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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유리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은 예술가 [랜선 사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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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리 공예가 데일 치훌리의 설치미술 작품이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식물원 정원에 전시돼 있는 모습. 치훌리는 그의 ‘가든 시리즈’ 작품에서 유리로 자연의 식물과 조화를 이루는 인공 식물을 형상화 했다. /사진=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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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사진기행-31] 기이한 형상의 알록달록한 유리 식물. 미국의 세계적인 유리공예가 데일 치훌리 작품을 처음 본 건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식물원에서였다. 야외 정원 한가운데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선 식물이 화려한 색과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식물이 아니라 유리로 만든 공예품이었다. 작가의 상상을 통해 탄생한 인공 식물이었던 것이다. 자연을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독특한 모습으로 밋밋했던 정원에 활기를 더하고 있었다.

치훌리는 특유의 실험 정신으로 가공하기 어려운 유리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고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유리의 매력에 빠져 지난 50여 년간 유리공예 외길을 걸었다. 그는 "녹인 스테인드글라스에 파이프로 바람을 불어넣었는데 액체 유리에 아름다운 방울이 생겼다"며 "그날 밤 유리에 완전히 매료됐다"고 말했다. 이 성형 기법은 치훌리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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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롬버스 프랭클린 파크 온실의 작은 연못에 설치된 유리 식물. /사진 제공=데일 치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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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훌리는 유리로 바구니, 실린더, 마키아(지중해 지역 관목 생물) 등 다양한 사물을 재해석해 만든 공예품부터 유리나 종이에 유리로 그린 그림, 설치미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을 점차 넓혀 왔다. 특히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정원의 일부가 된 가든 시리즈 작품은 자연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어우러진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을 닮아간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치훌리 작품이 유리로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기 있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자연의 힘을 빌려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인공적인 도구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작업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유리를 성형하는 대신 녹은 유리 원판을 막대 위에 올린 채 돌리면서 중력과 원심력을 이용해 유리 자체가 유기적인 방식으로 모양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이는 치훌리 작품에서 비대칭과 불규칙성이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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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글라스하우스’. 오른쪽은 글라스하우스 내부의 모습. 유리로 만든 꽃잎 넝쿨 작품은 치훌리의 유리 조각상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사진 제공=데일 치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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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훌리는 2012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놓은 미술관인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를 열었다. 치훌리가 평생 동안 만든 작품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이다. 가든 앤드 글라스 중심부에는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을 키우기 위한 온실(greenhouse)처럼 꾸며놓은 유리 식물 전시장 '글라스하우스(Glass House)'가 있다. 유리로 된 꽃과 줄기가 벽면을 타고 넝쿨을 이루고 있는 '차가운 온실'인 셈이다. 유리 조각 1340개로 이뤄진 이 꽃잎 넝쿨 작품은 치훌리의 유리 조각상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가로 폭만 3m가 넘는다.

한편 치훌리 작품은 세계 각국 미술관과 식물원, 호텔 등 일상 곳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선 평창 휘닉스파크 호텔에 가면 치훌리의 유리 꽃들이 로비 벽면을 타고 화려하게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 소장품을 제외해도 세계 31개국 미술관에서 치훌리 작품을 전시했을 정도다. 특별 전시회도 수시로 열린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로는 이달 30일까지 열리는 미국 뉴올리언즈 식물원의 '로즈 크리스털 타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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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치훌리의 대표작인 미국 리치먼드의 버지니아 미술관의 ‘페르시안 천장’. 색을 입힌 유리는 모양과 굴곡에 따라 다양하게 빛을 투과시키거나 반사시킨다. /사진 제공=데일 치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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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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