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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팀쿡 만나 소송 철회, 사우디 왕세자에 협력 제안했던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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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통신사 경영진 만나 10조원대 계약 직접 영업
"시진핑, 저커버그 등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업인"
법정구속으로 삼성의 신사업 투자·M&A 차질 불가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이 이달 말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를 방문해 5세대(5G) 이동통신 협력을 논의하고 국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한 협상도 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

이 부회장은 2014년 하반기 사실상 삼성의 총수로 올라선 뒤 해외 국가주석과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해왔다.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발굴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삼성의 해외 사업을 확대해왔다. 이 부회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팀쿡 애플 CEO 등 해외 국가주석이나 글로벌 기업 CEO를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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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4일 오전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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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왔다. 그는 이 회장이 입원한 직후인 2014년 하반기에도 많은 해외 출장을 소화했는데, 그해 7월에는 미 아이다호주에서 열린 앨런앤코 미디어콘퍼런스에서 팀 쿡 CEO를 만났다. 두 사람의 회동 이후 애플과 삼성전자는 미국 외 지역에서 진행 중이던 스마트폰 특허소송을 철회하기로 했다.

그해 이 부회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응웬 푸 쫑 베트남 당서기장 등 국가 최고지도자들과도 잇따라 회동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는 2014년에만 세 차례 조우했다. 7월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한 때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전시관을 직접 안내했고, 이후 8월 중국 난징 유스올림픽 개막식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어 10월에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기업가들과 함께 시 주석을 접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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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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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의 광폭 행보는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 5월부터 해외 현장 경영을 강화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자주 오가면서 삼성에 스타트업 문화를 도입하자고 주문했고,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를 안착시키기 위해 비자, 마스터카드 등 미 카드사 CEO와 잇따라 회동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M&A도 추진했다. 삼성페이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 루프페이,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회사 스마트싱스, 미국 상업용 디스플레이(디지털사이니지) 전문기업 예스코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6년 11월에는 이 부회장 주도로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약 9조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현장 경영은 이 부회장이 구속된 2017년 2월부터 약 1년간 중단됐다. 이 부회장은 2018년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현장 경영부터 재개했다. 그해 확인된 공식 출장만 9건으로, 이 부회장은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해외 사업장을 점검하거나 고객사를 만났다. 지난해 6월 삼성리서치 소장으로 임명된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도 2018년 3월 이 부회장이 캐나다 출장을 가서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2019년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두 차례 만났다. 그해 6월 이 부회장을 비롯한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은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동했다. 3개월 뒤 이 부회장이 사우디를 찾아 빈 살만 왕세자와 인공지능, 5G 등 사우디와 삼성그룹 간 여러 투자 및 사업협력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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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피터 버닝크 ASML CEO가 ASML의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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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부터 현장 경영이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세계 1위 통신사업자 미국 버라이즌과 5G 장비 공급 계약을 맺은 게 대표적이다. 계약 금액은 7조9000억원으로 국내 통신 장비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 부회장은 계약을 앞두고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와 수 차례 화상통화를 하며 적극적인 영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베스트베리 CEO가 스웨덴 장비업체 에릭슨에 CEO로 있을 때 인연을 맺었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9년 10월 일본 2위 통신사 KDDI와 약 2조4000억원 규모 5G 네트워크 장비 계약을 따냈다. 이 역시 이 부회장이 그해 5월 일본에서 KDDI 경영진을 만나 직접 세일즈를 펼친 결과다.

지난해 이 부회장은 코로나 확산 기조에도 5월 중국 시안의 반도체 사업장을 점검하고 10월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 찾아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 부회장의 해외 현장 행보도 이 전략과 맞닿아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슈퍼사이클(대호황)’을 타고 12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었지만,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부재로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마크 리우 회장이 직접 뛰며 차세대 3㎚급 공정 고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TSMC는 올해 반도체 시설투자에만 최대 30조원(280억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전문경영인은 결정하기 어려운, 총수 차원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신사업 투자, M&A 등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M&A의 경우 총수가 내부 전문가는 물론 외부 전문가도 다양하게 만나 다각도로 의견을 검토한 뒤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구속된 상태에서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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