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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과학자 암살, 바이든 외교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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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란 핵합의’ 복귀를 공언해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내년 1월 취임도 하기 전에 부담을 안게 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의 이란 핵합의 복귀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59)가 지난 11월 27일(현지시간) 암살됐다.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던 파흐리자데는 방탄차를 타고 부인과 함께 테헤란에서 80㎞ 떨어진 휴양지인 아브사르드로 향하고 있었다. 경호원이 탄 차량 3대의 호위를 받은 채였다.

교차로에 다다르자 150m 거리에 있던 닛산 트럭에서 갑자기 원격으로 기관총이 발사됐다. 방탄차에 탄 파흐리자데는 시끄러운 소리에 차량이 고장 난 줄 착각하고 내렸다. 총알은 파흐리자데를 겨눴고, 그는 몇발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경호원도 총상을 입었다. 작전에 걸린 시간은 단 3분이었다. 작전을 마친 닛산 트럭은 폭발했다. 파르스통신 등 이란 언론이 지난달 30일 전한 파흐리자데 암살사건의 전말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무기에는 이스라엘 방산업체의 상표가 새겨져 있었고, 무기는 인공위성을 통해 원격 조종됐다고 30일 이란 국영방송사를 인용해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은 30일 “시오니스트(이스라엘) 정권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주범”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 CNN방송은 지난 1일 정보·보안 전문가들은 ‘원격 암살’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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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군인들이 11월 30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에서 사흘 전 암살당한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의 영결식에서 국기로 덮인 파흐리자데의 관을 옮기고 있다. 테헤란|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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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정부 “이스라엘 모사드 주범”
이스라엘 정부는 그의 죽음에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엘리 코헨 이스라엘 정보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군라디오 인터뷰에서 “누가 파흐리자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는 모른다”면서도 “그의 제거는 중동과 전 세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핵무기를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걸어다니는 시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란 핵과학자들이 모사드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1949년 출범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특수 작전으로 유명하다. 1960년 아르헨티나에 은신하던 독일 나치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찾아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지난 1월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이라크에서 사살했을 당시에도 모사드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정부는 이란 핵무기 개발을 견제해왔다. 이란 핵과학자들을 암살한 배후로도 모사드가 지목된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는 2010~2012년까지 이란 핵과학자 4명의 암살사건 배후로 모사드가 있다고 추정했다. 2011년 핵과학자 다르이시 레제에이가 오토바이에 탄 괴한의 총격을 받아 숨졌고, 2012년엔 핵과학자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산이 차량에 부착된 폭탄이 터져 숨졌다. 2018년 1월 모사드는 이란 핵프로그램 기밀이 담긴 창고에 침입해 수만건의 기밀문서를 훔치는 대담한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파흐리자데는 1999~2003년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계획 책임자다. 그는 지난 20년간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암살 표적이 돼왔다고 이란 당국이 밝혔다. 그러나 파흐리자데가 암살되더라도 다른 젊은 핵과학자들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기에 이란 핵개발 자체가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알자지라방송은 분석했다. 이란 대통령실 직속 연구기관인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호세이니 디아코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8일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목표는 이 암살로 정치적 파장을 일으켜 이란과 미국 차기 행정부의 외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핵개발 저지보다는 미국과 이란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이란 핵합의’ 복귀를 공언해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내년 1월 취임도 하기 전에 부담을 안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달 23일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부장관으로서 이란 핵합의를 이끈 주역인 토니 블링컨을 국무장관직에 내정했을 당시만 해도 미 언론은 ‘이란 핵합의 복원의 최전선에 설 인물’로 평가했다. 블링컨은 2015년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는 대가로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단계적으로 푸는 합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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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재로 9월 1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브라함 협약’이 서명됐다. 왼쪽부터 압둘라티프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외무장관.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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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사이 갈라놓으려는 목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이란을 못 믿겠다’면서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걸프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꾀해왔다. 지난 9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의 관계 정상화 협정인 ‘아브라함 협약’을 주도했다. 그간 팔레스타인 문제로 숙적 관계였던 걸프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이란 견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손을 잡도록 유도한 것이다. 적의 적을 친구로 만들어준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를 두달 남겨놓고 차기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여러 조치를 하고 있다. 미 대선이 끝난 지난달 10일에도 이란 군수업체 6곳에 대한 제재를 추가했다.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지난달 30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길에 나섰다. 쿠슈너 선임고문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이스라엘과 수교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걸프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수교한다면 이란은 더 고립된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귀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예멘 내전 등에서 이란과 대리전을 치러온 사우디도 이란에 제재 해제를 안겨줄 미국의 JCPOA 복귀가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란 핵개발 자체보다 이란이 핵합의 이행의 보상으로 얻게 될 ‘합법적인 미사일 수출’ 권한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이란이 동맹국들에 미사일을 수출한다면 양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란 견제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정부는 지난달 30일 테헤란에서 파흐리자데의 장례를 국영TV로 생중계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이란 의회는 지난 1일 JCPOA에 서명한 유럽국가가 한달 안에 원유·금융 부분에 대한 대이란 제재를 완화하지 않으면, 유엔의 핵사찰을 받지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암살사건으로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JCPOA에 복귀하려면 (반이스라엘 전선에서 반이란 전선으로 이동한) 새로운 중동과 맞서야 한다”고 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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