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일하고 적게 버는 ‘알바 인생’
작년 596만명, 37년 만에 최대
취업자 주당 평균 39시간 일해
“정부, 단기 고용 정책에만 의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안 그래도 위태롭던 한국 고용시장을 무너뜨리고 있다.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만 문제가 아니다. 짧게 일하고 적은 돈을 받는 ‘알바 인생’이 급격히 늘었다.
최대로 늘어난 구직 단념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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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이 36시간 미만인 취업자 수는 595만6000명을 기록했다. 198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1년 사이 55만4000명(10.3%) 급증했다.
최대로 늘어난 ‘쉬었음’ 인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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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하루 평균 근무 시간(주 5일 기준)이 서너 시간도 안 되는 주당 1~17시간 취업자는 190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8만1000명(4.4%) 늘었다. 주당 18~35시간 일하는 사람은 47만3000명(13.2%) 증가한 405만5000명을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주당 취업 시간이 36시간 이상인 근로자 수는 2011만2000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120만3000명(5.6%) 감소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절정이었던 1998년(-165만명) 이후 22년 만에 가장 많이 줄었다.
주당 36시간은 보통 전일제와 시간제 근무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루 평균 7~8시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척도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줄고 그 자리는 단기 일자리가 채웠다는 의미다.
취업 시간대별 취업자 증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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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전체 근로시간에도 영향을 줬다. 지난해 취업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39.0시간이었다.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83년 이래 처음 40시간 아래로 내려왔다. 한국인의 장시간 근로가 문제인 상황이지만 사실 반길 일은 아니다. ‘건강하지 못한’ 근로시간 단축이기 때문이다. 단기 근로자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덕분이다. 정부가 공급한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 소득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정규직→임시직→단기 근로→실직’의 경로를 밟을 대기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경고가 된다.
주당 평균 취업 시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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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36시간 미만 근로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건 고용의 질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며, 지금 추세라면 올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100만 공공 일자리를 직접 공급하겠다며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는 단기 고용 정책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활발하게 사회 진출을 해야 할 사람들의 ‘일 할 의욕’마저 꺾이고 있다. 지난해 ‘쉬었음’ 인구와 ‘구직단념자’가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전년보다 28만2000명(13.5%) 늘어난 237만4000명으로 조사됐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래 최대 규모이자, 최대 증가 폭이다. 쉬었음 인구는 일할 능력이 있고 큰 병을 앓는 것도 아니지만, 취업준비·가사·육아 등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그냥 쉰 사람을 뜻한다.
구직단념자도 전년 대비 7만2000명 늘어난 60만5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개편한 2014년이래 최대치를 찍었다. 역시 증가 폭도 가장 크다. 구직단념자는 취업을 원하고 취업 가능성이 있지만, 노동시장과 관련된 이유로 지난 1년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을 가르킨다.
이에 따라 둘을 합친 인구는 297만9000명으로 300만명에 육박했다. 2016년 207만6000명에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해까지 총 90만3000명이 늘었다. 이는 만성적인 ‘취업 포기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들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일종의 ‘그림자 실업’인 셈이다. 능력이 있는 경제주체가 일하지 않으면 그만큼 우리 경제에는 손해다.
특히 가장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젊은층이다. 신규 채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바로 아르바이트, 임시 일자리로 직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9.0%로 전체 평균 실업률(4.0%)의 배가 넘었다. 공식 실업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사실상 실업자까지 더한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지난해 12월 기준 26.0%에 이른다. 1년 전보다 5.2%포인트 급등했다. 4명 중 한 명꼴로 사실상 실업 상태란 뜻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층의 취업기회 상실로 사회진출이 늦어지면 빈부 격차뿐만 아니라 결혼·출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오는 만큼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기업 고용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세종=조현숙·손해용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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