대 2만여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추정한다.



투자액 170억 달러?…“30조원 될 듯”



중앙일보

삼성전자가 중국 산시에 건설한 시안 메모리 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오스틴공장 신규라인에서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반도체칩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오스틴이든, 애리조나주나 뉴욕주든 삼성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짓는다면 최신 공정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팻 겔싱어 인텔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 때 “인텔은 자체 공장에서 제조의 대부분을 유지하면서, 현재보다 더 많은 외부 시설을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외부 시설’로 삼성전자와 TSMC가 꼽힌다. 전 세계에서 두 회사만 10㎚ 이하의 칩 생산이 가능하다.

TSMC는 이미 애리조나주에 짓는 5㎚ 공정의 파운드리(120억 달러)를 포함해 2030년까지 최대 280억 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3㎚ 공정’에 주목한다. 나노 공정이 고도화하면, 즉 회로선폭이 가늘어지면 집적도가 높아지고 저전력·저발열이 가능해진다.

중앙일보

팻 겔싱어 인텔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외부 시설과와 생산 협력방안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는 TSMC를 뛰어넘는 공정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라며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해석했다.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7%로 TSMC(54%)에 미치지 못한다.

대신 투자 규모는 늘어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신 공정인 3㎚나 5㎚ 풀사이즈라면 30조원은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지와 건물 확보, 용수·전기·가스 설비, 클린룸 공사 등에만 10조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대당 수천억원에 이르는 장비 수십 대를 들여놓아야 한다. 한태희 성균관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사실 5㎚ 이하 반도체 공정에서 11조원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실제론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도 “새로운 부품·장비가 적용되면 최소 30조원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엑소더스’ 우려엔 “그렇지 않다”



파운드리 산업에서 삼성전자의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카피캣(모방자)’이라는 별명이 부담이다. 거의 모든 반도체와 디바이스를 설계·생산하는 세계 유일한 회사이기도 하다. 인텔로선 ‘고양이에게 생선창고를 맡기는 느낌’일 수 있다는 뜻이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의 모토와 대비된다.

그렇다고 TSMC에 몰아주자니 가격 협상이나 공급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정훈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인텔은 서로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도모할 필요가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내 반도체공장 증설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인텔과 협상이 결렬될 경우 ‘과잉 투자’라는 리스크가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평택2공장에 10조원대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동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것이냐가 숙제로 남는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공장 내부 '5G 이노베이션 존.' [사진 삼성전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과 가전·IT 등 주력 제품의 생산기지를 베트남·중국 등으로 옮겼다. 반도체 생산만 한국 비중이 80% 이상이다. 그래서 이른바 ‘코리아 엑소더스’가 시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재근 교수는 “그렇지는 않다”며 “반도체 기업은 고객에게 예민하다. 지금은 시장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도 “삼성전자와 TSMC가 글로벌 수요를 맡는다는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향후 증설을 통해 이제껏 오스틴공장의 약점으로 꼽혀온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중장기적으로 코리아 엑소더스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재·문희철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