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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view] “통합의 해” 11일만에 “사면 말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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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집값 폭등에 “세대수 크게 늘어서”

추·윤 갈등엔 “민주주의 발전 과정”

야당 “문 대통령 황당한 답변”

서울·부산시장 여당 공천 논란에

“당헌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언급

중앙일보

문재인


문재인(얼굴) 대통령은 18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전제는 국민들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국정 지지도 하락 주요인으로 꼽히는 ‘추미애(법무부 장관)-윤석열(검찰총장) 갈등’에 대해선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재차 사과했다. 예정된 100분을 넘겨 123분간 진행된 회견에서 딱 한 번 나온 사과 발언이었다. 이날 회견은 지난해 1월 이후 1년 만에 국민 앞에서 집권 5년 차 국정운영 계획을 밝히는 자리여서 관심이 집중됐다. 코로나19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던 국민은 대통령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후폭풍이 컸다. 주요 사안에 대한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고 갑작스레 달라진 입장은 당황스러웠다.

문 대통령은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이유로 지목되는 LTV·DTI 등 대출 규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렇게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답변드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란 말이 2030세대에서 유행일 정도로 부동산은 심각한 이슈다. “문제가 뭔지 모르고 있다. 황당한 대답”(오신환 전 국민의힘 의원)이란 비판을 자초했다. 부동산 공급 부족과 관련된 질문에는 정책적 판단 착오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 대신 “작년에 무려 61만 세대가 늘었다”며 외부 변수에서 원인을 찾았다.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었다.

문 대통령은 또 ‘정인이 사건’ 대책으로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아이와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그런 대책도 필요하다”면서 ‘파양’을 거론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대통령 인권 감수성이 낮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이 문제에 대한 인식과 복잡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주요 갈등 이슈와 관련해선 과거 입장과 달라진 모습으로 논란을 불렀다. 먼저 ‘추-윤 갈등’과 관련해 “갈등이 생긴다 해도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년간의 갈등을 ‘민주주의 발전’으로 포장하기엔 극심한 분열과 피로감이 너무 컸다. “(윤 총장이) 정치할 생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부분도 의중을 가늠키 어려운 얘기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추 장관이 정치중립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낸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했던 것과 배치돼서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과 관련해 “선고가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사면을 말할 권리는 없다”고 종지부를 찍은 대목은 ‘통합의 해’(7일 신년 인사회)라거나 ‘포용의 해’(11일 신년사)라고 했던 기류와 확연히 대비된다.

문 대통령, 국민 사과 딱 한 번 “추·윤 갈등 송구”

이해하기 어려운 갑작스러운 ‘노선 전환’은 더 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최근 법원 판결과 관련해 “2015년에 (박근혜 정부 당시 맺은)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 간 공식적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해법을 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3년 전 1월 4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선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는) 할머니들 뜻에 어긋나는 잘못된 합의였다”고 했었다. 당시 방점은 ‘잘못된 합의’에 찍혀 있었는데, 이번 회견에선 ‘2015년 합의에 기초한 해결 방안’에 주안점이 있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외교 문제에서 상황에 따라 달라진 메시지는 상대를 당혹하게 하고 국가적 차원의 신뢰도 깎아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재보선 발생 책임이 있으면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한 당헌을 바꿔 4월 서울·부산 시장 보선에 후보를 내는 데 대해 “헌법과 마찬가지로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 없다. 당과 당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감쌌다. 해당 조항은 문 대통령이 2015년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당내 혁신위원회를 꾸려 새로 집어넣은 조항이다. 집권이 목표인 정당의 내부 규약 변경을 국가 통치의 기본 원리인 헌법에 빗대 가변성을 합리화한 건 수긍하기 어렵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월 재보선은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중요 선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상황 변화를 설명하려면 최소한의 사과가 전제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구 정치에디터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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