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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전도유망한 공군 대위 출신은 어쩌다 표절사기꾼으로 전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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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한국지식재산센터에서 열린 '제2차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 시상식에서 손창현(오른쪽)씨가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왼쪽은 김용래 특허청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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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소설, 노래가사, 사진 등을 표절해 5개의 문학상과 각종 공모전을 휩쓴 남성 손모씨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가 표절해서 입상까지 한 출품작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과시한 화려한 이력 역시 대부분 허위로 드러나고 있다. 그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온 뒤 문학상·공모전 주최 측은 그의 수상을 취소하고 상금 환수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그가 공개한 학력과 군 경력까지 모조리 허위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세계일보 취재결과 공군 대위로 전역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전도유망한 공군 대위 출신의 청년은 어쩌다 표절과 거짓말로 점철된 가짜 인생의 주인공이 됐을까.

20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손 씨는 2006년 공군 조종장학생으로 입대해 2017년 대위로 전역했다. 군 복무 중이던 2014년에 고려대 세종캠퍼스 북한학과에 입학했지만 2019년에 제적당했다. 남성욱 북한학과 교수에 따르면 당시 그는 학교에 거의 출석하지 않아 제적당했다고 한다.

손 씨가 공모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군 전역 이후부터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 전역 후 도전한 여러 공모전에서 자신의 능력으론 기껏해야 장려상 정도였는데 타인들의 작품으로 대상 또는 우수상을 받게 되면서 표절을 반복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구글 검색 등을 통해 표절할 작품을 찾아낸 후 일부 단어만 수정한채 대담하게도 통째로 베껴 출품했다.

손씨의 SNS 계정과 언론을 통해 드러난 수상 내역을 보면 그는 문학, 외교, 도시계획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베껴 쉼 없이 공모에 참여했다. 대놓고 무단 도용을 해도 적발되기는 커녕 수상까지 하게 되자 그의 표절과 도용 수법은 갈수록 대담해졌다. 심지어 지난해 문경휴게소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화물운전기사를 응급처치로 구한 공로로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의인상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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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디사키공모전에서 손씨가 표절했던 부분. 한국디카시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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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하는 족족 입상하자 그는 SNS에 수상 사실을 알리며 상장 뿐 아니라 시상식 사진 등을 거리낌 없이 올리기 시작했다. 입상 실적 뿐 아니라 대외활동 경력도 화려했다. 그는 통일부 통통 국민참여단, 국방부 온라인 서포터즈 'M-프렌즈' 5기, 국세청 국민탈세감시단 '바른세금지킴이’, 국가보훈처 6.25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국민 서포터즈, 경상북도 인권기본계획제안서 평가위원,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정책모니터단, 공군사관학교 시간강사,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기자단, 합동참모본부 무기체계 시험평가 세미나 서포터즈, 충북지방경찰청 사이버 명예경찰 '누리캅스', 목포해양경찰서 서포터즈 등으로 활동했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지난 16일 김민정 작가가 페이스북을 통해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되었으며, 도용한 분이 2020년 다섯 개의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하였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폭로하면서 그의 표절 행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김 작가의 소설 ‘뿌리’는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실제로 손씨는 ‘뿌리’를 통째로 베끼다시피해 ‘꿈’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이 표절작으로 그는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작년 7월 2020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작의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축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등 총 5개 상을 수상했다.

손씨는 또 지난해 8월 2020년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제6회 디카시공모전에서 ‘하동 날다’라는 시로 대상을 수상하기도했다. 그의 시에는 가수 유영석씨가 1994년 발표한 노래 ‘W.H.I.T.E(화이트)’의 가사 중 ‘날지 못하는 피터팬 웬디 두 팔을 하늘 높이 마음엔 행복한 순간만이 가득∼’ 문구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40대 초반으로 알려진 그는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49세로 나이까지 조작했다. 그리고 포천38문학상 수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작가도 소설가도 아닌데”라는 글을 적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폐간된 계간지 소설미학을 제외한 4개 공모전 주최 측은 모두 수상을 취소한다는 공고를 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특허청이 주관하는 공모전에도 리포트 공유 누리집 사이트인 ‘해피캠퍼스’에서 다운 받은 자료를 표절해 최우수상도 받았으나, 특허청 역시 최종 확인후 취소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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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손씨가 포천38문학상 수상후 페이스북에 적었던 글 갈무리.


한국디카시연구소도 수상자 발표 5일만에 대상작을 취소했다. 그런데 손씨는 적반하장으로 “글은 5행 이내 시적 문장이면 될 뿐이지 본인이 창작한 글이어야 한다고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노래를 인용했다”고 반박하며 디카시연구소 사무국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국민의힘도 국방안보분과 위원직에서 그를 해임했다. 국민의힘은 손 씨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기때문에 징계 결정을 재논의하거나 재심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손씨도 당의 해임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전했다.

손씨는 표절을 하게 된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한 매체 인터뷰에서 밝혔다. 결국 많은 작가들이 피고름을 짜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내놓은 작품들을 무단 도용해 자신의 돈벌이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학 용어중에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스노볼 이펙트)라는게 있다”며 “이 사람도 처음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시작했겠지만 상을 받다 보니 조그만 눈덩이가 막 커지듯이 어느 순간 되니까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처음에 한두 번 먹혀들다 보니까 점점 상을 받는 방법도 터득하게 됐을 것이고 성취감도 굉장히 커졌을 것”이라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고 하다 보니 한 번에 일확천금하려 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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