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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롤러블폰도 막지 못한 5조 적자···“LG폰 사실상 철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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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LG전자가 11일(현지시간) 개막한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소비자가전전시회) 2021'에서 공개한 롤러블(둘둘 말아 접는 형태) 스마트폰의 펼쳐진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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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스마트폰 사업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20일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고용 유지를 전제로 한 “사실상 매각 내지 철수” 선언으로 풀이한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은 이날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 임직원 3700여 명에게 e메일을 보내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의 매각·정리 가능성을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매출 62조3100억원, 영업이익 2조43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MC사업본부의 매출은 5조4000억원, 영업손실 8000억원 수준이었다.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부터 지난해 4분까지 23분기 내리 적자 상태였다. 지금까지 누적 적자만 5조원대에 이르는 ‘아픈 손가락’인 셈이다.

LG전자 측은 “MC사업에 대해 백지상태에서 A부터 Z까지 재검토에 들어간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내에서는 “이달 26일께 공식적으로 매각을 발표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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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스마트폰매출과영업이익.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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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년간 사업부 수장 4명 교체



LG그룹이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5년 LG정보통신이 ‘화통’을 내놓으면서다. LG전자 MC사업본부는 2000년 LG정보통신이 LG전자에 흡수되면서 탄생했다. 한때 ‘초콜릿폰’과 ‘샤인폰’ ‘프라다폰’ 등이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6년 선보인 전략 스마트폰 ‘G5’가 실패하면서 조 단위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LG 스마트폰은 지난해 3분기 판매량 800만 대, 점유율 2.2%에 그쳤다. 세계 순위가 9위로 중국 비보(5위)·오포(6위)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벨벳’ ‘윙’ 등을 내놓았지만 반등에 실패했다. G시리즈를 폐기했으나 시장에서는 “잦은 브랜드 변경이 악재가 됐다”는 평도 있다. 자구책으로 경기도 평택의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최근 6년간 사업부 수장을 4차례 교체하는 등 처방을 내놨지만 효과가 없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 2021’에서 화면을 돌돌 말아 올리는 형태의 ‘롤러블폰’ 영상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으나, 이는 기술력을 자랑하는 것이지 판매량은 연 30만~50만 대일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모바일업계에서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매각·철수설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에는 ‘구글이 LG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가 곤욕을 치렀다. 이때마다 LG전자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해왔다.

이번 매각 검토설은 연초에 LG전자가 MC사업부 역할을 줄이는 쪽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 불거졌다. LG전자는 연구인력을 대폭 줄이고 제조자개발생산(ODM) 사업담당을 신설하는 등 원가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블라인드’에는 “(TV 사업을 담당하는) 홈엔터테인먼트(HE)본부 산하로 재배치할 것”이라는 설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권봉석 사장(CEO)의 메시지를 통해 사업 전면 재검토를 공식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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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최초로 후면 커버에 천연가죽 소재를 적용한 G4, 트랜스포머폰 G5, 듀얼스크린폰 V50S 씽큐, LG 윙, 롤러블폰 예상 이미지. [사진 LG전자·가젯매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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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고용유지…불안해 할 필요없어” 메일



스마트폰 사업의 운영 방향을 재검토하겠다는 결정에는 구광모 ㈜LG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구 대표는 2018년 취임 후부터 신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지난해 LG전자가 세계 3위 자동차부품업체 마그나와 합작법인 ‘LG마그나’ 설립이 대표적이다. 대신 액정표시장치(LCD) 같은 적자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재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미래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하겠다는 (구 대표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스마트폰 사업을 어떻게든 효율화하겠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다만 고용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원칙은 분명히 했다. 한때 5000명이 넘었던 MC본부 임직원은 현재 3700명 수준이다. 권 사장은 이날 “사업운영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고용은 유지되니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故) 구본무 회장은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약속을 지켰다”며 “이번 CEO 메시지는 고용 유지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전면 포기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5세대(5G) 통신과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가전·모빌리티가 연결될 때 스마트폰이 핵심 역할을 한다. 일부에선 MC사업부 매각이나 철수보다는 ODM을 확대해 실적 개선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는 플랫폼·자동차 등 비(非)스마트폰 사업자에게 사업부를 매각한 뒤 전략적 제휴를 통해 스마트폰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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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봉석 LG전자 사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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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선 환영…주가 역대 최고가 마감



권성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사업부를 매각하더라도 연구인력을 유지하면서 스마트홈·IoT·미래차 등 스마트폰과 관련 기술 개발을 이어가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스마트폰은 ‘가전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해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매수자와 파트너로 제휴하는 등 LG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사업과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 적자 사업부에 ‘메스’를 대겠다는 소식에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날 LG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12.84%(1만9000원) 오른 16만7000원에 마감했다. 역대 최고가로, 시가총액이 27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박형수·김경진·권유진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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