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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폭설을 장애물로 알고 스톱... 無人 첨단 경전철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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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폭설에 경전철도 스톱

폭설이 내린 지난 6일 오후, 경기 용인시 용인경전철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강남대역 인근 경전철 차량이 역사 출입문에 제대로 정차하지 못하고 앞뒤로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는 ‘오버런(overrun)’ 현상이 발생한 것. 눈길에 야외 철로가 미끄러워지면서 정차 위치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이다. 용인시는 1시간 45분 동안 전 차선의 운행을 멈춘 뒤, 폭설이 잦아든 밤부터 운영을 재개했다.

같은 날, 의정부 경전철도 한 시간 넘게 운영을 멈췄다. 역사에 설치된 장애물 감지 센서가 흩날리는 눈을 이물질로 잘못 감지해 운행 중이던 모든 차량을 멈춰 세웠다. 두 경전철은 모두 기관사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첨단 시스템을 장착했다'는 두 무인 경전철은 왜 한파에 멈춰 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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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1일, 무인으로 운영되는 김포도시철도가 종합 제어 장치 고장으로 멈춰서면서 승객 600여 명이 1시간가량 갇혔다. 이들은 대피로를 통해 인근 역으로 대피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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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 없어 빠른 대처 못해”

박경철 경기연구원 교통물류연구실 연구위원은 “무인 경전철이라 해서 한파나 폭설에 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올해 폭설로 상·하행선까지 전 차선이 멈춰 선 것은 무인 경전철이 유일했다. 박 위원은 그 이유를 “자동화 시스템에 100%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관사가 열차에 탑승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 빠른 조치가 어려운 겁니다.”

중앙 관제실에서 제어되는 상당수 경전철은 한 량에만 문제가 생겨도 모든 열차가 멈춰버린다. 의정부 경전철의 경우, 실제 열차 운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시스템이 모든 열차를 자동으로 멈췄다. 이 때문에 역사에 대기하던 안전요원이 수동 운전으로 전환해 인근 역에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강승욱 가톨릭상지대 철도운전시스템과 교수는 “일부 노선의 경우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혹한기나 혹서기 등 이상 기후에서 열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2012년 개통한 의정부 경전철은 그해 겨울 한파로 여섯 번이나 작동이 멈췄다. 의정부시는 2013년 120여억 원을 들여 선로에 동파 방지용 열선을 설치했지만, 이후에도 열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여러 번 고장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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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폭설로 운행이 중단된 용인 경전철 모습.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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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노선, ‘고장선’ 오명도

무인 경전철은 폭설이 아닌 다른 이유로도 자주 멈춘다. 원인도 장비 결함, 시스템 문제, 단전 등 다양하다. 지난 5일에는 경기도 김포시 김포 경전철이 풍무역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장애물 감지 센서가 이물질을 장애물로 잘못 감지하면서 긴급 제동 장치를 작동한 것. 지난해 12월 21일 퇴근길, 종합 제어 장치 고장으로 열차가 멈춰 서면서 승객 600여 명이 1시간가량 갇혀 있다 비상 대피한 지 보름 만이었다.

2017년 개통한 우이신설선은 개통 6개월 만에 세 번이나 운영이 중단되면서 ‘고장선’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부산김해경전철(2011년 개통)도 개통 1년 동안 열 차례 고장을 일으켰다.

강승욱 교수는 “무인 경전철 운행 시스템이 국내에 도입된 지 10여년밖에 되지 않은 과도기인 만큼 고장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면서도 “시스템이 안정기에 오를 때까지는 혹한기·혹서기에 안전요원을 탑승시키는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자체가 경전철 운영 권한을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하는 민간 위탁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손의영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민간 기업이 운영 권한을 갖고 있는 대다수 무인 경전철의 경우 지자체가 안전요원을 강제 배치할 권한이 없다”면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영사에 확실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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