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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에 약물 먹인 할리우드…`오즈의 마법사` 주디의 쓸쓸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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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66] 주디 갈런드(1922~1969·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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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할리우드

할리우드에 1930년대는 황금시대였다. 유성영화 시대가 열리면서 영화산업은 빠르게 발전했다. 이 시기에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착됐다. 영화사는 직원을 채용하듯 감독, 배우, 스태프와 전속계약을 맺고 그들을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 밀어넣었다. 스튜디오는 영화를 찍어내는 공장이었다. 작가는 쉼 없이 이야기를 써댔고, 세트장 곳곳에선 동시에 여러 영화가 제작됐다. 영화사는 제작뿐만 아니라 배급, 상영까지 주물렀다. 수직적이고 효율적인 제작 구조 덕에 영화사는 자동차 만들듯 영화를 대량생산했다.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 당시에도 있었지만, 어쨌든 미국 영화산업은 이 시기 급팽창했다. 할리우드는 전 세계 영화의 중심지가 됐다.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하며 할리우드를 이끈 영화사는 MGM, 20세기폭스, 워너브러더스, 파라마운트, RKO다. 대부분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제작사다.

193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 '맹크'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했다. 이 영화는 허먼 맹키위츠라는 작가의 실제 삶을 다뤘다. 위대한 영화를 꼽을 때 언제나 빠지지 않는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맹키위츠다. 그는 영화사 MGM과 계약을 맺은 작가였다. 영화사에 묶인 몸이었지만 맹키위츠는 수직적인 스튜디오 시스템에 의문을 품은 반항아였다. 그래서 영화 '맹크'는 맹키위츠 눈을 빌려 할리우드 황금기의 어둠을 고발한다. 예술가의 창의성을 짓누르며 돈 되는 작품만 찍어낸 스튜디오 시스템을 꼬집고, 정치 세력과 결탁한 영화사 민낯을 드러낸다. 영화 초반 맹키위츠는 이런 대사를 뱉는다. "오즈의 마법사가 스튜디오를 망가뜨릴 거야." 1939년 개봉한 '오즈의 마법사'는 MGM 작품이다.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영화다. 맹키위츠도 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오즈의 마법사'에 스튜디오 시스템의 부작용이 범벅됐다고 여겼다. 그의 예측과 달리 '오즈의 마법사'가 나오고도 한동안 스튜디오 시스템은 굳건하게 유지됐다. 그 대신 이 영화는 한 인간의 몸과 영혼을 망가뜨렸다. 피해자는 영화 속 주인공을 맡은 배우 주디 갈런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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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1939) 한 장면. 작품 속에서 주디 갈란드 동료였던 배우들은 촬영 현장에선 주디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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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황금기 대표 작품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는 이렇다. 미국 캔자스에 사는 소녀 도로시는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낯선 땅에 떨어진다. 그곳은 마녀들이 지배하는 마법의 땅이다. 도로시는 이 세계에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위대한 마법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도로시는 자신을 집으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마법사를 찾아 떠난다. 여정 중 도로시는 동료를 얻는다. 뇌가 없어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어 감정을 못 느끼는 양철 나무꾼,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자가 도로시와 함께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달라고 오즈의 마법사에게 말할 계획이다. 도로시 일행이 마법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공격당하고, 함정에 빠지고, 시험에 든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위기를 돌파한다. 동료의 결핍을 보완하고, 서로 이끌어주며 우여곡절 끝에 여정을 완수한다.

1900년에 출간한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대표적인 판타지 문학으로 손꼽힌다. 낯선 나라에 뚝 떨어졌지만 침착하게 난관을 헤쳐나간 소녀 도로시는 어린이에게 꿈, 희망, 용기, 우정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소설 성공 덕분에 '오즈의 마법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제작됐고 큰 사랑을 받았다. 1939년에는 영화 버전 '오즈의 마법사'가 개봉됐다. 오색찬란한 색감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환상적인 오즈의 세계를 탁월하게 구현했다. 주인공 도로시가 극 중에서 부른 곡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는 영화 이상으로 사랑받았다. 무지개 너머에 있을 희망을 노래하는 이 곡은 끊임없이 리메이크됐다. 사실상 전 세계 영화음악 중 가장 유명하다. 도로시 역할을 맡아 명곡까지 탄생시킨 배우 주디 갈런드는 스타가 됐다. 갈런드는 '오즈의 마법사'로 아카데미에서 아역상을 받았다. 결과만 보면 갈런드의 삶은 화려한 조명 가득한 탄탄대로에 들어선 듯 보였다. 하지만 불행의 싹은 이때부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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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 주디 갈란드. 영화사는 각성제를 먹이면서까지 주디 갈란드를 몰아 세웠다.


◆미성년자 배우에게 담배 80개비 강요

주디 갈런드 삶을 설계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다. 갈런드 부모는 유랑극단 배우였다. 갈런드는 부모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춤과 노래를 익혔다. 스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갈런드의 어머니는 딸을 바라봤다. 딸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려 했다. 어린 소녀는 엄마 손에 이끌려 영화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나이는 어렸지만 매력적인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갈런드는 금세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갈런드는 1935년 MGM과 계약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아픔을 겪었다. 아버지가 수막염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에게는 어머니만 남았다. 당시 13세에 불과했다. 또래 배우들은 어린 나이에도 성인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키가 작고 앳된 얼굴을 한 갈런드는 마땅한 역할을 찾지 못했다. 영화사에 들어가고 한동안 갈런드는 그럴듯한 배역을 따내지 못했다. 1937년 월트디즈니가 뮤지컬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로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에 자극받은 MGM은 디즈니처럼 판타지풍 뮤지컬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기획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아역 배우는 셜리 템플이었다. MGM은 도로시 역할을 맡기기 위해 템플을 캐스팅하려 했지만, 다른 영화사 소속이었기에 실패했다. MGM은 가창력만큼은 뛰어났던 갈런드에게 도로시 역할을 맡겼다. 얼떨결에 주인공을 맡았지만 갈런드는 훌륭한 연기와 노래 실력으로 도로시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오즈의 마법사'는 동화 같은 환상으로 가득하지만, 제작 과정은 흉흉한 현실 그 자체였다. 영화사는 시나리오 작가만 15명을 투입해 원작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맹키위츠도 15명 중 1명이었다. 촬영에 들어가자 영화사 개입은 더 심해졌다. MGM은 자신들 주문대로 연출하지 않는 감독은 가차 없이 내쳤다. 감독마저 수시로 물갈이되는 살얼음판 같은 현장 속에서 배우들 불만은 갈수록 커졌다. 분노의 화살은 갈런드에게 향했다. 무명이었던 꼬마가 단번에 주인공 역할을 꿰찼을 때부터 성인 배우들은 그녀를 안 좋게 봤다. "네까짓 게 무슨 연기를 한다고!" 영화 속에서 도로시의 든든한 동료였던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는 촬영 내내 갈런드를 구박했다. 감독 역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갈런드에게 손찌검을 했다. 갈런드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유일한 인물은 영화 속에서 나쁜 마녀를 맡은 배우뿐이었다.

갈런드가 받은 학대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만큼 비현실적이다. 영화사는 그녀를 상품으로 여겼다. 그녀의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는 하루에 한 끼만 제공했다. 17세 소녀에게 하루에 담배 80개비를 피우도록 강요했다. 식욕을 떨어뜨리려는 목적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촬영 속에서 갈런드는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그럴 때면 영화사는 강력한 각성제를 먹였다. 촬영이 끝나면 억지로 쉬도록 수면제를 먹였다. 어머니는 딸을 지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비극을 주도했다. 그는 딸이 겪는 고통을 마땅히 감수해야 할 단계로 여겼다. 미성년자였던 갈런드는 엄마의 강요로 영화사 고위층에게 성 접대까지 해야 했다. '오즈의 마법사' 덕분에 갈런드는 스타가 됐지만, 내면 세계는 와르르 무너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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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M과의 계약을 끝내고 주디 갈란드는 `스타 탄생`(1954)으로 영화계에 복귀했지만, 사실상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배우 생활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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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에 세상의 모든 쓴맛을 봤다

1940년대 들어 2차 대전이 터지며 유럽은 음울한 공기로 가득했다. 같은 시기 미국 할리우드는 어느 때보다 화려한 시절을 누리고 있었다. 뮤지컬 영화 장르가 대세였다. 할리우드는 흥겨운 춤과 노래로 가득한 작품을 쏟아냈다. '오즈의 마법사' 이후 MGM은 갈런드를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MGM에서 만든 뮤지컬 영화 주인공 대부분을 갈런드가 맡았다. 그녀는 셜리 템플만큼 명성을 얻으며 할리우드 스타가 됐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2차 대전 참전 병사처럼 암흑으로 물들었다. 영화사는 더 강하게 그녀를 채찍질했다. 여전히 담배를 권유하며 살을 빼도록 다그쳤다.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도록 약물을 강요했다. 인형처럼 깎아낸 듯한 미모를 지닌 라이벌 배우들과 비교하면 갈런드의 얼굴은 평범한 편이었다. 그 대신 그녀는 무대 위에서 탁월한 순발력과 가창력, 연기력을 발휘했다. 그럼에도 영화사는 걸핏하면 미녀 배우와 비교하며 외모를 지적했다. 갈런드의 자존감은 추락했다. 어머니조차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애정 결핍에 시달렸다. 아무도 어둠을 돌봐주지 않았다. 갈런드는 MGM 히트 상품일 뿐이었다.

갈런드는 고장나기 시작했다. 영화사 강요로 시작했던 약물을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술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는 해방구 찾듯 사랑을 갈구했다. 1941년 음악가였던 데이비드 로스와 교제했다.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그는 이혼을 약속하고 그녀에게 접근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남자는 약속을 저버리고 훌훌 떠났다. 영화사는 갈런드의 임신 소식을 듣고 격분했다. MGM은 그녀가 갖고 있던 소녀 이미지를 유지해 돈을 벌어야 했다. 어머니마저 딸을 다그쳤다. 결국 반강제로 낙태를 했다. 갈런드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이번에 만난 연인은 동성애자였다. 그는 번번이 불륜을 저질렀다. 결국 이 남자와도 헤어졌다. 갈런드에게 여러 비극이 닥치는 와중에도 그가 출연한 영화는 잘나갔다. 갈런드는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번번이 촬영 일정을 펑크냈고, 신경쇠약으로 자주 입원했다. 자살소동을 벌일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1950년이 돼서야 MGM은 그녀와 계약을 끝냈다. 사실상 가치가 없어진 상품을 버린 셈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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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갈란드의 화려했지만 쓸쓸했던 삶을 다룬 영화 `주디`(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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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소멸

MGM에서 나온 갈런드는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망가진 몸과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1954년 갈런드는 '스타 탄생'이라는 영화로 복귀했다. 이 작품은 훗날 '스타 이즈 본(Star is born·2018)'이라는 영화로 리메이크된다. 영화에는 눈부시게 성공했지만, 서서히 인기가 시들어가며 몰락하는 스타가 나온다. 반면 그 옆엔 이제 막 재능을 싹틔우며 스타 반열에 오르는 인물이 등장한다. 스타 탄생과 스타 소멸을 동시에 다룬 이 영화는 갈런드의 실제 삶과 겹친다. 갈런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오를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영화계를 떠났다. 신경쇠약 증세가 심해져 제대로 연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배우 대신 가수의 길을 택했다. 크고 작은 무대에 올라 노래 불렀다. 술과 약물에 의존한 그는 비록 현실 속에서는 불안한 인간이었지만,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됐다. 마치 스타라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최고의 쇼를 보여줬다. 1961년 갈런드는 카네기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이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 'Judy at Carnegie hall'은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차지했다. 가수로서 화려하게 날아오른 갈런드는 옛 명성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얻은 트라우마는 끝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약물중독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사랑에도 연거푸 실패했다. 1969년 런던에서 공연을 한 그녀는 숙소 화장실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신경안정제 과다 복용이었다. 47세밖에 안됐던 스타는 그렇게 소멸했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즈의 세계에 떨어진 도로시처럼 갈런드도 의지와 상관없이 할리우드에 들어갔다. 도로시에게는 든든한 동료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가 있었다. 갈런드는 바로 그 동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도로시는 '오버 더 레인보'를 부르며 행복과 희망을 꿈꿨고, 결국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조력자가 없었다. 오즈의 세계보다 더 잔혹했던 세상 한복판에서 홀로 떨었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소멸은 스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빛나는 건 없다. 그럼에도 어떤 소멸은 더 쓸쓸하다. 무지개 너머 희망을 노래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희망을 보지 못하고 떠난 이 스타의 삶이 그렇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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