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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자수첩] 100년된 아이스크림도 문제없다는 식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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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서울의 한 허름한 동네 구멍가게. 냉동고를 열자 한기(寒氣)와 함께 2017년에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었다. 성에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꺼내다 보니 손톱에 성에가 끼고 손끝이 빨개져 쓰라렸다. 당시 서울 최저 기온은 영하였다.

손만 쓰린 게 아니었다. 마음도 쓰라렸다. 어린 아이들이 제조일자가 한참이나 지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가 들어선 동네 상가나 대학가 앞은 작년 말이나 올해 초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을 주로 팔지만, 재개발 동네나 노년층이 많은 곳은 유독 오래된 아이스크림이 많다.

2017년산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어봤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녹아 있었고 초콜릿과 땅콩 가루는 뭉개져 있었다. 콘 부분도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불어 있었다. 바삭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불량 제품 같은데 교환이나 환불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국내에서 4년된 아이스크림을 파는 건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품위생법상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 대신 제조일자만 표시하면 된다. 제조 과정에서 멸균하고 영하 18도에서 냉동 보관하면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냉동고를 여닫는 과정에서 아이스크림이 녹았다 얼었다 반복하다 보면 유해균이 증식할 수도 있는데,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품질·안전 검사를 한다" "비용과 편익을 분석하니 안전에 문제없고 유통기한 설정이 필요가 없었다" "냉동식품은 보관 온도를 준수하면 부패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소비자 기만이라는 지적에는 "보관 온도를 점검하며 제조일자를 허위로 표시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식중독 등 문제가 생기면 뒤늦게 제품을 회수하고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것인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선진국은 아이스크림 유통기한을 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아이스크림에 유통 기한을 표시할 것을 규정하고 개별 제조사가 제품 특성에 따라 구체적인 유통기한을 설정한다. 반면, 우리는 유통기한 표시 규정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오래된 아이스크림을 100% 회수하지 않고 계속 유통하며 재고 부담을 덜고 있다. 그러는 사이 100년 된 아이스크림을 어린 아이들이 먹게될 수도 있다.

냉동식품이라서 유통기한을 표시할 필요가 없다는 논거는 말이 안된다. 아이스크림도 유통기한이 필요하다.

홍다영 기자(hd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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