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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서울 버리고 부산' 盧 닮아간다···권양숙도 걱정하는 김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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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14일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를 방문해 "부산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 달리겠다"고 말했다. 뒤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당시 대화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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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돌아가신 양반도 그랬는데, 장관님도 또 그러시네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지난달 29일 봉하마을을 찾은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나 건넨 말이다.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예고한 김 전 장관에게 권 여사는 “또 어려운 싸움을 하러 내려왔느냐. 정말 짠하다”며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부산 지역구의 한 의원은 “김 전 장관의 행적이 노 전 대통령을 닮아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걸고 자신의 지역구(16·17대)였던 서울 광진갑을 버리고 부산진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부산시장 도전에 마음을 뒀지만 2014년과 2018년 모두 결과적으로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내줬다. 민선 1기 지방선거(1995년) 때 부산시장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 북강서을에 도전해 고배를 마신 노 전 대통령과 닮은 꼴이다. 각각 김대중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점도 두 사람의 공통된 이력이다.



노무현 마케팅…높은 文 부정평가 때문?



김 전 장관은 연일 ‘노무현 정신’을 앞세우고 있다. 첫 공식일정(지난달 29일)으로 봉하마을을 찾은 데 이어 보름여 만인 14일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달리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지역주의 정치의 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출마선언 전후로 노 전 대통령님께 ‘부족한 저라도 그 뒤를 이어 다시 뛰겠다’고 말씀드렸다”(지난달 29일)라거나 “노 전 대통령이 꿈꿔온 지역 균형 발전, 지역주의 정치 극복을 위한 마음으로 부산에 돌아왔다”(14일 라디오 인터뷰)는 말을 이어왔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부산에 내려간 지 13일 만인 지난 10일에 처음 나왔다. “문 대통령님, 힘내시라”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다. 이후 출마선언과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메시지가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에 비하면 무게와 횟수에서 모두 못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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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지도부 만찬에서 김영춘 당 의장 비서실장(오른쪽)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신기남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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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에 대해 비관적인 부산 민심을 신경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갤럽 여론조사(1월 5~7일)에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문 대통령 국정운영평가는 부정 65%로 긍정(3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의 부정평가(62%)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배종찬 인사이트K 소장은 “부산 유권자들은 더는 문 대통령엔 호의적이지 않아 적극적인 언급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부산출신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부산 스타일 정치인이다. 또 부산시민에겐 지역감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왔지만 밀어주지 못했단 부채의식이 남아있다”며 “반면 문 대통령은 부산 정치에 대한 스킨십이 부족했다. ‘우리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도 옅다”고 말했다.



YS발탁으로 시작된 인연



김 전 장관이 적극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앞세우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 생전 두 사람의 정치 여정은 늘 엇갈렸다. 인연의 시작은 1988년이었다.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비서였던 김 전 장관은 13대 총선 때 부산 동구에 공천받은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봤다고 한다. “당시엔 ‘저 분이 그분이구나’ 생각했고, 말을 섞어본 기억은 없다”는게 김 전 장관의 기억이다. 1990년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에 반발해 통일민주당을 탈당했고, 김 전 장관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청와대 행정관이 됐다.

두 사람의 당적은 2003년에 다시 같아졌다. 김 전 장관은 ‘독수리 5형제’(김부겸·이부영·안영근·이우재·김영춘)의 막내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동참했다. 2004~2005년 원내수석부대표 등 당직을 맡은 김 전 장관은 여러차례 청와대에 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을 마주했다. 그러나 관계는 편치 않았다. “중소기업도 가고 시장도 가서 어려운 분들 얘기도 듣고 손도 잡아주시라”는 등의 입바른 소리에 노 전 대통령은 “대안을 갖고 가야지, 나보고 정치적 쇼를 하란 말입니까”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2006년부터 김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의원들을 청하는 자리에 가지 않았다. 언론 기고문 등으로 “대통령의 충동적인 발언과 준비되지 않은 정치 행보가 문제”라고 노 전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것도 이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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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봉하마을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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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장관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건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라고 한다.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YS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박재호 민주당 의원은 “김 전 장관이 (노 전 대통령 묘비의)너럭바위에 가서 ‘내가 막 대들어도 들어주셨던 대통령께 감사하다’고 말한 걸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최근 저서 『고통에 대하여』에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에 맞서 도전하는 노무현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수 있었다”며 “내게 도전하고 물러서지 말고 다시 도전하라고 죽비처럼 내게 동기를 부여해준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라고 썼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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