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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만의 코로나 압승 비결? 시민 지적 빨리 개선한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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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대만 방역 세계적으로 성공시킨 40세 오드리 탕 디지털 장관



지난해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코로나 전쟁을 치렀다. 대만 인구는 한국의 절반 수준(2400만)인데, 대만의 누적 확진자·사망자 수(842명·7명)는 한국의 1% 수준이다(1월 14일 기준). 대만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주요국들 가운데 1위에 오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코로나에 압승한 ‘T(대만식) 방역’의 중심에 오드리 탕(40) 대만 디지털 장관(디지털 총괄 정무위원)이 있다. 그는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마스크 실명 배급제·마스크 실시간 재고 앱을 정착시켰고, 온·오프라인 소통으로 전 국민의 방역 참여를 이끌어냈다. 마스크 실시간 재고 앱은 약국 위치, 보유 수량, 영업 시간, 주소, 전화번호 등 세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앱이다. 방역 효과가 커 우리나라에도 도입됐다.

탕 장관은 2016년 취임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인물이기도 하다. 최연소(당시 35세)·최저 학력(중학교 중퇴) 장관 기록을 세운 데다 해커 출신 트랜스젠더였기 때문이다. IQ 180인 그는 여덟 살 때 컴퓨터를 독학했고, 열두 살엔 프로그래밍 언어 ‘펄’을 깨우쳤다. 천편일률적인 교과 과정을 거부해 14세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16세에 첫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19세에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검색엔진 회사를 창업했고, 애플·벤큐 등 유명 IT 기업에서 고문을 맡으며 주목받았다. 스물네 살엔 생애 가장 큰 도전을 한다. 성(性) 전환수술을 받고 여성이 됐다. 탕펑은 행정원 인사 자료 성별란에는 ‘무(無)’라고 적었다.

그는 최근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에서 민주적인 국가는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이러스와 싸우고, 권위적인 국가는 더 권위적인 방식으로 싸운다”고 말했다.

-마스크 실시간 재고 앱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가 직접 개발·배포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만일 정부가 주도해 만들었다면 딱 한 종류의 앱만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한발 물러서서 시민들이 직접 개발하도록 독려하고 지원한 덕분에 140종의 마스크 앱이 출시됐다. 구글·라인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인식 앱, 마스크 공급 변화를 사전 예측하는 앱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한 배경이다.”

-정부가 게을렀던 것은 아닐까.

“권력을 분산하는 방식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시민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데 막대한 정치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민간 마스크 재고 앱의 서버 비용 지원이나 실시간 약국 정보 공개 등은 세심하고 부지런한 정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나는 피그말리온 효과(누군가에 대한 믿음·기대·예측이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를 믿는다. 정부가 시민을 신뢰하면, 시민들은 좋은 아이디어로 보답한다. 반대로 정부가 시민을 못 믿고 통제하기 급급하면 불신이 돌아온다.”

-정부와 국민 간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서로에게 응답하는 속도였다. 특히 (정부는) 시민들이 지적한 잘못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공개한 뒤 빠르게 정책을 수정함으로써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222 원칙’이 ‘빠른 응답’의 대표적 사례인 것 같다.

“대만 정부는 코로나 괴소문이 돌 때 무조건 ‘2시간 안에, 2장의 그림을, 200자 미만의 텍스트를 곁들여’ 배포한다. 시민들이 스마트폰에서 보고 웃을 수 있는 ‘짤’(인터넷에서 도는 자투리 이미지를 뜻하는 속어)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다. ‘검열이 아닌 소통’, ‘루머가 아닌 유머’가 대만의 코로나 대응 원칙이다. 민주적인 방식이 강압적인 방식보다 더 효과적이다.”

-대만도 도시 봉쇄를 고려한 적이 있나.

“일부 지방 정부는 모의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전염병 지휘센터는 통계 자료에 근거해 인구의 4분의 3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씻는다면 코로나 재생산지수(R)가 1보다 작을 것이고, 절대 지역 감염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봉쇄 대신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정착시키는 데 집중했다.”

-대만 시민들이 정부 지침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이러스 확산 초기 대만 전염병 지휘센터는 매일 오후 2시에 생중계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피하지 않고 일일이 답했다. 집에서 시청하는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식의 기자회견은 지역 감염이 ‘제로’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됐고, 이후엔 매주 한 번씩 개최했다.”

-코로나와 싸우는 한국의 정부 관료들에게 조언하고 싶다면.

“시민들 생각을 경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 집무실을 개방해 누구든 찾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한다. 내가 내건 유일한 조건은 대화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이다. 누구든 내 업무를 들여다보고 지적하고, 조언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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