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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김광일의 입] 대통령에게 묻는다, 윤석열이 정권의 부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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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들에게 번호를 붙여 놓고 번호를 불러 호명하는 광경을 봤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든 국가 원수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기자를 번호로 부르는 광경은 처음 봤다. 사람을 번호로 부르는 곳이 몇 곳 있기는 하다.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청춘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그 당시 “남자 1호”, “여자 2호” 하는 식으로 번호로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요즘 어떤 방송국에서 서바이벌 방식으로 노래 부르기 경연대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곳에서도 출연자들을 번호로 불렀다. 무명의 가수를 일반 대중에게 새롭게 선보인다는 상징성, 그리고 심사위원들과 시청자에게 선입견을 갖지 않게 하겠다는 뜻에서 번호를 붙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사람을 번호로 부르는 곳은 교도소다.

뭐 이런 어색하고 낯선 풍경이 있었다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청와대를 출입하는 우리 후배님들이 이런 기자회견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조금 놀랍고 낯설었을 뿐, 이 얘기를 오래할 생각은 없다.

다른 부처 신임 공무원들은 대개 장관 이름으로 임명장이 나간다. 그러나 검사는 헌법기관이다. 검사들의 임명장은 법무장관이 수여하지만 임명을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지금 사진에서 보여드리는 것처럼 대통령이 자기 이름으로 임명장을 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렇게 말했다.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며 검찰총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정말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을 가진 시청자분들이 많으셨을 것 같다. 저도 그랬다. 검찰총장은 헌법에 적시된 헌법기관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89조는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헌법기관인 대통령이란 자리가 또 다른 헌법기관인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헌법기관인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라고 해놓은 것이다. 자연인 ‘문재인’이 자연인 ‘윤석열’에게 정권 차원에서 임명장을 주는 것이 아니다. 헌법과 관련 법률에 따라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갖고 형식적으로 임명장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해버렸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대통령에게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공무원 임명장이 주어질 때 전국에 있는 그 공무원들을 문 정권의 공무원들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문 대통령은 답변해주십시오. 당신은 공무원을 문재인 정부의 부하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문 대통령의 행동, 추미애 법무장관의 행동, 그리고 집권 여당 사람들의 행동이 한꺼번에 이해가 됐다. 윤 총장에게 “내 명을 거역했다”던 추 장관, 그리고 윤 총장이 대통령의 부하이지 대통령의 친구란 말이냐 하고 혼냈던 여당 의원, 그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한꺼번에 이해가 됐다.

작년 10월 국정감사 때 윤석열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법무장관은 정치인이고 정무직 공무원이다. 검찰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정치적 중립과는 거리가 멀다.”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총장이 장관과 친구인가. 부하가 아니라면 친구인가. 상급자인가.” “대통령과도 친구인가.”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대통령부터 민주당 신입 정치인까지 자신들의 정권에서 임명장을 준 전국 공무원들을 자신들의 부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인사혁신처 2020년 통계연보를 보면 우리나라 행정부 국가공무원은 68만1049명으로 나와 있다. 여성 공무원이 남성보다 많다. 남성은 33만5천명쯤 되고, 여성은 34만5천명쯤이다. 이 중에 정권 덕을 본 사람들, 이른바 정무직 공무원은 129명밖에 안 된다. 0.02%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99.98% 공무원들은 정권과 아무 상관없는 공무원들이다. 아니 오히려 정치적 중립을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공무원 중에 우뚝 솟은 상징처럼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는 윤석열 총장을 향해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발언해버렸다. 검찰개혁의 핵심 요체가 정치적 중립이요, 정치적 독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해버렸으니, 그렇다면 이제부터 대한민국 검찰은, 2천여 명 대한민국 검사들은 정권의 공무원이요, 하수인으로서 역할을 다 하라는 뜻인가. 자신의 부하라도 된다는 뜻일까. 대통령은 분명하게 답변해주기 바란다.

올해 1월1일자로 발표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국 검사들에게 보낸 신년사를 보겠다. 모두 1811글자, 553개 단어, 원고지 13장 분량의 이 신년사에는 ‘대통령’이란 세 글자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커녕 그냥 ‘정부’라는 단어도 전혀 없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그 대신 국민이란 단어는 무려 14번이나 나온다. “국민들께서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국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국민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이 되어야 한다” “국민만 바라보고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을” 같은 구절들이다. 그중 ‘국민의 검찰’이라는 말은 4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작년 7월 검찰총장 임명장을 주었고, 윤석열 검사가 그 임명장을 받긴 했으나, 두 사람은 이토록 하늘과 땅 차이로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윤총장님~”이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했던 생각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니만큼 문 정권의 손발이 되어달라는 뜻이었겠으나, 윤석열 총장은 “어림없는 소리올시다, 나는 국민의 검찰총장일 뿐이요”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부른 이유가 차기 대선 구도에서 윤 총장이 야권 후보로 나서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 숨어있다고 했다. 차기 후보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이 야권의 대표주자로 나타나는 상황인데 윤 총장의 정치적 입지를 ‘여권 사람’인 것처럼 한정지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어떤 독자 분은 “위화도 회군을 한 조선왕조 이성계 장군을 가리켜 아직까지도 고려 왕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나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추미애 장관이 들고 온 ‘윤 총장 정직 2개월 징계 요청서’에 자필 서명한 장본인이 바로 문 대통령인데, 이제 와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댓글도 있었다. 정말 촌철살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검찰총장을 ‘문재인 정부 사람’으로 불렀다는 것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결론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끝내겠다. 문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전국 68만 공무원들이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까? 그런 생각으로 공무원들을 지휘하며 지난 4·15 총선을 치렀습니까? 앞으로 있을 4월의 서울시장·부산시장 선거도 그곳 공무원들을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이란 생각으로 치를 생각입니까? 그렇습니까? 최근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탈원전 정책 감사에 들어간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집을 잘 지키라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고 했다. 집을 잘 지키라 했다니요, 여기서 말하는 ‘집’은 ‘정권’을 뜻하는 것일 테고, 주인이 ‘집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는 상대는 대개 충견일 텐데, 그렇다면 지금 정권은 검찰총장도 감사원장도 정권을 수호하는 충견(忠犬) 쯤으로 알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까?

우리는 정말 무서운 대통령 밑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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