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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검찰개혁, 속도는 조절해도 방향은 못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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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60

노무현 정부 실패 딛고 문재인 정부에서 큰 성과

올 초 시행 검-경 수사권 조정 안착이 당면 과제

수사권-기소권 분리는 최종 목표…서두르지 말아야

2017년 유승민 후보 수사청 설치 공약 참고해야


한겨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법제사법위원 연석회의에서 윤호중 법사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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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뜻입니다.

개혁을 추진할 때는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개혁의 속도는 조절할 수 있어도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이 바로 그런 과제일 것입니다. 검찰개혁의 최종 목표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입니다. 수사기관과 소추 기관을 완전히 분리해서 상호 협력과 견제의 관계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려다가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제도 개혁이 핵심입니다. 제도 개혁으로서의 검찰개혁이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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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곧 출범합니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들의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이지만, 더 중요한 존재의 목적은 ‘검찰 견제’입니다. 공수처 설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한 현재의 형사사법제도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입니다. 균열은 작아도 효과는 클 것입니다. 이제는 검찰이 정치권력이나 검찰 조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사와 기소로 과거처럼 ‘장난’을 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검경수사권 조정입니다.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형사사법제도의 큰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폐지됐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이제 상호협력 관계입니다. 경찰은 수사종결권을 가졌습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범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6개 분야와 경찰공무원의 범죄로 제한됐습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검찰의 자체 개혁도 적지 않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서울·대구·광주를 제외하고 전국 검찰청 특수부가 폐지됐습니다. 직접 수사를 담당하던 부서가 없어지고 형사부와 공판부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사건 관계인을 검찰청에 공개 소환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여론재판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심야 조사도 폐지됐습니다.

국민은 이런 변화를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검찰청이나 경찰서에 갈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찰개혁 중심의 형사사법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그 흐름은 이제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에서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검찰개혁 실패의 경험이 짙게 깔렸습니다.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짤막짤막하게 인용하겠습니다.



<김대중 자서전>(2010)

1998년 4월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

과거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권력의 목적에 따라 표적 수사를 많이 했습니다. 나도 당해봐서 압니다. 1989년 용공조작 당시, 밀입북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서경원 씨를 사흘간 잠 안 재우고 고문까지 해서 나에게 주지도 않은 1만 달러를 줬다고 허위 자백하게 했습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이것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정권은 학연, 지연에 구애받지 않고 인사 문제를 깨끗이 할 것이고 권력을 위해 검찰권 행사를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임기 말 검찰이 김홍업 김홍걸 두 아들을 구속한 데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평가

당시 정권교체를 확신했던 검찰은 ‘지는 권력’을 향해 비수를 겨누었다. 그 표적이 대통령 아들이었고, 홍업이었다. 홍업의 주변 인사 580명을 조사했다. 그중 오랜 친구를 지목, 홍업의 비리 연루 혐의를 캤다. 회사를 압수 수색하고,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며 자백을 강요했다.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의 친구는 검찰의 요구대로 혐의를 인정했다. 죄책감이 시달리던 친구는 출소 후 아들에게 사죄했다. 그리고 2008년 2월 사망하기 이틀 전 “검찰에 진술한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녹취록을 유언으로 남겼다.

막내아들 홍걸은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따랐다. 오랜 미국 유학 중에 국내 사정을 잘 몰랐고, 그에게 접근한 사업자에 대해서 의심 없이 마음을 열었다. 나는 그런 막내의 사람에 대한 ‘철없는 믿음’을 알고 항상 조심하라고 일렀지만 이를 막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나의 부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노무현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2010)

나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중략)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문재인의 운명>(2011)

그때 대통령과 우리는 검찰개혁의 출발점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봤다. 즉 ‘정치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게 개혁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사실 이 목표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정치권력이 검찰을 정권의 목적에 활용하려는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고, 검찰 스스로 정권의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는 ‘문화의 문제’로 봤다.(중략)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한꺼번에 퇴행해 버린 것이 어이없고 안타깝다. 안타깝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에서 검찰 권한의 분산, 견제와 감시라는 사고는 존재하기는 했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검찰의 권한 분산 과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검찰 권한 분산이라는 개혁 과제는 고비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표현된다. 이 두 과제에 대해 인수위는 부정부패의 추방, 검찰개혁의 과제로 제시하고 있지만, 검찰개혁의 중추, 즉 검찰 권한의 견제와 감시 시스템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이 묻는다>(2017)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

-국민이 모두 강력하게 권력 재편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지방분권 강화 전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검찰에 너무 많이 집중된 권한을 법으로 조정하는 겁니다. 집중된 권한 때문에 ‘무소불위의 검찰’이 되었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검찰도 등장했습니다. 현재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서 수사권은 경찰에게, 기소권은 검찰에게 분리 조정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개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난 참여정부 때 그걸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우리가 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해내지 못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중략)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해야 검찰의 비리나 잘못, 위법에 대해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국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검찰이 다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이나 치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해결해버리는 거죠. 수사권이 경찰에 간 다음에도 경찰이 검찰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봅니다. 그게 완전히 제대로 되기 전까지는 고위 공직자들이 수사를 받는 기구가 한시적으로 필요합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되 그 전까지는 한시적으로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검찰개혁 공약은 이처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패라는 반면교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겪은 경험이 농축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7년 대선 문재인 후보 검찰개혁 공약

*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 공직자의 비리 행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하여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 수사 차단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검찰과 경찰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검·경수사권 조정

-검찰은 원칙적으로 기소권과 함께 기소와 공소유지를 위한 2차적·보충적 수사권 보유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 공약 가운데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일부는 2019년 국회에서 신속처리절차(패스트 트랙)를 거쳐 입법화됐습니다. 1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그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 공약의 ‘절반’을 지킨 셈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안에 수사권 기소권 완전 분리 공약을 지킬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까지입니다. 지금은 새로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안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입니다. 너무 서두르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와 윤호중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로드맵’ 방식을 천명했습니다. 지금 당장 시행하지는 않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검찰개혁 일정을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에 담아 2월 국회에서 미리 통과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수사권 기소권 완전 분리의 시기를 법으로 못 박아두겠다는 강한 의지입니다. 성공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난관이 있습니다.

첫째, 수사권 기소권 완전 분리에 대해 당사자인 검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당사자들의 반발이 너무 강하면 개혁을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1월 1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에 대한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날 회의는 기자들에게 공개됐습니다.



지금 검사들은 사법 통제하러 검찰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수사하러 검찰에 들어왔다. 그게 현실이다. 수사하러 온 검사들에게 어느 날 ‘이제부터 수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전환을 교육으로 할지 다른 정체성을 심어가면서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할지 고민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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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악당 때려잡으려고’ 검사가 된 사람들한테 재판에나 들어가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얘깁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검사들도 대부분 정의감이 무척 강한 사람들입니다. 검사에게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는 어쩌면 검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둘째, 여론입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갑자기 금지하면 “악당은 누가 때려잡느냐”는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거악’을 때려잡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고도의 수사 능력과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검사들이 그동안 우리 사회의 거악 척결에 기여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검사들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거악을 때려잡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경찰은 아직 거악과의 싸움을 수행할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2017년 대선에 나선 후보들 가운데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유승민 후보의 공약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017년 대선 유승민 후보 검찰개혁 공약

* 수사청 설치로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여 수사는 제3의 기관인 수사청이 담당

-수사청은 검사(수사검사와 검찰 수사관)와 수사경찰로 구성



현재 검찰에서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와 수사관들, 그리고 경찰로 수사청을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수사는 수사청이, 기소는 검찰이 맡는 방안입니다.

이렇게 하면 현재 검찰에 소속된 검사들이 수사청으로 옮겨가서 거악과의 전쟁을 수행할 것인지, 아니면 검찰에 남아서 사법 통제 업무에 전념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방안이 가장 현실 적합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이기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성과가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야당이 집권해도 검찰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제도 개혁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법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공수처법 등 법률을 대통령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일입니다.

둘째, 야당도 무소불위의 검찰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막강한 검찰은 우리도 무척 두려운 존재인데 문재인 정부가 힘을 빼줘서 고마운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입니다. 검찰개혁을 통해 검사들이 권력의 시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괴물이라는 오명을 걷어내고 진정한 공익의 대표자로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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