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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與파란현수막 내걸린 野회의실…'허니버터칩' 그가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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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7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부동산 관련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의 '그렇게 해도 안 떨어져요, 집값' 발언을 회의실 배경 글귀로 내걸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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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의실을 잘못 찾았나.”

지난 7월 20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서던 한 주요 당직자가 멈칫했다. 눈앞에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배경의 현수막(백드롭)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직자는 “순간 민주당 회의실로 온 게 아닌지 착각했다”고 말했다.

해당 백드롭엔 ‘그렇게 해도 안 떨어져요, 집값 -더불어민주당-’이란 문구가 적혀있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MBC ’100분 토론‘에 참석했다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던 시기, 여당 의원의 말을 빌려 비수를 꽂은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힘에 내걸린 文 대통령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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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위원장 뒷 배경에 문재인 대통령의 2013년 트위터 글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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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의도에선 국민의힘의 ‘백드롭 정치’가 화제다.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장엔 문재인 대통령이 2013년 9월 13일에 작성한 트위터 글이 내걸렸다. 문 대통령은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하자 “결국… 끝내… 독하게 매듭을 짓는군요. 무섭습니다.”란 글을 올렸다. 박근혜 정부가 조직적으로 ‘채동욱 찍어내기’에 나섰다는 비판이었다.

이어 다음날인 27일 원내대책회의장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함께한 사진이 등장했다. 지난해 7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당시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우리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랍니다”며 당부한 발언과 함께다. 당시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우리 윤 총장’이라고 불렀다. 최근 법무부의 윤 총장에 대한 감찰 및 징계 시도를 ‘찍어내기’로 규정한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백드롭을 통해 여권에 그대로 되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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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뒤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함께한 사진이 걸려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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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 비용 40만원…'허니버터칩' 작명 김수민 주도



국민의힘 백드롭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김수민 전 의원이 당 홍보본부장을 맡은 지난 6월부터다. 유명 과자 ‘허니버터칩’ 작명과 포장 디자인에 참여했던 홍보전문가인 그가 당의 홍보 전면에 나서면서 카메라 배경에 불과하던 백드롭이 하나의 효과적인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이 나라, 믿을 수 없는 게 수돗물뿐일까”(수돗물 유충 사태), “아름다운 수도, 서울 의문의 1패”(민주당 이해찬 대표 서울 비하 발언 논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입법 밀어붙이기) 등도 화제가 된 문구다. 백드롭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교체하는데, 비용은 4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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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김수민 국민의힘 홍보본부장. 벽에 김 본부장이 작업한 백드롭 사진들이 걸려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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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본부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백드롭에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여권의 과거 목소리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미러링(거울)’ 한 것”이라며 “정부ㆍ여당의 과거와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국민이 직접 판단하게 했다. 백드롭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건 자기성찰이 부족한 여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졌다는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국민의힘만의 시각이 더 담기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다른 사람의 발언을 빌려 상대와 각을 세우는 건 효과적인 전술”이라면서도 “그렇다면 이제는 국민의힘이 이들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자신들만의 가치나 어젠다를 제시하는 모습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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