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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자기관리가 명약” 당뇨 가족력 극복한 ‘걷기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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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베스트 닥터] 이은정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부계혈통 당뇨병 많아 스스로 조심

동아일보

이은정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 가족력이 있는, 당뇨병 전문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급적 매일 30분 이상 걷는다는 이 교수는 당뇨병 환자나 당뇨병이 걱정되는 이들에게 꾸준히 운동할 것을 당부했다. 강북삼성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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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특정 질병에 걸렸을 경우 그 자식이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은 높아진다. 이른바 ‘가족력’ 때문이다. 그 질병에 정통한 의사라 하더라도 가족력을 완벽하게 피하기는 어렵다. 이은정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48)의 할아버지는 대장암에 당뇨병이 겹쳐 돌아가셨다. 이 교수 아버지 다섯 남매 중 3명이 당뇨병에 걸렸다. 현재 50대 초반인 사촌오빠도 10년 전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당뇨병 분야에서 주목받는 이 교수에게도 이 병은 언제 걸릴지 모르는 질병이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한다. 당화혈색소 수치를 매년 2회씩 꾸준히 체크한다.》

당화혈색소는 적혈구의 혈색소가 어느 정도 ‘당화(糖化)’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5.6 이하가 정상이며 5.7∼6.4는 당뇨병 전 단계, 6.5 이상은 당뇨병 단계로 본다. 이 교수는 5.3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자”

이 교수는 ‘걷기 마니아’다.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어쩌다 걷기 운동을 못 한 날은 몸 컨디션도 엉망이 된다. 걷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2007년이었다. 이 교수는 약간의 우울 증세를 느끼고 있었다. 우울한 기분도 떨치고, 당뇨병에도 대비할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찾아낸 것이 걷기였다. 처음에는 출근하기 전에 공원 주변을 걸었다. 병원에 도착하면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약속이 잡히면 30분 먼저 나가 걸었다. 일주일에 최소한 5일은 하루 30분 이상 걸었다. 조금 덜 걸었다 싶으면 집에서 실내용 자전거를 탔다.

미국 보스턴에서 연수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편도 40분 걸리는 학교까지 매일 걸었다. 허벅지까지 눈이 쌓인 날에도 걸었다. 요즘도 이 교수는 매일 새벽 집 주변 공원에 가 최소한 3km를 걷거나 뛴다. 환자들에게도 걷기를 적극 권한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꾸준히 걷는 일 자체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2, 3개월만 계속하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말했다.

○환자에게 엄한 의사

이 교수는 환자들에게 ‘엄한 의사’로 소문 나 있다. 환자를 혼내기도 한다. 특히 당화혈색소 같은 지표가 악화할 때 그렇다. 당뇨병 환자가 지켜야 할 사항이 적힌 종이를 주며 “벽에 붙인 후 이대로 하라”고 훈계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엄한 걸까.

“당뇨병에 관한 한 명의도 없고 명약도 없습니다. 환자가 자기관리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치료 결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니 자기관리를 못하는 환자는 따끔하게 잡아줘야 합니다.”

매번 혼만 내지는 않는다. 위로가 필요한 환자들도 있다. 그럴 때는 환자 편에서 이해해 주는 게 중요하다. 2010년경 당시 20대 중반이던 여성 환자 A 씨가 그 경우다. A 씨는 1형 당뇨병 환자였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 1형 당뇨병은 난치병에 속한다. 매일 4회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며 먹어선 안 되는 음식도 많다. 10대와 20대 환자들은 친구와 어울리면서 떡볶이나 피자 같은 것도 먹을 수 없다.

A 씨는 이 병 때문에 파혼을 당했다. 그 전에 A 씨를 진료했던 의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 말이 A 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 교수는 A 씨를 위로하며 “본인의 의지만 강하면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를 악물고 운동했고, 식단을 조절했다. 얼마 후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다시 생긴 출산의 고민. 이번에도 이 교수는 의지를 강조했다. A 씨는 독하게 당뇨병과 싸웠다. 그 결과 신장 합병증도 거의 사라지고 당화혈색소 또한 8점대에서 5점대로 떨어졌다. 아이도 셋이나 출산했다. 지금도 A 씨는 진료일이 되면 웃는 얼굴로 이 교수를 찾아온다.

○“연구와 논문 쓰기는 가장 즐거운 일”

이 교수는 현재까지 250여 편의 논문을 썼다. 이 중 150여 편에 주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교수는 “논문은 하나의 작은 책이다. 그것을 완성할 때 큰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공의 시절에도 4편의 논문을 썼다. 당뇨병은 갖가지 합병증을 유발한다. 이 교수는 당뇨병과 합병증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심장동맥(관상동맥)의 내벽에 낀 혈전 속 칼슘 농도를 측정해 심혈관계 질환 위험도를 측정하는 식이다.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추적한 결과 이 ‘칼슘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위험도 높았다.

이 교수는 2009년과 2010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1500만 명을 △당뇨 △당뇨 전 단계 △비(非)당뇨 등 세 그룹으로 나눠 2016년까지 추적하기도 했다. 그 결과 당뇨 전 단계일 때 파킨슨병 발병 확률은 4%로 나타났다. 이미 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의 경우 5년 이내 파킨슨병이 생길 확률은 19%, 5년 이후에 생길 확률은 60%였다.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겐 하루에 수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은 큰 불편이자 고통이다. 인슐린 펌프나 패치 형태의 도구가 이미 나와 있지만 몸 혈당치를 완벽하게 측정해 자동적으로 인슐린을 투입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교수는 이 기술을 국내 바이오기업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향후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 당뇨병 예방 위한 조언
“과일 대신 채소… 매일 30분 이상 연속적-반복적 운동을”이은정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당뇨병 환자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말이 있다. “밀가루, 빵, 쌀, 떡, 감자, 고구마, 국수, 과일을 먹지 말고 만약 먹더라도 최소한으로만 먹어라.”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는 당뇨병 환자의 적(敵)이다. 하지만 과일까지 먹지 말라는 것은 좀 과한 게 아닐까. 이 교수는 “과일 대신 채소를 먹으란 뜻이다. 식사 대용으로 과일을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양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식사 대용으로 아침에 바나나 한 개, 점심에 사과 한 개를 먹을 뿐 그 외에는 일절 과일에 손대지 않는다.

이 교수는 흰 쌀밥도 먹지 말라고 한다. 현미로 지은 밥이 좋다는 것이다. 다만 현미밥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흰쌀을 추가하되 그 비율이 3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가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게 운동이다. 매주 등산을 가거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수영을 하는 식이 아니다. 가급적 매일 30분 이상 하라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연속적이면서 반복적으로 운동을 해야 당뇨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걷기를 추천한다. 다만 노인,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 혹은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실내용 자전거를 이용할 것을 권했다. 지겹더라도 처음에는 10∼15분을 채우도록 한다. 이후 점차 시간을 늘려 최종 30분 이상 자전거를 타는 게 좋다.

특히 폐경을 맞은 여성에게는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호르몬이 당뇨병과 비만을 어느 정도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는데 이 호르몬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급적 폐경 이전부터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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