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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주식 투자, 조바심에 하는 건 금물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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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어찌어찌하다 보니 증권맨 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시장을 보는 통찰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자문해보면 부끄럽지만, 그래도 여러 강세장과 약세장을 경험해 보기는 했다. 올라가는 속도로는 신입사원 때였던 외환위기 직후의 강세장이 가장 강력했다. 당시 종합주가지수는 1년6개월 만에 280포인트에서 1000포인트까지 치솟았다. 2005~2007년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면서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에서 2000포인트까지 올라갈 때는 한국 증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고원에 올라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주가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주식에 대한 집단적 관심은 커진다. 주가 상승은 투자자들의 자기확신을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고,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자책감은 후발 투자자들의 뒤늦은 몰입을 부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주식투자 붐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과거와 구별되는 독특한 점이 있다. 최근 주식시장 자금유입 규모와 속도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 불가’이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직접투자 자금 규모는 99조원인데, 금년 들어서만 8거래일 동안 12조8000억원이 들어왔다. 과거 한국인들이 주식에 몰입했던 시기, 예를 들어 주식형 펀드 붐이 있었던 2005~2007년에 주식시장으로 가장 많은 돈이 집중됐던 때가 2007년 11월의 6조원이었다.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모 자산운용사의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증권사 객장에서 긴 줄을 서 기다릴 정도로 대단한 열기가 있었을 때가 당시였다. 아무튼 월간 6조원 유입이 과거 주식투자 열풍기의 최대치였는데, 2021년 초 8거래일 동안 11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으니 요즘의 주식투자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

한국 가계가 주식투자를 늘리는 건 장기적으론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 가계소득은 정체되고 있는데, 소득 정체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두 가지이다. 일단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거의 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 소득은 2010~2019년 10년 동안 연율 0.1% 늘어나는 데 그쳤다. 더 결정적인 건 이자소득의 감소이다. 같은 기간 동안 가계 이자소득은 연평균 4.0% 감소했다. 금리가 계속 떨어졌기에 이자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에 금리 하락이 가계에 유리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일부 가계의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가계 전체적으로 보면 부채보다 금융자산이 훨씬 많다. 2020년 9월 말 현재 가계 금융부채는 1922조원이지만, 가계 금융자산은 4325조원에 달한다. 가계 전체적으로는 금리가 오르는 게 유리하다. 가계가 돈을 빌려주는 순대여자라면 기업은 전체적으로 돈을 빌리는 순차입자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펴고 있는 인위적 저금리 정책은 가계의 부를 기업으로 이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주요 국가들 중 자영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군에 속한다. 자영업이 직면해 있는 어려움은 우리가 요즘 보고 있는 그대로이다. 꼭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부터 경제적 자원이 자영업에 과잉 배분되고 있다는 지적은 많았다. 과잉 경쟁이 벌어지는 레드오션에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주식을 산다는 건 내 돈을 능력 있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행위이다.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게 되면 내가 스스로 사업을 벌리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나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또 주식을 사는 건 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한다는 의미인데, 인위적 저금리로 가계의 부가 기업으로 이전되는 상황에서 나름 합리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주가지수는 우상향하는 경향이 있지만 늘 고속도로로만 달리는 건 아니다. 특히 요즘은 유입되는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자기강화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시장충격비용(market impact cost)이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너무 크다. 돈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주가를 높게 끌어올리면서 주식을 사게 되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분산보다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무거운 주식들도 개인투자자들이 집중 매수하는 날은 가벼운 중소형주처럼 움직인다. 물론 잘 모르는 종목에 대한 분산투자보다 익숙한 종목에 대한 집중투자가 나쁘다고 볼 근거는 없지만, 그래도 쏠림이 있을 때는 호흡 조절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종목을 분산하기 힘들다면 투자의 시기라도 분산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특히 주가가 전반적으로 많이 오른 현시점에서 신규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분이라면 투자 자금을 나누어서 주식을 사는 적립식 투자를 권해드리고 싶다.

투자에 있어 가장 큰 적은 늘 언제나 조바심이었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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