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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BBQ가 bhc에게 300억 물어내라” 1심 판결 나온 치킨전쟁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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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랜차이즈 치킨업계의 경쟁자인 BBQ와 bhc는 한때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 bhc의 모회사였던 제너시스BBQ가 2013년 bhc를 매각하면서 남남이 됐고, 현재는 영업기밀 등을 둘러싼 민·형사소송으로 얽힌 숙적이 됐다. 최근 BBQ가 bhc에 치킨소스 등을 독점 공급받기로 한 계약을 끊어 손해를 입혔다며 bhc에 약 300억원을 물어내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재판장 임기환)는 지난 14일 bhc가 BBQ를 상대로 낸 상품공급대금 등 소송에서 “BBQ가 290억6500만원을 bhc에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bhc에게 소스와 파우더 등 원료를 독점 공급받던 BBQ가 2017년 10월 상품공급계약 해지를 일방 통보해 계약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BBQ는 bhc가 BBQ에서 근무하던 직원을 통해 영업기밀을 빼내 신메뉴를 개발하는 등 계약을 해지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 형제사이였던 BBQ·bhc 치킨 전쟁 왜?

두 회사의 법정다툼은 2000년대 국내 프랜차이즈 치킨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bhc는 1997년 ‘별하나치킨’이란 이름으로 창립해 2000년 bhc로 브랜드 이름을 변경했다. 콜팝치킨 등 독특한 메뉴로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으나 2004년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다 제너시스 BBQ에 인수됐다. bhc는 한동안 BBQ의 자본력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으나 그룹의 자원이 BBQ에 몰리면서 2010년 이후 성장이 정체됐다. 3년 간 신제품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룹의 맏형 BBQ도 사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굽네치킨 등 다양한 후발주자들이 나오면서 톱스타 걸그룹을 모델로 기용하는 등 치킨업계 마케팅 전쟁이 격화됐다. 무리한 확장 끝에 2012년 말 BBQ는 부채비율이 755%에 달하는 등 경영위기에 빠졌다. BBQ는 미국계 사모펀드 로하틴그룹(당시 CVCI)에 bhc를 1130억원에 매각했다. BBQ에서 글로벌사업 대표를 맡고 있던 박현종 현 bhc회장은 이때 bhc로 옮겼다.

bhc는 BBQ와 2013년 6월 물품공급대금 계약을 체결했다. 10년 간 bhc가 제조한 치킨소스와 파우더를 bhc의 영업이익률이 연 19.6% 유지되는 가격에서 BBQ에 독점 공급하며, 문제가 없으면 계약을 5년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BBQ가 로하틴에 bhc를 매각할 때 몸값을 높이기 위해 계약내용에 포함시킨 것이었다. 이 계약으로 bhc는 BBQ의 경쟁관계인 동시에 원료를 공급하는 협력관계가 됐다. 이 기묘한 관계가 소송전의 불씨가 됐다.

두 회사의 관계는 2014년 로하틴이 “BBQ가 bhc의 매장 수를 부풀려 팔았다”며 BBQ를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제소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ICC는 2017년 “BBQ가 98억원을 배상하라”고 중재 판정을 내렸다. BBQ는 bhc가 원료를 운송하면서 트럭에 BBQ 대신 bhc로고를 달았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배송트럭의 광고용 로고 내용은 계약사항이 아니라며 법원은 이 소송 청구를 기각했다. bhc의 2013년 영업이익률이 21.72%로 보장 영업이익률(19.6%)을 넘어서자 대금 지급을 두고도 두 회사는 법정 분쟁을 벌였다. bhc 매각 이후 두 회사의 명암은 엇갈렸다. 해외진출을 추진하던 BBQ는 2014년 부채비율이 1500%까지 치솟는 등 좀처럼 경영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던 반면, bhc는 로하틴의 투자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해 가맹점 수에서 BBQ를 추월했다.

‘KB 자영업 분석 보고서’를 보면 치킨집 창업은 2014년 9700개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까지 내리막길을 걸었으며 폐업이 창업보다 많았다. 국내 치킨 시장이 포화상태가 된 시점부터 한 지붕 아래 있었다 갈라진 두 회사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bhc가 BBQ를 앞지르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패였을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레드 오션이 된 치킨시장이 소송전의 한 원인인 셈이다.

■ BBQ 영업이익보다 큰 배상금, 실제 배상할까

갈등은 BBQ 출신 bhc 임직원들이 2015년과 2017년 BBQ 전산망을 해킹해 경영기밀을 빼갔다고 BBQ 측에서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BBQ는 박 대표 등을 부정경쟁방지법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bhc와 물품공급계약을 끊었다. bhc는 2018년 물품공급계약 해지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BBQ는 정보 유출 의혹 등을 들어 bhc가 먼저 신뢰관계를 해쳐 계약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다.

법원은 bhc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BBQ)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원고(bhc)가 피고와의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부당한 행위를 했다거나 이로써 이 사건 상품공급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정보유출 의혹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BBQ에서 bhc로 옮긴 직원들의 노트북에서 BBQ 신제품의 개발 관련 보고서들이 발견됐으나 이직 전 저장해 둔 문서로 빼돌린 것이 아니라고 봤고, BBQ가 유출 의혹을 제기한 정보들은 원료 공급 협력업체로서 bhc가 정당하게 획득한 정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피고(BBQ)의 2017년 10월30일자 해지통보는 그 사유가 인정되지 않아 부적법하다”며 BBQ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정상 계약 종료시점인 2028년6월28일까지의 예상 매출액에 계약상 영업이익률 19.6%를 곱한 금액을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관심은 BBQ가 실제 배상할 지에 쏠린다. 법원이 결정한 배상액은 BBQ의 한 해 영업이익 259억원(2019년 기준)보다 큰 액수이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배달음식 주문이 늘면서 치킨업계가 전반적으로 지난해 호황을 누리는 등 BBQ의 자금여력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BQ는 1심 판결이 치우쳤다 평가하고 항소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hc 박 회장의 형사재판이 남아 있다는 점도 변수이다. 앞서 검찰은 박 회장의 영업기밀 유출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으나, BBQ가 서울고검에 항고해 재기수사가 이뤄졌다. 서울동부지검은 형사5부(부장검사 하동우)는 지난해 11월 박 회장을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박 대표가 bhc사무실에서 BBQ 전·현직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접속해 BBQ 내부망에 접속해 ICC 소송 관련 서류를 열람했다고 보고 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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