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봉달호의 오늘도, 편의점] “축하합니다, 음성입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검체 접수’ 현수막이 걸린 천막 앞에는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1미터씩 거리를 둔 대열 꽁무니에 엉거주춤 자리를 정하고 섰다. 주말 내내 고열과 오한, 두통에 시달렸다. 지난 며칠 나의 행적을 수십 번이나 ‘반복 재생’해보았다. 집-가게-집-가게…… 또 어딜 갔더라? 끙끙 앓으면서도 코로나19 감염 증상을 휴대폰 화면이 닳도록 검색했다. 양성 판정 받으면 어떡하나. 편의점은? 직원들은? 손님은? 가족은? 여러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을까, 두근두근 착잡했다. 마스크 사이로 허연 입김이 새 나왔다. 내 몸은 그렇게 ‘접수’를 기다렸다.

세상 편의점은 다 같아 보이지만, 그러면서 다 다르다. 주택가, 직장가, 유흥가, 학원가, 관광지…… 상권에 따라 다르고, 같은 편의점도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 상품 구성이 달라지고, 매출 그래프가 오르내린다.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는 회사 빌딩 안에 있는 우리 편의점을 늘 부러워했다. 손님들 매너 좋지, 취객 없지, 심야 영업 안 하지, 그러면서 매출은 나쁘지 않지. 게다가 우리 편의점은 공휴일과 일요일에 쉬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야, 임대료랑 관리비를 생각해봐” 하면서 남의 속도 모른다는 듯 입을 삐죽였지만 내심 좀 우쭐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실내(屋內) 이동이 제한되면서 우리 편의점은 마이너스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식당을 하는 친구는 편의점 하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배달 앱에 평점 테러 한번 당하면 하늘이 샛노랗다”며, 편의점은 그럴 일 없어 좋겠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편의점 하는 친구는 헬스장과 필라테스 운영하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코치님’ ‘선생님’ 소리 들으며 타인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우아한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 헬스장 운영하는 친구는 야간 배달 분식점 운영하는 친구를 안쓰러워했다. 그거 벌어 남는 것이 좀 있느냐, 그렇게 낮밤 바꿔 일하다가 몸 축난다, 걱정하곤 했다. 코로나19는 이런 모든 부러움과 걱정, 질시의 삼각관계를 뒤바꿔 놓았다.

아직(!) 직장인인 선배는 일찍 자영업자가 된 나를 부러워했다. 이러다 승진에 밀려 갑자기 희망 퇴직이라도 하게 되면 살길이 막막하다며 불콰하게 취기 오를 때마다 “어디 편의점 자리 좋은데 없느냐” 농반진반 투정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형, 또박또박 월급 나오는 그 자리가 좋은 줄 아세요” 하면서도, 속으론 또 ‘어이구, 저 나이에 여태 부장이라니, 힘드시겠다’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푸념과 위로의 대칭 관계 역시 역전시켜 놓았다. 선배는 요즘 “힘들지?” 위로 문자를 보내고, 나는 “고마워요” 답장을 보낸다.

직장 생활을 하던 때, 좀 싫어한 임원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사람이, 아랫사람들 들들 볶아대며 성과와 출세에 집착하던 양반이 그저 한 사람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듬직한 풍채와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좋아 ‘나도 저 나이에 저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 했었는데, 가득한 흰머리에 기운 빠진 목소리를 듣고는 울컥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사람 일은 10년 뒤를 모르는 법이로구나!

플러스가 언제 마이너스 되고 마이너스가 불쑥 플러스 될지 모르는 인생이다. 그래서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며 “오늘 잠깐 잘나간다고 어깨에 힘주면서 지나치게 으스댈 필요 없고, 뭐가 좀 안 풀린다고 기죽어 고개 떨굴 이유 또한 없다”고 내가 쓴 책에 스스로 말했는데, 내가 쓴 모든 글은 나를 향한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 역시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자영업자, 직장인, 주식시장이 그렇고, 권력 조금 가졌다고 천방지축 젠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건방 떨지 말고, 낙심하지 말지니.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문진표를 내밀었다. 체온 38도, 오한, 근육통에 체크하자 걱정하는 -아니 놀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옆 천막으로 건너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긴 면봉을 들고 있는 검사원께서 콧속으로 그것을 쑥 밀어 넣었다. 예상치 못한 방식에 섬뜩 놀라 캑캑거렸다. “결과 나올 때까지 가급적 자가 격리하시고요, 증상이 심해지면….” 콜록콜록 기침이 나와 뒷말은 듣지 못했다. 기침 소리에 주위 사람이 흠칫 놀라 물러섰다. 비실비실 집에 들어와 자발적인 격리에 들어갔다. 미몽에 식은땀 흘리면서도 가게, 직원, 손님, 식구…… 자꾸 그런 것만 중얼거렸다. 생로병사 앞엔 누구나 평등해진다.

열이 내렸을 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보건소입니다. 귀하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에 기뻐하는 것도 참 흔치 않은 일이리라. 편의점 직원들 단톡방에 이 소식을 알렸다. 축하해요, 그럴 줄 알았어요, 다행입니다, 하는 흥겨움 뒤에 이런 말이 이어졌다. “자, 얼른 나와 일하셔야죠.” 쳇, 매정한 녀석들!

[봉달호 작가·'매일 갑니다, 편의점'저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