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김광일의 입] 사면! 박 전 대통령의 선택 3가지

댓글 8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1월14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았다. 징역 20년,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 원 확정이다. 국정농단, 그리고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등이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불거져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이어졌고 실로 4년3개월 만에 사법 판단까지 끝났다. 앞서 새누리당 공천개입 형량 2년까지 합하면 모두 22년 형이 확정됐다. 대법 최종 판결대로 복역을 할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은 87세가 되는 2039년 만기 출소하게 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95세가 되는 2036년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어젯밤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잠든 사람은 누구이고, 다리 오그리고 악몽을 꾸었을 사람은 누구일까. 역사적 사건들을 돌아보면 단 한 순간에 ‘쫓는 사람’과 ‘쫓기는 사람’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제 공은 문재인 대통령 쪽으로 넘어갔다. 구치소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히려 깊은 잠을 잤을 수 있고,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잠 못 이루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수 있다. 왜냐하면 ‘박근혜 사면론’이 다시 불붙었고, 문 대통령은 쉽지 않은 선택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1면 톱 ‘사면론 재점화’, 한국일보 1면 톱 ‘사면론 다시 불붙다’, 중앙일보 1면 톱 ‘사면에 침묵한 청와대’, 경향신문 1면 톱 ‘문 대통령의 고민’ 등이 그걸 말해준다.

이제 두 전직 대통령의 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사면법에 따라 특별 사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사법부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이러저러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 더구나 다음 주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기자들은 물을 수밖에 없고,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법원의 사법적 판단으로 국정농단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농단이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정치 보복이 일단락 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문 정권의 입장은 아직 첨예하게 맞서 있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마자 사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통령으로부터 별도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

이런 반응은 무슨 뜻일까. 그렇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민이 깊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발언과 그 변화 추이가 국민들에겐 매우 흥미롭게 비칠 것이다. 이낙연 대표는 새해 첫날 이렇게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문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 드리겠다.” 그 말이 나온 뒤에 강성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반발이 있었고, 민주당의 공식 입장도 바뀌었다. 이렇게 변했다.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의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제 이낙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

그렇다. 이낙연 대표와 민주당 분위기를 요약하자면 새해 벽두엔 ‘적절 시기 사면 건의’였는데, 그 뒤에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 반성’으로 변했고, 어제 ‘진솔한 사과’로 다시 바뀐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전제 조건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가, 다시 ‘공감대’, ‘반성’, ‘진솔 사과’ 같은 ‘사면의 허들’을 만들어 간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면에 반대한다는 뜻이고,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사면에 찬성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이낙연 대표 입장에서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내놓았다가 야권과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후보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그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려는 듯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말했다. “형벌을 가할 나쁜 일을 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본인 역시 숱한 논란과 거짓 발언 의혹으로 대법원 재판까지 받았던 사람이 할 소리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어쨌든 민주당의 강성 진영 분위기를 따라가는 순발력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사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 눈높이에서 해야 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그렇다. 국민 입장, 국민 눈높이, 이런 말들은 국민 공감대란 핑계와 비슷하게 사면에 부정적이란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윤희석 대변인은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만 말했고, 김종인 비대위 위원장은 “대통령이 결단할 문제”라고만 말했다. 하긴 김 위원장은 불과 한 달 전인 작년 12월15일 두 전직 대통령이 사법 처리 된 것에 대해 ‘사죄·반성’이란 표현을 무려 10차례나 반복하며 정식으로 사과까지 한 뒤이기 때문에 사면을 본격 거론하는 것이 어색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선택 카드는 없을까. 그렇지 않다. 박 전 대통령도 이런 저런 결단을 내릴 수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서 어떤 측근들에게도 면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유영하 변호사만 접견하고 있다. 어제 대법원 판결이 있은 직후 유 변호사를 만났고, 사면과 관련한 입장도 곧 나올 것처럼 보도됐다. 이 방송이 나갈 즈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장이 공개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희가 미리 생각하는 박 전 대통령의 선택 카드는 다음 몇 가지다.

첫째는 민주당이 전제 조건처럼 말했던 것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것이다. 좋지 않은 건강으로 추운 겨울을 구치소에서 보내고 있는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하루라도, 아니 반나절이라도 어서 밖으로 나가고 싶을 것이다. 만약 문 대통령의 뜻이 진솔한 사과를 전제 조건으로 한 사면이라면 받아들지 못할 것도 없다, 사과 하겠다, 그런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면서 법적 방어 자체를 거부해왔다. 법정에 출두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2017년10월 마지막 법정 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 그 이후 재판을 보이콧했으며 우리는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런 입장에 계속되고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은 사면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래야 일관성이 있다.

혹은 박 전 대통령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무(無)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탄핵, 그리고 형사 재판, 마지막 사면 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정치 보복’이고 ‘정치 놀음’일 뿐이라고 본다면 모든 것을 초월해서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고민이 깊어가는 것이다. 일단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불과 석 달 앞둔 시점이라는 것, 그리고 강성 친문 진영을 주축으로 한 지지 세력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따라서 지금은 사면에 관한 결정을 그냥 어물쩍 넘기고 다음 기회를 엿볼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대통령 사면은 3·1절에 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박근혜·이명박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올 8월에 광복절 사면, 혹은 성탄절 즈음에 하는 연말 사면을 제2의 선택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했던 것처럼 문 대통령도 차기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인 내년 3월 중순에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할 수도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 대통령이 ‘국회와 헌재에서 탄핵된 사람을 행정부 수장이 사면할 수는 없다’면서 은근슬쩍 발을 빼려고 할까요. 아니면 서울시장 선거 며칠 전까지 계속해서 시기를 저울질하면서 강성 친문 진영의 눈치를 살필까요. 아니면 오랜만에 문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위한 통치권적 차원에서 이달 안에 결단을 내릴까요. 한겨레신문 사설은 “박근혜 형 확정, 국민 동의 없는 사면 안 된다”고 했고, 동아일보 사설은 “통합 포용 위해 결단하라”고 했고, 중앙일보 사설은 “문 대통령이 명확한 입장을 내라”고 촉구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여러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광일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