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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영화 ‘소울’의 풍경…놀랍고 믿기 어려운, 그만큼 복잡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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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소울>

‘인사이드 아웃’ 피트 닥터 감독

이승과 저승 세계 다룬 영혼 이야기

밴드 데뷔 앞두고 죽게 된 주인공

꼬마 영혼 ‘22’와 특별한 모험

재즈 선율과 시각적 만족도 높지만

큰 이야기 야심만큼 설정도 복잡

어린 관객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작은 것들 향한 시선과 애정 뚜렷


한겨레

올해 상반기 최대의 화제작으로 기대를 끌어모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에 사랑, 인생, 기쁨, 슬픔 같은 거대 추상명사를 제목으로 붙이는 것은 먹방적 메타포를 빌려 말한다면 음식점에 ‘음식’이라는 간판을 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 즉 내용물에 웬만한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는 선뜻 하기 어려운 선택이라 할 것이다.

‘소울’, 즉 영혼이라는 제목 또한 이런 경우에 속하겠다. 하지만 이 야심찬 제목 선택은 그리 무모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픽사 스튜디오라는 이름, 게다가 <인사이드 아웃>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던 피트 닥터라는 이름이 등장한다면 말이다.

일단, 평소와 달리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해 올리기 전에 이 영화가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들부터 정리해 올려야 할 것 같다.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아무리 그래도, 죽음보단 삶이 낫다. 그리고 ②살아간다면, 세속적 안정보다는 자신의 꿈(또는 삶의 ‘목표’ 또는 ‘목적’)에 충실하자. 그렇지만 ③삶의 ‘목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하여 ④그에(그리고 그것의 성취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건강 및 인생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니, 자, ⑤그 사실을 깨닫고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눈을 돌려보자. 그리고 ⑥그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삶의 매 순간을 즐기자.

여기에 보너스처럼 ⑦우리 동네(커뮤니티, 영화에서는 브루클린)의 소소하고 정감 어린 일상과 그 소중함에 대한 언급까지도 얹어진다.

무어라. 이리도 많은 메시지들이 1시간40분짜리 영화 한 편에? 게다가, 가만, 위에서 ②와 ④는 완전히 정반대의 이야기가 아닌가? 영화 한 편에 정말 이 두 메시지가 공존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놀랍게도.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대체 어떤 이야기이기에? 보자.

아름다운 화면 위로 재즈 선율이


프로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중학교에서 방과 후 재즈 빅밴드 수업을 맡고 있는 파트타임 교사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이 짓 하느라 6년 동안 연기학교를 다녔다니”라고 탄식하는 엔딩크레딧의 광대 아저씨, 바로 그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에게 정규직 채용 소식이 전해진다. 조의 엄마는 “드디어 음악이 진짜 직업이 됐다”며 기뻐하지만, 프로 뮤지션을 꿈꾸는 자신은 시큰둥할 뿐이다.

하지만 곧바로 필생의 기회가 찾아온다. “같이 공연할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을 유명 색소포니스트로부터 오디션을 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니나 시몬을 모델로 한 듯 보이는 이 여성 색소포니스트는 조의 연주를 듣고 곧바로 그의 밴드 합류를 결정하고, 조는 세상 모두를 얻은 것 같은 환희에 젖어 뉴욕 시내 한복판을 걷는다. 그러다가 그는 그만 뚜껑 열린 맨홀 아래로 추락하고, 그의 영혼은 육체에서 빠져나온다.

자, 여기까지가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기 전까지 10여분간의 내용이다. 그렇다. <소울>에서는 타이틀이 뜨기도 전에 주인공이 사망한다.(정확히는 가사상태) 이는 어린이 관객을 일단은 전제로 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픽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초유의 전개다.

하지만 충격과 공포는 없다. 왜냐. 조의 사망은 사망이라기보다는 탄생이다. 영혼 버전으로 변한 조는 포스터/예고편 등에서 익히 보아 아시겠지만, 아기 유령 캐스퍼 풍의 파란색 영혼으로서 작고 귀엽게 디자인돼 있다. 하여 어른들은 물론 어린이 관객들에게도 조의 죽음은 전혀 우울한/어두운/무서운 사건이 아니다.

더구나 그가 검은색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향하게 되는 사후세계 ‘거대한 저편’의 디자인도 그렇거니와, 조가 그곳에서 이탈한 뒤 옮겨가게 되는 생전세계 ‘유(you) 세미나’의 디자인도 죽음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뭔가를 떠올리게 한다. ‘유 세미나’의 관리자들인 ‘제리’들은, 피카소의 ‘빛 드로잉’을 필두로 클레, 마티스, 칸딘스키 같은 화가들의 선 드로잉을 떠올리게 하는, 매우 미술적인 디자인의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부드러운 윤곽선과 파스텔톤 색채를 유니폼처럼 입고 있는바, 그것은 다분히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의 시각적 즐거움은 충분하다.

게다가 재즈가 곁들여져 있다. 물론 이 영화가 <피너츠>나 <핑크팬더> 같은 애니메이션들만큼 본격적으로 재즈를 음악에 채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즈 뮤지션이 주인공이고, 이야기의 중심에 그의 ‘필생의 공연’이 포진되어 있는 만큼 재즈는 <소울>을 소울풀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버번에 푹 담갔다가 건진 것 같은 호박색 톤의 가을 뉴욕(그야말로 ‘Autumn in New York’), 그중에서도 브루클린의 가을 풍경과 겹치면서 한층 더 푸근한 정감을 안긴다. 그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좋다.

거기에 덤처럼 브루클린의 양복점(조의 어머니가 경영하는 가게다)과 이발소 같은 ‘동네 가게’와 그 가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주는 정감 또한 얹어져 있다. 특히 이발소 장면은 <스모크>(웨인 왕/폴 오스터 감독)의 담배가게 정경을 연상시키는, 작지만 강한 사랑스러움을 맛보게 하는 대목이다. 아, 그리고 물론, 유서 깊은 명문 재즈클럽(‘하프노트’가 그 이름)의 멋스러움도 뺄 수 없겠고 등등등, 시각적인 부분에서의 참신함과 정성과 기술이야 픽사라는 이름에서 예상되는 그 수준 그대로다.

오히려 어린이 관객들은 물론 어른 관객들에게도 부담이 될 대목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품은 야심이다. 주인공 조와 그의 파트너가 되는 골칫덩어리 영혼 ‘22’(티나 페이)는 생전세계와 이승=지구=현실=뉴욕을 여러 차례 오간다. 그러면서 조는 어지간히도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22를 설득해, 맨홀 추락 사고로 무산될 뻔했던 필생의 공연을 실현하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이 과정에서 돌발적인 전개 하나가 개입된다. 조와 22의 영혼이 중대한 실수로 서로 엉뚱한 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몸 바뀌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개그 포인트라 할 만하고, 특히나 고양이를 키우는 관객이라면 이 몸개그를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칼날이어서 안 그래도 복잡한 이 영화의 설정 및 전개에 복잡함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이 ‘몸 바뀌기’ 상태를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알리기 위해 몸이 아닌 영혼에 맞춰 목소리 녹음을 하는 선택을 하고, 하여, 남성 캐릭터가 여성의 목소리로 얘기하는 또 다른 초유의 설정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또한 극 중간에 극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가, 다시 목소리가 뒤바뀐 상태로 변화하는 양상을 혼돈스럽게 보여준다.

사실 그 이전, 조가 생전세계로 처음 떨어지면서부터 관객 앞에는 이해해야 하는 정보들이 한가득 던져진다. <소울>의 영혼계는 앞서 말했듯 크게 사후세계(‘거대한 저편’)와 생전세계(‘유 세미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생전세계는 또다시 탄생 전 영혼들이 노니는 메인구역, 그들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 모든 것을 체험하는 ‘모든 것들의 전당’, 살아 있지만 무아지경에 이른 사람들의 영혼이 노니는 ‘신비주의자 구역’ 등등으로 나뉘어 있다. 주인공들은 복잡한 동선으로 생전세계-이승-무아세계를 오가며 서로 잃어버린 길을 찾아준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이야기 흐름에 익숙한 관객들은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특히나 어린이 관객들은 더욱.

집중력과 열린 태도 갖고 보기를


이런 복잡다단한 이야기 전개를 지탱해주는 것은 작은 것들에 대한 관찰력과 애정, 그리고 ‘메시지’들이다. 물론 극과 극을 오가는 우여곡절 끝에 <소울>이 도달하는 ‘거대한 목표와 그의 성취가 아닌, 일상의 순간순간 그 자체가 인생이다’라는 메시지는 지금 현실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통찰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울림은 그리 강하지 않다. 지금 현실세계의 팍팍함뿐 아니라 영화 자체의 설득력으로 인해서도 말이다. 더구나 영화 자체가 드러내는 예술적 야심과 그런 예술적 야심들이 밀집해 있는 픽사라는 회사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이 영화의 어휘를 빌리면,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재징’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재즈 뮤지션이 주인공인 영화이니 재즈의 즉흥/돌발적 전개를 채용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스윙이나 비밥 정도가 아니라 거의 프리재즈 수준의 난해함을 수반한다. 이 역시 마음을 열고 본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겠지만, 거기엔 상당한 집중력과 유연함이 요구된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한 편에서 짜릿한 코미디부터 삶에 대한 통찰까지를 아우르는 모든 것이 성취되길 기대하다니? 맞다. 이런 기대는 분명 픽사와 피트 닥터라는 걸출한 이야기꾼/예술가가 이루어 놓은 업적이자 업보겠다. 그리고 그들이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 계속해서 ‘거대한 저편’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픽사 덕분에 한껏 눈이 높아진 우리들이 끝내 벗어나지 못할 업보일 것이다.



▶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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