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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취재파일] 원칙대로라면 이재용이 받았어야 할 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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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21년 1월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법률적으로 선고할 수 있는 최소 형량이다. 단지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해주지 않았을 뿐이다. 재판부가 재판 초기부터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 요소로 삼을 수 있다고 밝히며 집행유예가 가능할 것이란 희망을 안겨줬기에 이 부회장 입장에선 실망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실망감과 별개로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가 선고한 형량은 법적으로 허용되는 최소 형량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 논란이 되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선고된 형량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에 있는 것은 맞지만, 판사들이 형량을 정할 때 대부분의 경우 준수하는 '양형기준'이 정상적으로 적용됐다면 나올 수 없는 형량이라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특별한 기준이 적용됐다. 그렇다면 이재용 부회장을 재판한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가 양형기준을 무시하고 특별한 기준을 적용해 최소 형량을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차근차근 설명해보겠다.

● 이재용에게는 왜 '최소 형량'이 선고됐나

재판부가 누군가에 대해 여러 가지 범죄 혐의를 인정했다면, 유죄로 인정되는 혐의에 해당하는 각각의 형량이 모두 합산돼 선고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인죄와 사기죄를 저질렀다면 살인죄 형량 20년에 사기죄 형량 10년을 더해서 징역 30년이 선고된다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제에서는 한 사람에게 여러 범죄 혐의가 적용됐을 때, 각 범죄 혐의에 해당하는 형량을 모두 합치는 방식으로 형량을 정하지 않는다. 여러 범죄가 동시에 성립할 경우 법정형이 가장 무거운 범죄 혐의를 기준으로 삼되, 이 범죄의 법정형의 상한선을 일정 비율로 늘리는 방식을 쓴다.

때문에 형량에 대해서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범죄 혐의 중 법정형이 가장 높은 범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결국 이 범죄가 형량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살인과 사기와 절도가 둘 다 문제가 된다면 살인죄가 형량을 결정하는 셈이다. 얼마 전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정경심 교수의 경우에는 세간의 관심이 높은 표창장 위조 혐의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았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행위가 형량을 결정하는 결정적 범죄였다. 정 교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된 11가지 범죄 혐의 중 법정형이 가장 높은 범죄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금지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는 어떨까? 가장 주목도가 높았던 뇌물 제공이 아니라, 횡령죄가 형량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대법원 상고심과 파기환송심이 인정한 법인 자금 횡령액은 총 86억 원인데, 50억 원 이상 횡령에 대한 법정형은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유죄가 인정된 혐의 중 가장 높다. 법정형이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것은 5년 이상에서 유기징역의 상한선인 30년 이하의 범위에서 형량을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회장의 경우 횡령과 뇌물 제공 등 다른 범죄도 함게 문제가 되기 때문에 경합범 가중 원칙에 따라 기본범죄인 횡령죄의 상한선에 1.5배 가중이 이뤄진다. 따라서 징역 5년~45년이 선고할 수 있는 범위가 된다.

● 이재용이 얻지 못한 것은 '집행유예' 한 가지뿐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형법 53조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판사가 작량하여(짐작하여 헤아려)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참작할 만한 사유"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작량감경은 완전히 판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유기징역의 경우 작량감경을 할 수 있는 범위는 기존 형량의 1/2까지다. 따라서 판사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 작량감경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이재용 부회장에게 법률적으로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의 범위는 징역 2년 6개월~22년 6개월로 줄어든다. (이를 '처단형'이라고 한다.)

이로써 우리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가 선고한 징역 2년 6개월이라는 형량이 작량감경을 최대치로 한 이후에 남는, 법률적으로 선고 가능한 '최소 형량'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각 혐의의 유무죄 판단에 대해서는 대법원 상고심 결론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파기환송심 재판부로서는 징역 2년 6개월보다 더 낮은 형량은 선고하고 싶어도 법적으로 선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얻어내지 못한 것은 최소 형량의 집행을 유예해주는 조치, 집행유예 하나뿐이다. 물론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 이야기를 꺼낸 이후부터는 이 부회장 측이 목표로 삼았던 것이 집행유예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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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 형량'의 전제 조건, 양형기준 무시

하지만 '최소 형량'을 선고하기 위해서 재판부는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양형기준'이었다. 적정한 권고 형량의 범위를 정해주는 양형기준을 정상적으로 적용했다면 법적으로 선고 가능한 최소 형량은 선고하기 어렵다.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 형량의 범위는 가능한 선고 형량의 범위 보다 훨씬 좁고, 따라서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 형량의 하한선 역시 법적으로 선고 가능한 최소 형량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 형량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양형기준을 배제해야 했다. 양형기준 무시는 최소 형량 선고의 전제조건이었던 셈이다.

본격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양형기준'이 무엇인지 좀 더 알아보자. 앞서 본 것과 같이 피고인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난 이후, 인정된 혐의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여러 요소를 계산하면 '법적으로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의 범위'(처단형)가 나온다. 그런데 처단형의 범위는 대부분의 경우 너무 넓기 때문에, 전국의 법관들이 어느 정도 일관된 경향으로 선고할 수 있도록 권고 형량의 범위를 정해주는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이것이 '양형기준'이다. 양형기준은 원칙적으로는 구속력이 없는 권고적 기준이지만, 법관이 양형기준을 벗어날 때는 판결문에 이유를 써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 이유 없이는 양형기준을 이탈할 수 없다. 그래서 법관들이 양형기준을 준수하는 비율은 89.7%나 된다. (2009~2019년 기준)

게다가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횡령·배임 범죄의 양형기준의 경우 준수율이 평균보다 더 높은 93.9%다. (2009~2019년 기준, 출처: 2019년 11월 송오섭 판사 양형연구회 발표 자료)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경우 중 93.9%가 양형기준에 입각해 형량을 선고했다는 뜻이다.횡령액 300억 원 이상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준수율은 더욱 올라간다. 이재용 부회장의 횡령액은 86억 원이니 여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 같은 횡령 범죄의 경우 6.1% 미만의 경우에만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이 나오는 셈이다.

● 양형기준을 배제한 이유가 이미 양형기준 안에 있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담당한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양형기준을 벗어나 양형기준의 하한선보다도 더 관대한 형량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무엇일까? 재판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피고인 이재용이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하였던 것은 전 대통령이 삼성전자 명의로 후원을 요구하였기 때문이고, 앞서 본 바와 같이 환송전 당심에서 업무상 횡령 범행의 피해는 전부 회복되었다. 나아가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절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는 점 등을 참작할 때 피고인 이재용에게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의 설명은 대법원의 논리와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요구와 강압을 거부하지 못해서 제공한 소극적 뇌물'이라는 논리는 특검 수사 과정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후 353일 동안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한 2심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서원 씨(옛 이름 최순실)에 대한 판결을 통해 "피고인 이재용은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하여 직무와 관련한 이익을 얻기 위해 직무행위를 매수하려는 의사로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소극적 뇌물'이 아니라 '적극적 뇌물'이라는 논리를 세운 것이다.

또, 대통령의 후원 요구와 압박에 따른 횡령과 뇌물 제공이라는 점이 양형기준을 무시하는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뒤에서 자세히 보겠지만 양형기준표에는 비슷한 범죄의 경우에도 형량을 달리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변수들이 제시돼 있다. 이를 '(특별/일반)양형인자'라고 한다. 양형인자 가운데는 형을 감경할 만한 요소인 '감경요소'도 있고, 형을 가중할 만한 요소인 '가중요소'도 있다.

횡령죄의 경우 대통령의 압박이나 요구에 따른 소극적 행위와 관련된 양형인자가 이미 제시돼 있다. "사실상 압력 등에 의한 소극적 범행가담"이나 "범죄수익의 대부분을 소비하지 못하고 보유하지도 못한 경우"와 같은 것들이다. 뇌물죄의 경우도 "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가 특별양형인자 중 감경요소로 이미 양형기준에 포함돼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양형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이유로 제시한 요소들이 이미 양형기준 안에 포함돼 있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소극적 횡령론'이나 '소극적 뇌물론'은 양형기준의 틀 안에서 형량을 깎는 고려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양형기준 자체를 이탈하는 명분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벗어나, 대법원의 유무죄 판단을 뒤집지 않는 범위에서 선고할 수 있는 최소 형량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93.9%의 경우에 적용되는 기준을 무시하고 6.1%에 해당하는 예외를 이재용 부회장에게 허용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같은 특별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기준이 필요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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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대로라면 이재용이 받았어야 할 형량은?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양형기준이 적용되었을 경우, 다시 말해 '원칙대로라면 이재용이 받았어야 할 형량'은 무엇이었을까?

재판부 역시 양형기준에 따를 경우 적용할 수 있는 형량의 범위를 판결문에 밝혔놨다. 재판부의 분석에 따르면 징역 4년~10년 2개월이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 형량 범위다. (이는 횡령 범죄를 기본 범죄로 해서 이와 동시에 성립하는 범죄 중 양형기준이 마련된 뇌물 제공 범죄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범죄의 형량을 양형기준표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경합처리한 것이다. 경합처리 공식의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의 횡령죄의 형량 범위를 '기본 영역'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이 같은 권고 형량이 나온 것이다. 기본영역이 아니라 '감경영역'이나 '가중영역'이었다면 권고 형량 범위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형량 범위가 '감경' '기본' '가중'으로 달라지는 것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특별양형인자 때문이다. 형량의 범위를 정하는 데에 고려해야 할 요소를 뜻하는 말이다.

특별양형인자는 다시 '감경요소'로서의 특별양형인자와 '가중요소'로서의 특별양형인자로 나누어진다. 어떤 범죄와 관련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요소(감경요소)가 형을 가중할 수 있는 요소(가중요소)보다 더 많다면 해당 범죄의 형량 범위는 '감경영역'으로 판단된다. 권고 형량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내려간다. 반대로 가중요소가 감경요소보다 더 많다면 '가중영역'으로 판단돼 권고 형량의 범위가 올라간다. 특별한 요소가 없거나 감경요소와 가중요소의 수가 똑같다면 '기본영역'으로 판단한다. 횡령·배임죄의 특별양형인자 중 감경요소와 가중요소의 명단은 아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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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 배임죄 양형기준 - 특별양형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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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저지른 삼성전자 법인 자금 횡령 행위와 관련해서는 횡령·배임죄의 양형기준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특별양형인자 중 '가중요소'가 더 많을까, 아니면 '감경요소'가 더 많을까? 재판부는 두 요소가 똑같이 한 개씩 있다고 봤다. 이 부회장의 행위에는 특별양형인자 중 감경요소인 "처벌불원 또는 상당 부분 피해 회복된 경우"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가중요소인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1 + 1= 0.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의 횡령죄는 '기본영역'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논리다.

● "징역 4년~10년 2개월"이 정상적인 권고 형량

결론적으로 말해 재판부가 밝힌 양형기준상의 권고 형량 범위에 따르더라도 이재용 부회장의 형량은 징역 4년~10년 2개월 사이의 어느 지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원칙대로라면 이재용이 받았어야 할 형량"이다. 권고 형량 범위의 하한선조차도 이재용 부회장이 실제로 선고받은 형량인 징역 2년 6개월보다 1년 6개월이나 많다. (참고로 특검의 구형량은 징역 9년이었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부는 대법원의 해석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소극적 횡령/뇌물' 논리를 다시 꺼내고, 양형기준에 이미 포함된 사유를 근거로 삼아 양형기준을 이탈한 후, 양형기준에서 제시하는 권고 형량 범위보다 훨씬 낮은 '선고 가능한 최소 형량'을 선고했다. 집행유예가 선고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자체만으로도 93.9%의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특혜이며, 6.1%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정경심 교수에게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을 때, 판결문 논리와 양형기준에 따르면 징역 4년은 정상적 형량 범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표창장 하나 때문에 징역 4년을 선고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이성적 반응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으로 제시했던 양형기준을 무시하고, 법적으로 허용되는 가장 관대한 형량을 재벌에게 선고하는 일이 정당화된다면, 다른 재판에서 형량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제기됐을 때 법원이 할 말이 남아 있을까?

● "왜 이재용에게만…?" 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왜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는 양형기준을 무시하고 더 낮은 형을 선고했는데, 정경심 교수의 경우는 양형기준을 엄격하게 지켰는가, 왜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형량을 정할 때는 이재용의 경우와 달리 양형기준을 준수하는가, 내 친구와 내 가족에게는 원칙대로 선고했으면서 이재용에게는 왜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줬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쌓여갈 때마다 재판과 법관에 대한 신뢰가 깎여나간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슬픈 진실이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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